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운동'의 의미를 진단한다

“축 처진 어깨, 힘없는 걸음걸이,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 이 시대 남성의 모습이다. 집안에서 더 이상 ‘가장’으로서의 권위는 없지만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그들. 직장에서는 해고의 불안감 속에서 지내면서도 ‘남자’란 이유로 그런 감정조차 쉬이 드러내지 못한다.”

남성운동은 이렇게 현대사회에서 남성에게 부과된 과중한 책임과 억압, 그리고 권위의 상실을 지적하면서 남성상을 재고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많은 사람들이 남성운동이 여성운동에 대한 반발로서 등장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남성운동과 여성운동이 언제나 대립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남성운동의 태동에 여성운동이 기여한 바가 크다. 이에 대해 한국남성연구회 정채기 회장은 “여성운동이 활성화되고 그로 인해 남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위협받게 되면서 남성들이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남성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한 남성운동은, 그들이 억압받는 원인을 어디서 찾느냐에 따라 여러 갈래로 구분된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남녀간의 전통적 역할 구분을 옹호하는 보수주의적 관점이다. 이들은 여성운동과 사회변화로 전통적 성역할이 붕괴된 데서 남성 억압의 원인을 찾는다. 한국남성협의회 이경수 회장은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여성만을 위한 각종 법률 제정은 남성에 대한 탄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남성들이 가해온 압박에 대한 성찰 없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생각”이라는 정회장의 말처럼 많은 비판의 소지를 안고있다.

이와는 전혀 반대로 가부장적 문화를 비판하면서 전통적 성역할 구분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친여권론적 관점도 있다. 여성들이 ‘여성다움’에 의해 구속당하는 것처럼 남성들도 ‘남성다움’에 의해 구속당한다고 생각해, 남성성과 여성성의 조화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여성운동과 친여권적 남성운동의 확산으로 남성들이 오히려 더 큰 고통 속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남성들에 대한 역차별을 비판하는 남성권리회복의 관점과, 정신적 측면에서 여성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남성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정신주의적 관점 등 다양한 노선이 존재한다.

현재의 남성운동은 많은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노선별로 관점이 워낙 다양해, 각 단체별로 서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보수주의적 관점의 남성해방단체에서는 친여권론적 관점을 “여성과 타협하고 그들의 남성 억압에 동조하는 여성운동”이라며 남성운동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또 대중적으로도 잘못된 인식이 팽배해 있다. 남성운동의 여러 갈래와 각각의 관점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특히 온라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남성운동 모임 중 다수가 남성운동에 대한 잘못된 인식 위에서 여성운동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친페미니즘, 반페미니즘, 중립적 노선 등 다양한 남성운동의 활성화는 성역할 및 성차별의 문제를 어느 한쪽의 성으로만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발전적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첫걸음이라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이에 대해 조한혜정 교수(사회대·문화인류학)는 “다양한 여성운동과 남성운동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함께 나아간다면 사회 변화에 적응하면서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남성운동은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전환과 발전적 조화의 모색이라는 과제를 안고 그 시험대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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