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행정수도건설특별조치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온 나라가 개혁과 반개혁의 구도로 양분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헌재의 결정으로 모든 개혁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데 차질을 빚게 됐다면서, 헌재의 결정을 반개혁세력 또는 심지어 수구반동세력의 책동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반면에 헌재의 결정을 반기는 야권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추진해온 개혁 정책들의 저의를 의심하면서, 내친김에 이른바 4대 개혁입법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제동을 걸 태세다. 정부와 여당은 개혁을 법으로 밀어붙이려 했고, 야당은 법으로 막으려 하고 있다.

 

하기야 우리는 지금 법치주의 시대에 살고 있고, 따라서 모든 문제는 법으로 해결되는 것이 마땅하다. 일찍이 한비자(韓非子)도 지적했듯이, 법은 문서로 기록돼 공포된 것이고 개인적인 의견이나 도덕적 판단을 배제한 것이기 때문에 분명하고도 객관적이다. 또한 법은 누구에게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제가 만든 법에 제 발목이 잡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컨대 법가의 선구자였던 상앙의 말로가 그랬다. 그는 한 때 여권을 소지하지 않은 사람은 여관에 투숙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는데, 자신이 정변에 휘말려 변방을 떠돌 때 그 법에 저촉됐던 것이다. 마치 야당이 여당과 함께 국회에서 통과시킨 법을 스스로 부정해야 하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개혁의 성패는 법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개혁의 성패는 국민들의 신뢰에 달려있다. 이 점을 정확히 간파한 설명이 주역(周易)의 49번째 괘인 혁(革)괘에 보인다. 개혁은 폐단을 고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역은 우물이 고이면 썩게 되고 썩으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혁괘를 48번째 괘인 정(井)괘 다음에 두었다. 그러나 주역은 개혁의 당위성만을 말하지 않고 개혁에 담아야 할 정신도 강조했다. 혁괘의 괘사(卦辭)는 이 점을 ‘개혁이란 시기가 무르익은 다음에 단행돼 신뢰를 얻을 때 실패가 없게 된다’고 표현했다. 개혁에는 때가 있고, 때를 놓치지 않은 개혁에 국민의 신뢰가 실릴 때 개혁은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과정을 돌이켜보면, 개혁을 주장하는 측이나 개혁에 제동을 걸려는 측 모두 그들의 주장을 국민의 믿음으로부터 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자기주장의 정당성만을 강변했고, 개혁의 성패를 좌우하는 국민들의 신뢰를 기다리지 않았다.

 

공자(孔子)는 정치의 요체를 묻는 자공(子貢)의 질문에 대해 경제(食)와 국방(兵)과 신뢰(信)의 세 가지를 들었다. 그 셋 중에서 공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백성들의 믿음이었다. 경제와 국방을 모두 버리더라도 백성들의 믿음만큼은 버릴 수 없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다. 백성들의 믿음을 구하고 그 믿음에 보답해 백성들에게 감동을 주려는 공자의 정치관을 덕치(德治) 또는 예치(禮治)라고 한다. 물론 법치주의 시대에 덕치나 예치가 그다지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법치와 개혁은 아무리 그럴듯한 구호로 포장돼도 모래 위의 누각에 불과하다. 노(魯) 나라의 장수 맹지반(孟之反)은 퇴각할 때 후미의 방어를 맡기 위해 뒤쳐졌으면서도 자신의 용맹을 자랑하지 않고 말이 빨리 달리지 못함을 책망해 병사들의 신뢰를 얻었다. 진정한 장수는 찌그러진 투구를 탓하지 않고 병사들로부터 신망 받지 못함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법이다.

 

최연식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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