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다. 혁명이 사회체제를 단숨에 변혁하고자 한다면,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개혁은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더욱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개혁은 때로는 주어진 환경을 정밀하게 계산해야 하며, 때로는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주어진 조건에 대한 냉정한 평가, 이에 걸맞은 전략, 그리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지도력이 요청된다.

그렇다면 집권 2년에 다가서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먼저 밝혀야 할 것은 노무현 정부가 목표로 하는 개혁의 내용이다. 노무현 정부가 지향하는 개혁은 3대 국정 목표, 즉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에 집약돼 있다. 산업화를 넘어서 민주화의 제2단계에 진입한 우리사회의 현상황을 지켜볼 때 노무현 정부가 제시한 ‘참여민주주의의 모색, 국가균형발전의 실현, 동북아 시대의 개막’은 전체적인 방향이 대체로 잘 잡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개혁 프로그램이 놓인 외부 환경이 그렇게 소망스런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세계화와 미국의 일방주의 전략은 균형발전과 동북아 시대 전략의 활동공간을 협소하게 만들어 왔다. 집권 초 이라크전 파병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첫 시험대였으며, 노무현 정부는 실용주의 외교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지지그룹으로부터의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더불어 사회갈등의 분출은 노무현 정부를 또 다른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다. 갈등의 분출은 참여의 폭발이었으며, 이는 국가와 시민사회간의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을 요청하는 것이기도 했다.

탄핵 정국과 총선 이후 노무현 정부는 정치사회내 확고한 기반을 획득했다. 이를 바탕으로 노무현 정부는 당정분리의 원칙 아래 행정수도 이전 및 균형발전은 정부가, 4대 개혁입법은 열린우리당이 주도하는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전자가 오랜 중앙집권 모델을 벗어나 새로운 지방분권 모델을 추구한 것이라면 후자는 정치민주화를 넘어서 사회민주화에 드라이브를 건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개혁은 야당인 한나라당과 보수적 공론장의 반대, 시민사회의 분열로 인해 새로운 장애에 부딪쳤다. 특히 야당이 국가정체성 문제와 좌파 정부라는 이념적 맞불을 놓음으로써 정치사회와 시민사회는 팽팽한 대치 국면으로 전환됐다. 요컨대, 노무현 정부의 개혁을 중간결산하자면 예상만큼의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것은 현재 노무현 정부가 대면하고 있는 구조적 조건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미국의 일방주의 전략도 그러하거니와 특히 세계화는 노무현 정부가 추구하는 성장과 분배의 발전전략에 작지 않은 한계를 부여한다. 노무현 정부는 사회적 양극화의 제어, 중소기업의 혁신 등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제까지 우리사회 발전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하고자 하는 이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사회로부터의 광범위한 지지가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함께 하는 전략이 요청된다. 정치적 지도력이 새삼 요청되는 부분도 바로 여기다. 구조적 조건이 어려울수록 주도면밀한 전략을 제시해야 하고, 개혁지지 세력을 확대해야 한다. 바야흐로 노무현 정부의 개혁은 새로운 시험대 위에 올라서고 있다.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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