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톰’과 ‘공각기동대’가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서 탄생했는지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문명론을 다루는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의 1920년대 작 『로봇』이 국내에는 지난 2002년에서야 소개됐는데, 일본에서는 이보다 60년 정도 더 빨리 소개됐다”고 최건영 교수(문과대·슬라브문학)는 지적한다.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차페크의 상상력 뛰어난 문학 작품이 바다를 건너가,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 세계적인 만화 캐릭터 ‘아톰’을 만들어 낸 것이다.

현재 국내 청소년 권장도서나 세계문학전집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은 영미권과 프랑스, 독일, 러시아의 고전이 대부분이다.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은 이들 작품 위주로 독서를 한다. “이러한 독서 편식은 읽는 이의 세계관과 문학관을 협소하게 만들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이 최교수의 지적. 소수민족의 문학작품까지 모두 읽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이미 세계에서 크게 인정을 받고 있는 작품이 한국어로 번역이 안돼 국내 독자들이 접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현재 다른나라에서는 보편화돼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소개조차 되지 못한 문학이 바로 러시아를 제외한 슬라브 문학이다”고 최교수는 설명한다. 밀란 쿤데라를 제외한 체코 작가나, 폴란드 작가, 그리고 헝가리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는 국내 독자들이 거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페르디두르케』(1937), 『포르노그라피아』(1960).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1백1번째, 그리고 1백2번째 주인공이다. 사르트르에 견줄 만한 폴란드의 실존주의 작가 비톨트 곰브로비치가 2004년이 돼서야 국내에 소개된 것이다. “사르트르나 카뮈가 2004년에 소개된 거나 다름없다”는 최교수의 지적은 슬라브 문학에 대한 열악한 국내 기반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편집을 담당하고 있는 편집3팀 이지영 팀장은 “1백번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작인 만큼, 매우 뛰어나고 세계적으로도 높은 명성을 얻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는 소개되지 못한 작가를 선택하려고 노력했다”고 곰브로비치의 작품이 선택된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소개된 작품 역시 폴란드어판이 아닌 프랑스어판을 중역한 것이다. 이에 이팀장은 “체코문학이나 폴란드 문학 등은 국내 번역전문가들이 부족해 힘든 점이 많다”고 털어놓으면서,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다”고 자체 평가했다.

슬라브 문학의 원래 쓰여진 언어를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려는 노력도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길’ 출판사에서 지난 2002년부터 슬라브 문학 총서를 출간하고 있는 것.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카렐 차페크의 『로봇』, 브루노 슐츠의 『계피색 가게들』과 『모래시계 요양원』이 처음으로 한국어로 번역됐고, 플라토노프의 『구덩이』, 코와코프스키의 『라일로니아 왕국』 등이 현재 출간 예정에 있다. 모두 우리대학교 노어노문학과 혹은 인문학부를 마친 1990년대 학번의 젊은 연구자들이 번역한 것이다. 이들을 지도했고 이번 슬라브 문학 총서를 기획한 최교수는 “이들이 성장해 국내에도 슬라브 문학에 대한 연구가 뿌리를 내리면 앞으로 좋은 작품들이 많이 소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유럽에서는 초등학생부터 읽는 괴테와 발자크를 우리는 대학생이 돼서야, 그것도 인문학에 관심있는 학생들 정도만 찾아 읽는다. 게다가 슬라브 문학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많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경제 성장을 최우선의 목표로 달려 온 우리 정부와 국민이기에,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만 되뇌일 뿐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로봇’의 예에서 봤듯이 한 작품의 소개는 그것 하나로 끝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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