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대학의 모습을 보다

‘필요한 인재를 기업이 주문하면 꼭 맞는 사람을 ‘맞춤 교육’으로 키워드립니다.’

현재 많은 대학들이 교과과정부터 기업의 요구사항에 맞는 ‘주문형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학문과 진리탐구의 ‘상아탑’이 돼야 할 대학이 기업의 요구에 눌려 그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기업 맞춤형’ 인재 양성

기업체의 요구에 따라 대학은 새로운 커리큘럼을 마련하고, 기업은 이 과정을 이수한 졸업생을 취업시키는 ‘산학협력’이 경제 및 대학활성화 모델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해 설립된 한양대의 클러스터 사업을 들 수 있다. 이것은 한국의 실리콘벨리를 꿈꾸는 대학과 기업, 연구소가 캠퍼스 안에 모여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됐다. 이 사업에서 주목할 점은 사업단 내에 다양한 교과과정을 마련해 맞춤형 인재를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양대 이재성 사업단장은 “취업을 원하는 학생에게는 현장 중심형 교육을, 연구소로 가려는 학생들에게는 연구개발 중심형 교육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맞춤형 교육의 실태는 지방대나 전문대로 갈수록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경북대는 LG전자의 요청으로 ‘DTV(디지털 TV)’ 및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 등의 관련 교과목을 개설했다. 국내 최초로 산업체를 위한 주문식 교육을 창안해 주목을 받아 온 영진전문대 역시 내년부터 기업의 요청에 따라 ‘반도체 공정기술전공’을 신설한다. 경북대 산학협력단장 권선국 교수는 “기업에서 재교육이 필요없는 전문인력을 요구하므로 철저한 현장실습 위주의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대학교에서도 3학년 이상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업 근무를 경험하게 해서 학점을 부여하는 산학협동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대학의 아카데미즘과 실용주의

이처럼 학문의 실용성을 중시하는 대학의 변화에 대해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대학 교육이 기업의 요구를 반영해 학문의 실용성과 효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대학이 상아탑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즉, 대학이 사회 발전과 국가 발전에 기여해야 하며, 교수 내용 또한 유용성과 시대적 적합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논리로 기업들은 자신들이 요구하는 인재상을 대학에 직접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기업계는 ‘청년실업’이 심각하지만 정작 ‘쓸만한 인재’를 찾지 못하는 인력수급의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의 맞춤형 교육이 더 확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주)SK 인사기획팀에서는 “산업구조와 기업의 필요성에 따라 사회적, 경제적 실무 능력을 갖춘 인력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기업의 요구에 대한 교육인적자원부(아래 교육부)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부 고등교육정책과 관계자는 “대학의 기능이나 역할이 시기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실용주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며, “앞으로의 교육 방향도 실무 중심이나 경쟁력 강화에 맞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진전문대 최달곤 학장은 “주문식 교육은 결국 지역 기업체의 눈높이에 맞는 인력을 배출하는 것”이라며,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가장 잘 맞는 실사구시형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대학 교육이 기업의 요구를 반영해 학문의 실용성과 효용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함께하는 교육 시민 모임’ 김학윤 운영위원은 “기업이 대학 본연의 모습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문의 집이요, 지식의 산실인 대학이 취업사관학교가 되는게 옳으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앞의 지적처럼 대학은 사회와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기에 앞서, 일관성 있는 교육 철학으로 교양과 지성을 갖춘 인재를 배출하는 곳이다. 최창민군(경제·2)은 “대학은 취업을 위한 실무교육의 기초양성소가 아니라 개인의 무한한 잠재적 능력을 길러주는 창의적인 학문의 장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김위원은 “실용주의 노선의 추구가 학문 발전과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과 투자의 소홀로 이어져 인문과학과 기초과학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덧붙였다. 사실, 학생들 역시 자신의 전공을 심도 있게 공부하기 보다는 취업에 도움이 되는 영어 공부나 고시에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심춘화양(교육·4)은 “사회적 인식과 여건 때문에 순수학문만을 추구하기엔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대학 본연의 아카데미즘은 지켜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처럼 대학의 역할에 대한 시각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지나치게 실용성을 추구할 경우 대학의 자율성과 진리탐구의 기능이 훼손될 위험이 있다.

아카데미즘의 성역, 대학

 황금중 교수(교과대·한국교육사)는 대학에서 연구하는 학문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황교수는 “요즘 대학이 실용적인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문제가 있다”며, “대학은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시각으로 실용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장의 급급한 취업난이나 기업의 구미에 맞춰 변화하는 실용성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말초적인 실용성의 추구는 학문을 자본의 구미에 맞는 학문으로 전락시키는 한편, 대학생들의 자유로운 학문 탐구와 연구에 타격을 줄 위험이 있다.

나아가 대학의 자율성 중에서도 학문의 자유나 교육의 자치성이 중요한 요소인데, 학문의 자유 영역이 침해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충남대 김태욱군(경영·4)은 “기업이 학년별로 이수해야 할 학점까지 요구하는 것은 대학의 순수성과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대학교는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고, 전문화·세분화된 다양한 연구소 설립을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대학교 또한 산학협력이나 일부 단과대에서 나타나듯이 실용성도 함께 추구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아카데미즘과 실용주의의 이중성을 안고 있다.

대학은 진리탐구의 역할과 사회발전의 나침반 역할을 해야한다. 맞춤식 교육을 강요받는 현실 속에서도 대학은 진리탐구라는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아카데미즘을 추구하고 지켜나가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창의성과 비판적 지성을 함양하는 교육이 장기적으로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대학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우리대학교가 일관성 있는 교육 철학을 기반으로 교양과 지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고, 대학 본연의 아카데미즘을 통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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