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으로부터 들어서는 늪의 초입은 평범한 농촌 풍경처럼 보인다. 황갈빛 살갗을 드러낸 채 봄을 기다리는 논을 지나 북풍에 쓸리는 옷을 추스르며 걸어가면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 얕은 호수, 이곳이 겨울 철새들의 쉼터 우포늪이다. 

우포늪은 우포, 목포, 쪽지벌, 사지포 등 네 개의 늪으로 이뤄져있다. 늪은 습지의 한 종류로, 호수가 육지로 변하는 과정의 중간 단계에 해당한다. 습지는 물의 공급이 안정적이고 깊이가 얕아 퇴적물이 오랫동안 쌓여 생물이 살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다. 우포늪 또한 여러 동식물들이 번성해 예로부터 철새들이 즐겨 찾아오는 곳이다. 

우포늪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늪이 우포다. 네 곳의 늪 중에 가장 넓은 우포는 광활한 공간에 물이 고여 있는 형상이다. 생이가래, 개구리밥 등의 물풀이 없는 틈을 타 맑게 드러난 수면 때문에 겨울 우포는 얕은 호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길을 따라 걸으면 늪 가장자리에서 꼬물거리는 검은 점들이 커지면서 ‘골골’거리는 울음소리도 커져간다. 바로 우포늪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겨울철새 큰기러기 떼다. 낱알이나 매자기의 뿌리를 파먹는 녀석,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경계하는 녀석, 가만히 서서 쉬고 있는 녀석…… 각양각색 멋대로 놀다가도 인기척을 느끼면 태도가 금새 바뀐다. 하나둘 꽥꽥거리더니 어느새 너나할 것 없이 야단스럽게 울어댄다. 약삭빠른 녀석은 벌써부터 날개를 펴고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다 ‘화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것이다. 간혹 게으름뱅이들도 무리에 섞여있다. 친구들이 날아갈 때도 여유롭게 먹이를 찾아다니다가, 영 침입자들이 떠날 기미가 느껴지지 않으면 그제서야 태연자약하게 바동거리며 걸어가 버린다.                          

왜가리, 백로 등 흰 깃털을 가진 새들은 큰기러기와 사뭇 다르다. 눈에 잘 띄기 때문인지 위협에도 훨씬 민감하게 반응해 좀처럼 촬영하기가 쉽지 않다. 무리를 짓기도 하지만 혼자 있기도 하는 이 새들은 날아오를 때도 파닥거리지 않고 큰 날개를 서너 번 휘이익 저어준다. 어둑한 하늘에서 우아하게 저공비행하다 긴 다리를 끌면서 착지해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느릿한 걸음으로 돌아다닌다.                                         

귓가에 맴도는 새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우포를 돌아 쪽지벌로 향한다. 소벌(우포), 나무벌(목포), 모래벌(사지포)이 한자 이름으로 불리는 것과 달리 쪽지벌은 옛 이름 그대로 불리고 있다. 우포처럼 넓진 않지만 여기저기 보이는 쓰러진 나무와 질척거리는 시뻘건 진흙이 새삼 이곳이 늪임을 상기시켜준다. 음습한 분위기에 젖어 갈대밭을 지나 목포 가는 길에 들리는 것은 정적뿐. 가끔 저 멀리 허공을 꿰뚫고 날아오는 새 울음소리만이 생명의 흔적을 가늠케 한다. ‘자연생태계의 보고’라는 우포늪이지만, 추위 앞에서 예외일 수 없는 걸까?           

하지만 자세히 살피면 비록 움츠리고 있어도 머지않아 싹틔울 생명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하늘을 향해 꿈틀거리는 손을 뻗친 왕버들*은 허리에 물이 차오를 즈음에 풍성한 잎사귀를 과시할 테고, 두께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죽은 갈대가 켜켜이 쌓인 사지포엔 지름이 2m에 달하는 가시연*이 장관을 이룰 것이다.

                                            우포늪과 함께 하는 사람들

우포늪 주위에선 청색 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환경감시원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창녕군과 낙동강유역환경청에서 나온 이들은 관광객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등 규칙에서 벗어난 행위를 하는지 살핀다. 70여만평에 달하는 우포늪엔 많을 때는 하루에 수천 명이나 되는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자율적으로 규칙을 지켜주면 다행이겠지만, ‘국민은 문화인, 제발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라고 쓰레기통에 써진 문구처럼 잘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우포늪 환경감시원 김종일씨는 “국민들이 우포늪 안내소에서 배포하는 생활 수칙이라도 꼭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신신당부했다.                                                                                                                                   

지난 1997년 ‘자연생태계 보존지역’으로, 1998년 ‘람사협약’에 의한 국제보호습지’로 지정돼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은 우포늪. 그러나 늪을 보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우포에 접해있는 둔터마을의 여민식씨(61)는 “15년 전에는 하늘이 꽉찰 정도였는데 지금은 반도 안온다”며 철새가 급감한 현실을 전했다. 우포생태학습원을 운영하는 창녕환경운동연합의 송윤경씨는 “철새가 줄어든 이유를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낙동강 유역의 오염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며 우포늪의 오염 가능성을 말했다. 

최근에는 대대(리)제방 증축공사로 인해 창녕군, 인근 주민과 환경운동연합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태풍 ‘매미’ 때문에 파손된 대대제방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우포늪과 접한 구간의 콘크리트 블록 설치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 것. 합의가 이뤄지면서 공사는 마무리됐지만, 우포늪을 둘러싼 여러 주체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방향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였다.                            

송씨는 “생물의 다양성 보호, 환경교육현장으로서의 가치, 홍수 발생시 수위 조절 기능 등 우포늪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다”며 “가장 바른 길은 사람과 생물이 함께 사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결국 각자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이해를 통해 공존의 지향점을 찾도록 노력해야겠다.                                                                                       

사람들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둥오리는 기나긴 여행 준비로 분주하고 갈대는 무심한 태도로 몸을 바람에 맡긴다. 하나둘 타오르는 마을 불빛을 뒤로 한채, 겨울 우포늪의 해는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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