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특집
<서토불이-김훈의 '칼의 노래' 배경 남해를 찾아서>내 마지막 바다
  • 최종혁 기자
  • 승인 2005.03.07 00:00
  • 호수 1510
  • 댓글 0

소설 『칼의 노렌의 마지막 배경이자, 이순신이 대승을 거두고 최후를 맞았던 노량해전의 격전지인 남해로 가는 길. 남해가 섬이라는 것을 무색하게 만드는 한국 최초의 현수교(懸垂橋)인 남해대교가 하동과 남해를 잇고 있었다. 남해대교를 건너면서 내려다보이는 노량 앞바다에는 빈 손으로 와서 양팔 가득 햇살을 안고 가는 파도가 일고 있었고 커다란 물결 끝에는 새하얀 물새들이 매달려 있었다. 바로 이 곳, 노량해안에서 그렇게도 처절한 전투 노량해전이 일어났던 것이다.

남해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처음으로 육지에 안치한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 유허지(이락사)’. 이락사로 가는 길에는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은 붉은 꽃봉오리를 틔운 동백나무 숲을 울리고 있었다. 비장함이 감도는 발걸음 사이사이를 지나가는 떨어진 동백꽃은 나무에 피어있을 때와 다름없이 시들지 않고 화려한 색깔과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선혈이 낭자한 동백꽃들은 노량해전에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전사자들의 영혼과도 같았다.

이락사 오른쪽 솔밭 길을 따라가니 절개를 상징하는 곧은 대나무와 늘 푸른 소나무들이 바다 내음을 머금고 있었고, 이름 모를 산새의 지저귐이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숲 속으로 퍼지고 있었다. 솔밭 길의 끝에 다다르면 관음포가 한 눈에 들어오는 누각 ‘첨망대(瞻望臺)’가 있다. 관음포, 이순신은 바로 그 곳에서 배의 난간에 도열한 적들이 무더기로 쏘아대는 총탄에 가슴을 맞고 쓰러졌다.

“지금 싸움이 한참이다. 너는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 북을... 계속... 울려라. 관음포... 멀었느냐?”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끝나지 않은 전투을 걱정했다. 마지막까지 그런 이순신의 죽음을 지켜본 바다, 그 바다를 바라보며 붉은 빛으로 물든 바다 위에 떠 있는 수백의 함대,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를 상상해본다. 이 바다에서 수많은 적군과 아군이 수장됐을 것이고, 이순신 역시 이 곳에서 전사했을 것이다. 그 숙연함에 검푸른 물결은 유유하다 못해 평온함 마저 감돌았다.

바다를 조금 더 가까이 보고픈 마음에 우거진 숲과 험난한 언덕을 헤치고 내려가니 잔잔히 제 몸을 바위에 부대끼고 있는 파도를 만날 수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는 인간 이순신의 마음과도 같았다. 혈육의 죽음에 슬퍼하고, 사랑하는 여인과의 이별에 마음 아파한 이순신은 더이상 영웅이 아닌 인간 이순신이었다.

바다 건너 보이는 하동 화력 발전소는 쉼 없이 희뿌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뭘 그리 태우는지는 모르겠지만 긴장감 넘치는 전쟁에서 승리를 지켜보지 못하고 최후를 맞아야 했던 이순신이 애태웠을 가슴과는 차마 비교하지 못하리라.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또...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 적들 쪽으로...

발길을 돌려 이순신 장군의 위패와 가묘가 있는 충렬사로 향했다. 쌀쌀한 바람 속에서도 따스히 비추는 햇살을 친구 삼아 충렬사를 향해 걷는 길은 그저 편안한 섬마을 길이었다. 이락사에서 안내해주신 아주머니는 조금만 걸으면 충렬사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지만, 옹기종기 모인 장난감 같은 집들과 푸르름이 싹트는 밭들이 나의 뒤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지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야 충렬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충렬사에서는 남해대교를 건너며 버스 안에서 바라보았던 노량 앞바다를 바로 앞에서 만날 수 있었다. 마치 하늘이 빠진 것처럼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는 바다 위에는 전쟁 당시 우리 군의 함대로 사용됐을 법한 거북선이 떠 있었다. 비록 지금은 찾는 사람도 없고 한낱 전시물에 불과하지만 당시엔 수많은 전쟁에서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준 바다의 수호신이었을 것이다.

남해를 떠나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남해대교 위에서 다시 한번 노량 앞바다를 볼 수 있었다. 노량 앞바다에 여울져 있는 이순신의 영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찬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잠시 눈을 감아본다. ‘파도야, 이 못난 사내의 한숨을 받으려느냐. 네 어깨 위에 날 태우고서 때려라. 모든 것을 삼키어라.’

최종혁 기자  bokusipo@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종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충렬사 앞의 노량 앞바다. 격렬했던 전투의 현장에는 이제 남해대교만 우뚝하니 서 있다. /이종찬 기자

/이종찬 기자

/위정호 기자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