시사다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프로듀서 김환균을 만나다

“다큐멘터리는 삶 그리고 사람이다.” 다큐멘터리를 한마디로 표현해달라는 기자의 주문에 MBC 시사다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김환균 책임PD는 이렇게 답했다. 모든 것은 사람의 문제로 매듭지어 지기에, 설사 자연 다큐멘터리라도 사람의 관심사에서 다뤄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지난 1999년 ‘제주 4·3사건’편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총 86편을 내보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프로그램은 언론의 자유가 확보되지 않아 언론이 말해야 함에도 침묵했던 사건들의 진실을 찾아 나선다. 언론의 부끄러운 모습에서 존재의 이유를 갖는 이 프로그램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근현대사의 왜곡되고 은폐된 사건과 사건 속의 사람을 다큐멘터리에 담아내는 김환균 PD. 그를 만나봤다.

다큐멘터리와 저널리즘

▲언론이 외면했던 얽히고 설킨 과거의 실타리를 푸는 데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린 이유는 무엇인지.

“예술성과 개연성을 지니는 극영화와 있는 사실을 그대로 싣는 기사의 중간 어디쯤에서,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동시에 심미성도 갖는 저널리즘이 바로 다큐멘터리다. 이런 이유로 왜곡·은폐된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큐멘터리 방식이 중요하다. 진실 탐구의 도구로서 다큐멘터리 만한 것은 없다.”

▲저서 『비극은 행진으로부터 시작된다좭의 프롤로그를 보면 ‘개인성인 구심력과 보편성인 원심력이 팽팽하게 긴장하는 지점에 내가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놓이길 바란다’고 쓰여 있다. 구심력과 원심력이 긴장하는 지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쿠르드족 출신 다큐멘터리 감독 로즈비아니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이라크 전쟁에 대해 긍정적이다. 후세인으로부터 탄압을 받았던 쿠르드족의 입장에서는 야만적인 살인자를 무찌른 미국이 ‘선’이다. 미국이 죄없는 이라크인들까지 희생시킨 것은 후세인이 쿠르드족에게 자행한 것과 다르지 않은데도 그것을 ‘악’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있어 그림자가 비친다’고 생각하지 자신의 뒷편에 해가 있다는 생각은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이처럼 개인 중심으로 생각을 하더라도 개인 뒤에 있는 더 큰 배경을 망각하지 않는 것이 바로 구심력과 원심력의 중간 지점이다. ‘나에게 악인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악이고, 다른 사람에게 선인 것은 나에게도 선’이라는 이상적인 관점이 바로 다큐멘터리의 지향점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일궈낸 성과와 한계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그동안 금기시돼 왔던 사건을 추적하면서 수많은 언론과 시청자들로부터 찬사를 들어왔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많이 존재한다. 이 프로그램이 ‘편파적·주관적’이라는 시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인정한다. 하지만 편향됐더라도 그동안의 역사서술이 한쪽으로 경도돼 반대편으로 치우쳐있기 때문에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역사다큐멘터리는 우선 역사적 사건에 대해 방대하게 리서치한 뒤, 이야기를 풀어갈 얼개를 짜고 그 얼개에 맞춰 이야기를 수립한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온갖 것을 한편의 다큐멘터리에 모두 다 담기는 어렵다. 역사는 해석이다. 우리의 해석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의 상상이 아니라 논리적인 근거에 바탕한 합리적 주장이다.”

▲핵심 증언자의 증언을 얻지 못해 기존의 인쇄매체가 다뤄 온 역사물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 있다.

 “핵심 증언자에게 돈을 지불해서라도 증언을 받아내고 싶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스스로 자기 치부를 드러내는 데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잘 증언해 주지 않는다. 또한 가해자에게는 자기 합리화가 나타난다. 고문관을 만나면 그들은 고문한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고문을 통해 얻은 진술만을 기억한다. 이런 그들의 이야기는 인쇄매체에도 나오지만 영상매체는 인쇄매체와는 다른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차이점이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비판은 과거에는 침묵하다 이제야 말한다는 ‘기회주의적 접근’인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과거 MBC의 소유구조 자체가 정부와 연결돼있어 MBC가 친정부적이고 보수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때 당시 대부분의 언론이 부끄럽지만 그러했다. 과거에 그랬다고 해서 지금도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인가? 과거의 부끄러움을 떨쳐버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회성 기획이 대부분이어서 배경·사회구조적 맥락과 역사적 의의에 초점을 맞추는 데 미흡하며 단발적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연대기순 기획이 아닐 뿐더러 일단 빨리 바로잡아야 할 부분부터 재정립하고 재조명하는게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한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작지 않다. 단발적이라 해도 이런 프로그램들이 쌓여 미국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고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같은 것이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닌가.”

진실을 찾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김PD는 “밝혀지지 않는 비밀이 존재하는 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같은 프로그램은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 「이제는 말할 수 있다」시리즈는 100회를 바라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과거에 진실을 찾는 일이 불가능했다고 해서 진실이 영원히 묻혀지고 잊혀지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김PD는 “취재를 하다 보면 진실은 자꾸 도망치고 숨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도망치는 진실을 잡기 위해, ‘언론’ 이란 발전기는 진실을 찾는 ‘힘’을 계속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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