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봉투에 반듯하게 접혀온 연하장엔 언제나처럼 ‘근하신년(謹賀新年)’이란 네 글자가 새겨져있다. 해는 바뀌어도 그 문구만은 예전 그대로다. 받는이의 복을 빌고, 성공을 기원하는 연하장. 하지만 최근에는 그렇게 연하장을 보내던 기억마저 가물가물해진 이가 많다. 한 브랜드가치 평가회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연하장을 보내겠다는 응답은 34%에 그친데 반해, 이메일 카드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새해 인사를 하겠다는 응답은 각각 41.5%, 17.4%를 차지했다. 이처럼 연하장을 대신할 수단이 늘어난데다 경기 불황까지 겹쳐 연하장을 고르는 손길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알록달록한 색깔과 독특한 디자인으로 꾸며진 크리스마스 카드에 비해 연하장들은 모두 서로 닮아 있다. 연하장의 겉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속에 씌어진 문장엔 한자가 대부분이다. 연하장 디자인의 단골손님은 복을 기원하는 한자 ‘복(福)’자와 복주머니 문양, 그리고 그 해의 십이간지 동물 문양이다. 겨울풍경이나 까치, 학 등과 같은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는 한국적인 소재도 자주 등장한다. 바른손카드 주문연하카드팀 최은희 과장은 “연하장의 소비층이 주로 40·50대 이상이기 때문에 단순하고 무난하게 디자인한다”고 말했다. 또 최과장은 “요즘에는 종이로 복주머니를 만들어 붙인다거나, 반짝거리는 글씨를 쓰는 등 화려하고 특색있는 디자인이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점차 화려해지는 연하장의 표지디자인에 비해서 연하장 내지에 씌어진 ‘근하신년’ 등의 문구는 상투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이에 최과장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내용을 담으려면 가장 대표적이고 중립적인 문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다.
시대의 흐름에 연하장만의 특징이 제대로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올해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의 발송량이 지난해에 비해 12%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모닝글로리카드 고객센터팀 강은주 대리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매출은 위축되고 있지만, 기업을 상대로 하는 연하장 매출은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현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기업연하장의 형편도 그리 좋지만은 않다. “기업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연하장 발송비를 감축하는 경우도 있다”는 강대리의 말은 경기 불황이 연하장 수요에 미친 영향을 잘 설명해준다. 또한 기존 연하장의 중후함을 벗어나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메일 카드 또한 연하장의 수요 감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연하장을 보내겠다는 이들 중 대다수는 ‘다른 사람들과 인연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라 대답했다고 한다. 물론 연하장이 서로를 향한 관심을 전부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사치레로 오가는 연하장이 아닌, 많은 사람들에게 새해의 희망을 전하는 연하장을 만들고 싶다”는 최과장의 말처럼 우리가 연하장에 담아보내야 할 것은 형식적 인사가 아닌, 따뜻한 정성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따뜻함이 추운 겨울도, 마음속에 불어닥친 불황도 스르르 녹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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