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얼마 전 방영됐던 한 광고 카피다. 대세가 소신과 일치하지 않을 때 전자보다는 후자를 지키겠다는 의미다. 이러한 광고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대다수 많은 사람들이 후자를 택하기에 적잖은 어려움을 느낀다는 현실이다. 때때로 “아니오”라 말하려면 왜 꼭 거창한 용기까지 필요

▲우리 사회도 개인도 아직은 여러 면에서 자신이 없는 것 같다. 식민지·군사정권 등 억압적인 역사로 인해 딱딱해진 구조적 틀 속에 갇힌 탓도 있을 것이다. 외부의 여러 가지 문제들과 나 자신의 문제까지 우리를 둘러싼 문제들은 다양한 화두와 가치의 범람으로 자기 확신을 갖기 어려워지게 만든다. 이처럼 수많은 문제들에 부딪쳐 갈수록 거듭되는 회의와 풀리지 않는 의문들에 사람들은 점점 더 작아져만 간다. 때로는 사회의 정해진 방식을 따라, 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가치에 따라 나의 확신을 끼워 맞출 때도 있다.

▲나의 확신이 타의에 맞춰진 경우 나의 만족보다도 남의 이목이 중요해진다. 이번에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의 구타 파문 사건의 경우도 대외적인 성적만을 중요시한 일부 스포츠계에 존재하던 관습이 드러나게 된 것이 아닐까. 세계 최강임을 자랑하던 선수들의 실상은 코치들의 폭력과 학대로 강요된 모습이었다. 이미 선수들의 실력은 세계적으로 입증됐지만 어느 부분에선가 ‘매질 없이는 정신력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이것이 잘못된 독재시대의 관습적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맞아서라도 성적을 내야 했던 것은 많은 부분 국위선양 등 ‘남의 눈’에 보여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대학생도 큰 관점에서 다르지 않다. 현재 대학가의 가장 큰 이슈는 ‘취업’이다. 취업은 물론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문제지만, 취업에 대한 각각의 비전들은 너무나 일반화돼 있다. 안정된 삶을 보장받는다는 공무원·교직이나 억대 연봉을 바라보는 대기업 사원, 혹은 각종 고시 합격의 꿈이 20대의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의 대부분이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나의 삶에 주목하기보다, 누군가 정해 놓은 성공한 삶이라는 기준을 향해 숨 가쁘게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다수의 그 길에 의심이 드는 자신을 갖가지 정당화로 진정시키기도 한다.

▲사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기엔 도저히 위험해 용기가 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런 길은 없었던 듯싶기도 하다. 현실은 차가우나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자신감을 잃어 변화 없는 일상에 타성이 생길 때 점점 긍정적 변화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사회적으로 약속된 욕심의 상한을 넘고자 할 때 치열한 고민과 준비 없이는 무의미하다. 진정한 ‘인생역전’은 굳이 로또를 안사도 된다. 자기에 대한 확신이 설 때 그리고 행동할 때 얼마든지 ‘당첨’은 ‘조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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