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데리다

 

자크 데리다(1930~2004)가 타계했다. 한국 시간으로 지난 10월 9일, 지병인 췌장암으로 더 이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수많은 언론은 그 날 이후로 끊임없이 한 프랑스 철학자의 죽음과 사상을 지면에 싣고 있다. 데리다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전세계가 그의 죽음에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 매혹적인 그의 철학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자.


기생충은 형이상학을 해체하고


플라톤을 시작으로 하는 서양철학은 인류 역사의 흐름과 함께 ‘형이상학’이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구축해왔다. 형이상학은 로고스(언어)에 의해 구축된 것이며, 데리다는 바로 이 언어를 재구축해 거대한 형이상학을 해체시킨다. 이승종 교수(문과대·언어철학)는 그의 저서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에서 “데리다의 해체는 마치 기생충과 같이 개념과 이론에 딱 달라붙어 그들 스스로가 자기를 파괴하게끔 유도한다”고 데리다의 해체론을 설명한다. 망치로 구축물을 때려 부수듯 외부의 직접적인 힘으로 해체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에 ‘기생충’을 투입시켜 스스로 해체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데리다는 어떤 기생충을 투입해 언어를 재구축하는 것일까. 프랑스 구조주의 학자 소쉬르는, 기호의 시니피에(signifie, 의미)는 그 대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호와의 관계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오징어’라는 기호는 실제로 존재하는 오징어에 의해 그 기호를 획득한 것이 아니라, ‘문어’, ‘낙지’ 등 다른 기호와의 차이로 인해 그 뜻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데리다 철학의 출발은 바로 이 구조주의와 함께 한다. 하지만 그는 ‘차연’이란 개념을 가져와 소쉬르의 구조주의와 자신의 철학을 차별화한다. 문창옥 교수(문과대·과학철학/형이상학)는 “소쉬르가 언어를 고정된 구조체계로 봤다면, 데리다는 이를 부정하며 언어를 고정된 틀 없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간주했다”고 말한다. 소쉬르가 기호와 기호 사이의 ‘차이’에 주목한 데 반해 데리다는 더 나아가 ‘차연’에 주목한 것이다. “차연은 ‘차이’와 ‘지연’을 복합해 만든 단어로 보면 된다”는 문교수의 말처럼, 소쉬르가 공시적인 측면에서만 봤던 ‘차이’를, 데리다가 시간적 연장을 뜻하는 ‘지연’이란 개념을 첨가해 통시적인 개념인 ‘차연’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차연’으로 인해 기호는 고정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게 되며, 따라서 이런 기호들의 집합체계인 ‘언어’로 이뤄진 형이상학은 더 이상 완전하고 확정적인 구조로 서 있을 수가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데리다의 기생충을 이용한 해체인 것이다.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교수는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을 통해서 “데리다에게 텍스트는 푸코에게 있어서의 권력과 같은 것으로, 데리다 철학 연구의 알파요 오메가인 것 같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교수는 “데리다가 말하는 ‘텍스트’는 어떤 종류든 언어에 의해 표현될 수 있는 모든 것에 적용된다”며 텍스트라는 용어가 데리다에 의해 매우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음을 얘기한다. 그 중에서도 데리다가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씌어지거나 말로 표현된 문장의 집합체로써의 텍스트이며, 이는 앞에서 밝혔듯 데리다의 ‘차연’으로 인해 해체됐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는 철학도 사실은 어떤 ‘텍스트’를 구성하고 펼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데리다에 의하면 철학은 기껏해야 텍스트의 일종이다. 데리다가 그의 저작 『그라마톨로지』에서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선언한 것은 바로 그런 의미였다.

 

데리다의 텍스트 해체는 문학비평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뜨는 ‘작가의 죽음’을 얘기한다. “과거의 작가는 텍스트를 낳은 아버지이자, 텍스트를 창조한 창조주에 버금가는 위치에 있었다”고 이석구 교수(문과대·현대영소설)는 고전적인 시각에서의 작가의 의미를 밝힌다. 이러한 믿음이 데리다에 의해 부정되는 것이다. “데리다에 의하면 텍스트로 이뤄진 문학작품에 고정되고 결정된 의미는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문학작품 속 작가의 의도 역시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교수는 설명한다. 데리다의 ‘차연’은 언어의 고정된 의미가 없음을 밝혀냈고, 따라서 언어로 씌어진 문학작품 역시 작가의 의도가 개입될 수 없는 것이다.

 

형이상학의 이항 대립적 특성과 데리다 철학의 목적


그렇다면 데리다는 형이상학의 어떤 특성 때문에 그것을 해체하려 한 것일까. 서울대 철학과 김상환 교수는 “형이상학은 이항 대립적 체계를 본성으로 한다”며 데리다가 해석한 형이상학을 소개한다. 데리다는 형이상학이 ‘이성·진리·실재·질서·선(善)과 아름다움·완전성’ 등과 ‘감성·거짓·가상·무질서·악(惡)과 추함·불완전성’ 등을 이분화시켜 전자를 우월한 것으로, 후자를 열등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대립체계는 니체가 역설한 것처럼 플라톤적 이원론과 기독교적 세계관에 의해 확립되고 확산된 것으로 데리다는 간주했다”고 김교수는 설명한다. 데리다는 더 나아가 이러한 형이상학적 이항 대립이 우리의 가까운 주변에 잠복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백인과 흑인, 서양과 동양, 남과 여의 대립 등이 형이상학의 영향이라고 간주한다. 언어와 이성을 맹신하는 로고스 중심주의, 문자보다 음성을 중요시 하는 음성중심주의, 남성을 여성보다 우월한 것으로 보는 남근중심주의 등이 모두 형이상학의 영향 아래 있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이와 같은 이분법적인 구도을 제거하기 위해, 형이상학으로 추앙받고 진리로 믿어지며 우상으로 숭배받는 모든 것에 그 이유가 전혀 없음을 얘기한다”고 이석구 교수는 데리다 철학의 목적을 말한다. 진리의 기원과 그 근원을 부정하고, 언어로 이뤄지는 형이상학을 해체하려는 시도가 바로 우월함과 열등함으로 분리하는 서양 철학과의 정면대결로 이어진 것이다.

 

데리다는 이분법적 사고의 극복을 위해 철학적인 논증만을 외치지는 않았다. 데리다의 사상은 그의 행동을 통해서도 실현됐다. 만델라 구명운동, 인종 차별 반대 운동, 동성애자 차별 철폐 투쟁 등 그는 온몸으로 자신의 사상을 세상사람들에게 보여줬다. 또한 죽을 때까지 기아, 인종주의, 핵문제 등에 관한 연구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인생은 유한해도 그 사상만은 영원한 법, 이제 철학사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데리다와 그의 해체론이 앞으로 어떤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나갈지 자못 궁금해진다.

 

        /윤성훈 기자 saintange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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