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연구’는 대학을 지탱하는 가장 큰 두 축이다. 그동안 대학은 학생을 가르치고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초점을 맞춰온 반면 연구분야에는 소홀한 면이 있었다. 최근에는 대학의 연구기능이 중시되며 이를 주도해나갈 수 있는 연구소 설립도 매우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나, 연구소의 양적 성장이 질적 성장을 반드시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갑작스럽게 증가하는 연구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다.


‘우후죽순’, 급증한 연구소


현재 우리대학교에는 대학교부설연구소 25개, 대학간연구소 16개, 대학(원)부설연구소 90개 등 총 1백31개의 연구소가 있다.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하는 시점에서 전문화·세분화된 다양한 연구소가 존재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지난 1990년대 이후 설립된 연구소가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최근 급증하는 연구소에 따르는 문제점도 많다.

 

그 중 가장 큰 문제점은 연구소 운영의 어려움이 심화된다는 점이다. 연구소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대학에 주어진 제약조건은 크게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각 연구소에 할당되는 지원은 줄어든다. 일반적으로 연구비는 교수개인 혹은 연구팀이 외부로부터 수주하는데, 이 중 90%는 연구활동비로, 6%는 차후 연구활동을 위한 적립금으로 사용되며, 나머지 4%만이 행정직원 급여·기자재 비용과 같은 연구소운영비로 지급된다. 그러나 연구소가 증가함에 따라 교수들이 다양한 연구소의 연구원을 겸임할 수 있는 기회가 늘었기 때문에, 한 교수가 자신의 명목으로 받은 연구소운영비를 특정 연구소에 지원하기보다는 여러 연구소에 분산해 지원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따라서 학교 전체적으로는 변화가 없지만, 늘어난 연구소 수 때문에 각 연구소가 할당받을 수 있는 지원비는 줄어들어 연구소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연구 분야 및 성격이 비슷한 연구소가 중복되거나 지나치게 세분화된 연구소가 설립돼 효율성이 감소하기도 한다. 한 곳으로 집중돼야 할 인적·재정적 지원이 여러 곳으로 분산돼, 대규모의 집중력이 필요한 큰 과제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다. 한 대학원생은 “연구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전문가들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세분화된 대학연구소가 너무 많아 협력관계를 이루기 어렵다”며 학제간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을 지적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소 설립시 기존연구소와 통합가능성을 비교하는 절차를 거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연구소가 중복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 연구소는 뚜렷한 차별성을 보이기는 커녕 중복투자를 늘리고 시너지 효과를 낮추기만 해 문제가 되고 있다.


연구소에 대한 평가, 과연 어떠한가?


일련의 과정을 거쳐 설립된 연구소의 관리 및 평가에 대해서도 문제점이 지적된다. 지난 1993년 이후 시행하고 있는 연구소 평가는 격년제로 인문·사회·예체능계열, 자연계열 연구소로 나눠 실시되며, 올해는 인문·사회·예체능계열 연구소가 평가대상이었다. 평가는 평가대상인 연구소가 자체평가 보고서를 제출한 뒤 학교에서 구성한 연구소 평가위원이 연구소를 직접 방문해 이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과연 이 평가가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선 평가기준표가 연구소의 활동 및 현황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올해 연구소 평가위원이었던 윤여탁 교수(교과대·체육원리)는 “표준화된 연구소 평가기준표가 각 연구소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교내 연구소를 평가하는 기준표는 인문사회계열, 예체능계열, 이학계열, 공학계열, 의학계열 등 5가지로 표준화돼 있다. 하지만 이를 연구 분야와 성격이 상이한 1백31개의 연구소에 일괄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기준표 문항 가운데 ‘~의 합리성’, ‘~의 적절성’과 같이 주관성이 개입될 수 있는 정성평가가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객관적으로 측정가능한 정량평가는 그 평가기준이 낮아 대부분 연구소의 평가점수가 높게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한편, 연구소 평가위원들이 평가대상연구소를 방문해 검토하는 시간이 30분 안팎에 그쳐 ‘수박 겉 핥기식’ 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 역시 문제다.

 

이처럼 애매모호하고 미비한 평가 절차는 그 결과로 드러난다. 앞서 제시된 평가과정 중 1백점 만점에 85점 이상은 우수연구소(A), 70점 이상은 장려연구소(B), 60점 이상은 활성화권장연구소(C), 60점 미만은 비활성연구소(D)로 분류된다. 우수연구소나 장려연구소로 평가되면 일정액의 추가지원을 받게 되며, 비활성연구소로 2번 이상 지적되면 그 연구소는 폐쇄된다. 지난 6월 평가결과, 평가대상연구소 가운데 A는 20개, B는 5개, C는 1개로 나타났다. 윤교수는 “평가 결과가 정규분포형으로 나타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재는 85% 이상이 우수연구소로 평가된다”며, 현재 평가방식에 취약점이 있음을 시사했다. 이처럼, 형식적 측면이 강한 현재의 연구소 평가는 연구소의 활동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유명무실한 연구소를 가려내고자 했던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연구실적은 기대에 못미쳐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점은 이런 규모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실적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 연구소의 부소장을 맡고 있는 ㅇ교수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형식적 평가위주의 국가제도”라고 설명했다. 대한교육협의회 등에서 실시하는 대학평가에 ‘연구소 개수’가 들어가기 때문에 연구소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이에 대한 학교의 지원은 부족해 실질적인 연구활동에는 어려움이 많다. 특히 학교 차원에서 각 연구소에 지원하는 연구비가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연구관련비는 외부과제비나 수익사업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공계열에 비해 대형프로젝트가 적은 인문·사회계열은 그마저도 어렵다. 뿐만 아니라 교수들이 연구소 활동에 주력할만한 동기 부여도 부족하다. ㅇ교수는 “연구소 활동으로 추가수당을 받기는 커녕 교수 업적 평가에 반영되지도 않는다”며, “재정적·정신적 지원 부족으로 많은 교수들이 연구소 활동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목상 많은 연구소가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이를 운영해나갈만한 적절한 여건이 주어지지 않아 연구소 활동이 침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진흥과 곽창순 직원은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 매년 지원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며, 재단적립금을 늘리거나 연구원들이 외부과제를 많이 수행하는 장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한편 향후 전반적인 연구소 정책에 대해 연구처장 김중현 교수(공과대·고분자공학)는 “그동안 연구소의 양적 발전에 힘써왔지만 앞으로는 미래지향적이고 경쟁력있는 분야에 집중 투자해 질적 발전을 위해 힘쓸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평가 기준을 도입해 연구소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유사하거나 실적이 미비한 연구소는 다른 연구소와 통·폐합시켜 학제간 연구를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김교수는 “학교는 연구를 최대한 ‘장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이런 노력은 각 분야에 특화된 연구소를 설립하는 데 집중됐으나, 그 결과 연구소의 급증은 중복 투자를 유발하고 학제간 연구를 어렵게 하는 등 오히려 연구소가 본연의 활동을 수행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이제는 연구소들이 최상의 환경에서 좋은 실적을 낼 수 있도록 내부 경쟁력 강화에 힘쓸 때다.

 

        /이혜윤 기자 gkdns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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