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헌법재판소는 호주제를 규정한 민법 조항이 가족생활에서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규정한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부계혈통 중심의 가족관련 법과 제도 개선의 시작으로 아직도 개선의 여지가 많이 남아있다. 특히 민법 제781조 「자(子)는 부(夫)의 성과 본을 따른다」는 조항에서 볼 수 있듯이 부계혈통의 대표적 상징인 성씨 제도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아버지 성을 의무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조항은 자신을 드러내는 기호로서의 이름에 부계의 존재만을 드러내고 나의 어머니의 존재, 아버지의 어머니의 존재, 할아버지의 어머니의 존재를 비가시화 시키는 체제다. 
그리고 부의 성을 따르는 제도는 단순히 제도와 관습의 차원을 넘어서 부부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를 ‘부, 즉 남자’의 아이, 부의 가문의 아이가 된다는 의미로 확장해서 해석할 수 있다. 아버지의 성을 따라 ‘우리 김씨 집안 아이들’이라는 말은 수없이 들어봤어도, 엄마의 성을 따라 ‘우리 최씨집안 아이들’이라는 말은 거의 듣지 못했을 것이다. 제도와 관습은 단순히 제도와 관습에만 머물지 않고 문화 자체에 스며들고 사람들의 사고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부계 혈통 중심의 성씨 제도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또한 재혼 부부 사이에서 전남편과 낳은 아이는 전남편, 즉 친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되면서 엄마가 같고 아버지가 다른 경우 형제간에 성씨가 달라서 그 자녀들은 ‘비정상’의 취급을 받으며 큰 고통을 겪는 경우를 많이 접할 수 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이성애 혈연 중심 가족만을 인정하려는 한국문화는 재혼가정, 한부모 가정 등 현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혈연은 아니지만 가족 이상으로 끈끈한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간주해 왔다. 즉 부계혈통을 중심으로 한 정상가족만을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씨 제도는 이 문화를 공고히 하는 틀이 되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로 성씨 제도에 대해 비판을 제기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부의 성을 따르는 제도는 전통이라며, 한국 고유의 전통을 깰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러나 조선시대까지 80% 이상의 사람들의 성씨가 존재하지 않았고, 성씨는 단지 몇몇 양반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혈통을 증명하는 데 쓰였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전통을 표방하며 주장하는 담론의 허구를 인식하게 된다. 
더 이상 가족은 정상가족이데올로기에 근거한 혈연가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부계혈통을 중심으로 한 성씨제도가 계속 유지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차별적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성씨를 선택할 때는 모의 성, 양부의 성, 그리고 자신 고유의 성을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존재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부의 혈통만을 드러내는 성씨 제도는 폐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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