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대학인의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지난 세기 우리사회에서 대학과 대학에 몸담은 사람들이 보여준 사회변혁적 역량은 결코 폄하할 수 없을 것이다. 권위주의 체제의 효율적 통제 가운데 대학생들은 다른 어느 사회조직의 구성원보다 자율성을 보였으며, 결국 대학생의 정치참여는 우리의 민주화 과정에서 의미 있는 축을 형성했다. 다른 한편, 후발 산업국으로서 우리의 경제성장이 주로 선진경제에 대한 ‘학습’을 통한 성장이었다면, 그 효과적 학습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우수한 인적자원을 꾸준히 제공했던 것도 대학이었다. 지난날 대학과 대학생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지금의 사회모습을 결정하는데 무시하지 못할 존재의의를 가졌다고 하겠다. 

 

최근 10년 사이 대학생의 사회참여의 강도, 횟수, 영향력 등은 기존의 그것에 비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문제는 파행적 현실정치에 대한 저항을 넘어선 대학생의 사회참여를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학생의 사회적 무의미함은 과연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우리사회가 점점 다양한 정체성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유독 대학생은 그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지식의 비정규적이고 불규칙한 확대는 결국 대학을 형해화하고 마는 것일까? 이제 더 대학과 사회의 접점은 없는 것일까?

 

해답에 앞서 우선 왜 최근에 대학과 대학생이 갖는 사회변혁적 역량이 변화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우리 대학생들은 현재와 미래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다. 사회갈등의 무제한적 표출, 상충이익의 정면대결, 그리고 문제해결방식 자체에 대한 합의의 부재 등으로 지금의 대학생들은 어느 세대보다 세대적 단절을 느끼고 있으며, 이들은 기존세대에 의한 사회화 또는 동화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최근의 한 조사에서는 상당수의 대학생들이 이념에 상관없이 기존 질서에 대해 염증·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회조건과 맞물리면서 개인을 급격히 원자화시킬 수 있다. 일본사회에서 보수와 혁신이 소모적 갈등을 벌이고, 동시에 풍족한 사회를 맞이한 후 일본 대학생들이 상당수 자기폐쇄적 경향으로 나아갔던 것이 남의 일이 아니게 됐다.

 

둘째, 1990년대 후반 이후 우리경제가 세계화로 급속히 편입되면서 구미의 기업과 유사하게 우리 기업들도 단순한 학벌위주에서 학생 개인이 축적한 지식을 고려하게 됐다. 따라서 이전 보다 학생들에게 있어서 교과과정에서 습득한 정보와 지식은 자신들의 장래를 결정하는 데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구조는 학생들로 하여금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대학생활을 선호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선택받은 소수가 되려는 욕구에서 기인한 과도한 교육열은 부메랑으로 돌아와 고등교육을 받아도 소수가 아닌 다수의 부분으로 머무르게 했다. 즉 대학교육의 대중화는 대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을 무디게 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진학률은 세계 1위인 74%로 선진국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대학생 비율이 가장 높다.

 

현재 대학생들의 생활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바쁘지만, 사회적으로는 무기력에 빠진 것 같다. 이런 대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사회적 견해와 행동이 사회공동체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신념’이다. 최근 다양한 시민단체의 활성화로 대학생의 사회참여 기회는 확장되고, 참여의 비용 또한 낮아졌다. 물론 이러한 시민단체를 통한 대학생들의 사회적 참여는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대학생의 참여는 시민단체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 변화에 따라 참여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 과거의 집단행동적 참여와는 달리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참여는 사회적 의사소통 가운데 핵심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 하겠다. 네트워크 사회가 진행되면 될수록 네트워크라는 형식을 채울 내용으로서 새로운 아이디어의 필요성은 더욱 증가한다.

 

대학의 역할에 대한 회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여전히 창의적 아이디어를 생산하는데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가진 공간이다. 대학은 지식의 생산과 보존의 역할 즉, 공장과 창고의 역할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지식생산에 있어서 이러한 복합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학은 새롭게 유입되는 지식과 기존의 축적된 지식을 새롭게 결합하는 순발력을 보인다. 이러한 환경에서 대학생들의 사회적 참여는 과거의 경직된 담론을 넘어, 담론의 새로운 확장과에 관심을 보이며, 결국 사회적 의사소통에서 새로운 내용을 보내는 ‘발신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대학생들이 개별적 이익을 초월한 입장에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려 노력하며, 이를 위해 다양하고 실용적인 작은 공동체들을 실험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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