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0주년이 되는 올해의 3·1절은 여느 해보다도 의미가 있었다. 이날 기념식에서 사회주의 이념 하에서 민족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해 대한민국의 건국훈장을 수여했던 것이다. 여운형에게는 2등급인 대통령장을, 임시정부 국무위원이었던 조동호 등 그외 54명에게는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등을 수여했다. 여운형은 상해 임시정부와 건국동맹 조직을 통해 독립운동에 이바지했고, 해방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공화국, 좌우합작운동을 이끌며 새로운 국가건설에 기여했다. 지금까지 사회주의운동가 서훈에서 논란이 된 것도 바로 그였다.
이들에 대한 서훈이 이제야 실현된 것은 남북분단으로 인해 우리의 역사의식도 ‘분단’됐기 때문이었다. 반공이데올로기, 냉전 구도 하에서 그들의 민족운동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대한민국 체제를 세우고 지탱한다고 ‘자부’하는 보수 진영의 사람들은 이런 정부 조치를 ‘국기(國基)를 뒤집은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는 변하고, 우리의 역사의식도 진전되고 있다.
광복 60년은 곧 분단 60년이었다. 분단의 구조로 인해 우리 사회는 물론 개인의 삶도 왜곡돼 왔다. 친일파 청산도 제대로 되지 못하고, 민주주의의 발전도 저해됐다.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도 기형적으로 이뤄졌다.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참다운 삶을 지향하는 많은 사람들은 시대의 희생자가 됐다. 하지만 이런 희생 속에서 우리의 역사의식도 성숙됐고, 질곡으로 작용하던 분단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역량도 더 커졌다. 이번 조치는 우리의 역사 진전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그리고 그만큼의 역사적 포용력을 보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두가지 아쉬움도 있다. 이번 조치의 결과만 보면 여전히 우리는 냉전적 인식에서 나온 ‘인색함’도 드러냈다. 사회주의계열의 민족운동에 대해서는 학계에 그 성과가 다수 축적돼 있고, 그 대표적인 인물인 여운형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와 평가가 있다. 물론 평가자의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의 민족운동은 이미 1등급 서훈을 받은 사람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 오히려 더 뛰어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를 2등급으로 결정한 것은 우리 속에 잠재된 분단의식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번 정부 조치는 분단 60년 동안 왜곡된 우리의 과거사를 정리하는 작업의 시작일 뿐이다. 우리 역사 위에 드리워졌던 ‘과거사’에 대한 부담을 하나씩 털고 새로운 역사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모든 과거사 문제들도 이런 차원에서 해결되기를 아울러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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