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아트밸리(아래 헤이리)’는 다양한 문화공간이 공존하고 있는 마을이다. 지난 1997년부터 계획돼 7년 동안의 기나긴 노력 끝에 지금의 헤이리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이미 문을 연 공간보다 앞으로 태어날 공간이 더 많기에 아직은 시행착오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서서히 완성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예술가들의 마을, 헤이리를 찾아가 봤다.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마을.’

 

언뜻 듣기에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말이지만 이런 마을이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자유로를 따라, 임진각을 향해 달리다보면 어느덧 나타나는 예술가들의 삶의 터전, ‘헤이리아트밸리(아래 헤이리)’. 이 마을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처음에 이 곳은 ‘책마을’로 출발했지만, 이후 여러 문화예술인들의 참여가 이뤄지면서 ‘문화예술마을’로 거듭나게 됐다. 이러한 헤이리의 조감도가 나오기까지는 7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오랜 준비 기간 끝에 지난 3월부터 본격적으로 예술가들이 입주하면서 마을로서의 틀이 어느 정도 잡히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파주 지역에 전해오는 전래농요 「헤이리소리」에서 그 이름을 가져왔다는 헤이리. 현재 이 곳은 예술의 숨결과 흙내음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으로, 방문객들의 문화체험 공간으로 변모해 나가는 중이다.


헤이리의 빛과 어둠


마을 문턱을 넘어서니 가장 먼저 공사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헤이리에서 안내를 담당하고 있는 김준성씨는 “현재 헤이리에는 30여채의 건물이 입주해 있고 앞으로 1백여 곳이 더 지어질 것”이라며, “조만간 15만평에 달하는 마을 곳곳이 각종 문화공간으로 가득 채워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는 건물 중에는 우리대학교 신명순 교수(사회대·비교정치)의 ‘정치박물관’도 포함돼 있다. ‘정치박물관’에 대해 신교수는 “오는 2005년 5월에 문을 열게 될 박물관으로, 정당·선거·대통령에 관한 국내외 자료들을 전시하기 위해 건립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정치박물관 외에도 ‘아트서비스 영화촬영소’, ‘최만린 조각스튜디오’ 등도 개관을 앞두고 있어 헤이리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벌써부터 설레게 하고 있다. 아직 미완성된 마을이지만 공사현장 사이사이에는 이미 헤아리의 명소로 자리매김한 여러 문화공간들이 펼쳐져 있기도 하다.

 

헤이리에 있는 문화공간들은 저마다의 특색을 앞세워 기존 문화시설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전시공간에 국한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탈피, 방문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두거나 특정한 테마를 내세운 점은 헤이리의 문화공간이 가진 장점이다. 이영진씨가 18년 동안 수집한 70여개국 4백50가지 악기를 전시하고 있는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은 관람과 체험이 조화를 이룬 대표적인 복합문화공간이라 할 수 있다. 관람객들은 안내판에 적혀 있는 악기에 얽힌 사연들을 읽을 수 있으며, 일부 악기로는 직접 연주까지 할 수 있다. 이색적인 악기의 소리를 뒤로 한 채 박물관을 나서 다리를 건너면 ‘식물감각’이라는 독특한 문화공간을 마주할 수 있다. 1층에는 갤러리, 2층에는 레스토랑이 위치해 있는 ‘식물감각’은 이름 그대로 ‘식물’을 모티브로 해서 탄생했다. 우리 꽃 연구가로 알려진 ‘식물감각’의 마석현 대표는 “‘식물’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미의식을 심어주고 싶었다”는 말로 ‘식물감각’을 만들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식물감각’에서 느낀 싱그러움을 마음에 품고 길을 따라가다 보면 테마파크 ‘딸기가 좋아’가 발랄한 손짓으로 우리를 반긴다. ‘딸기가 좋아’ 조형진 팀장은 “사람들이 캐릭터 ‘딸기’를 좀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조성된 공간”이라는 말로 이 곳을 소개했다. ‘딸기가 좋아’는 크게 전시공간과 캐릭터 샵으로 구분돼 있고,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참여공간 역시 마련돼 있다. 

 

박물관부터 캐릭터 테마파크까지 다양한 문화공간을 자랑하는 헤이리지만 아직은 ‘건설 중’인 마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몇가지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남아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헤이리까지 가려고 할 때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이 불편하다는 점이다. 얼마전 헤이리를 다녀왔다는 정진희양(인문계열·1)은 “셔틀버스의 배차시간이 너무 길어 헤이리까지 가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지난 9월 ‘헤이리 페스티벌 2004’가 열릴 당시에는 셔틀버스의 배차시간을 평소보다 획기적으로 단축시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페스티벌을 위한 단기적 계획이었을 뿐,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되지는 못했다.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와 더불어 최근 헤이리는 ‘상업화’라는 해결하기 힘든 난관에 직면해 있다. 조만간 헤이리에 들어설 예정인 문화쇼핑센터 ‘더 스텝(The Step)’으로 인해 마을 자체가 상업지역과 차별성이 없는 곳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헤이리 주민 박성원씨는 “헤이리는 여러 예술가들의 삶의 터전이나 다름 없다”며, “예술을 창조해내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를 실험하는 마을 


여러 문제점이 산적해 있지만, “단순히 문화예술공간이 밀집돼 있는 곳은 있어도 예술인들이 모여 살면서 작업을 하는 곳은 드물다”는 미술평론가 이주헌씨의 말처럼 이 마을이 갖고 있는 희소성은 상당하다. 실제로 영국의 헌책방 마을 헤이온와이(Hay-on-wye)나 스페인의 문화도시 빌바오(Bilbao)처럼 문화공간이 밀집된 사례는 외국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헤이리는 그 자체가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인 동시에 삶의 터전이라는 점에서 외국의 사례와는 다른 차별성을 가진다. 이처럼 ‘헤이리’는 예술가의 삶, 창작, 관람이 동시에 이뤄지는 새로운 형태의 공간으로서 문화적인 인식이 얕은 한국땅에서 참신한 대안을 모색하는 실험의 장이 돼주고 있다. 각자의 꿈을 품고 이 곳을 찾은 3백 70여 명의 예술가들은 오늘도 헤이리 들판을 향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들에게 주어진 삶을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글 최욱 기자

        weezer512@yonsei.ac.kr

        /사진 이성은 기자

        selovi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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