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문화생활’이란 명목으로 공연을 보러 다닌다. 그 과정에서 일상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감동을 맛보기도 하고, 여러가지 생각들을 안고 돌아온다. 우리가 보는 공연은 배우들이 만든 하나의 ‘작품’을 보는 것이다. 배우들은 하나의 텍스트를 연기해 ‘공연’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대부분공연 작품을 ‘볼’ 뿐 공연을 직접 ‘해 본’ 경험은 별로 없다. ‘공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를 울게도, 웃게도 하는 작품 속에서 살고 있는 ‘배우’들. 그들과 우리는 무엇이 다를까. 우리는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이번 여름방학에 나는 『삼류배우』라는 연극에서 한창 무더위에 찌든 8월 햇살도 녹여버릴 만큼 강렬한 ‘일류배우’의 인생을 보게 됐다. 작품의 주인공 ‘이영진’은 30년이 넘는 세월을 배우로 살았지만 항상 단역만 맡는 ‘삼류 배우’다. 언젠가 유명한 희곡 『햄릿』의 주인공을 꼭 연기하겠다는 열정으로 가족들과 항상 대본 연습을 하곤 하지만, 단역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래도 영진은 가족들에게 “나는 비록 비중 없는 단역을 맡는 삼류인생이지만 남들에게 웃음과 울음, 감동을 주는 일류직업”이라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햄릿역을 맡은 주연배우가 사정으로 못 맡게 돼 그 배역을 영진이 대신하는 행운이 찾아온다. 그는 기뻐하면서 열의를 다해 준비하지만, 당일 주연배우가 공연시간에 맞춰 돌아오면서 기쁨은 좌절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영진은 연극이 끝난 뒤 그의 연기를 보기 위해 찾아온 가족들만 앉혀 놓고 어두운 무대 속에서 홀로 햄릿 연기를 펼친다. 주인공 영진은 공연하기 전 가족들에게 말한다. “입장료는 여러분의 사랑, 제가 받을 출연료는 저의 추억입니다.” 그는 조명빛이 남아 있는 쪽으로 속삭이듯 절규한다. “불 좀 줘…불 좀 줘…정말 귀한 손님들이 오셨어…제발 불 좀 줘…” 그리고 그는 15분 동안 햄릿 작품에 나와 있는 모든 배역들을 혼자서 연기한다. 눈물로, 배우로서의 열정으로 혼신의 연기를 펼친다. 눈부신 조명 아래서 온 몸에 땀이 흐르고, 그는 정말로 표현하고 싶었던 웃음과 울음을, 감동적인 ‘일류’의 모습을 몸과 마음을, 처절하게 토해낸다. 그의 간절함과 비통함이 무대를 꽉 메우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나는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온 힘을 다해 연기하는 그의 모습 속에는 진정한 ‘삼류배우’로서의 열정이 있었다.

 

한 선배가 나에게 인생을 살면서 결코 쓰레기가 되지 말라는 말을 했었다. 뚜렷한 삶의 목표와 철학을 가지고 자신만의 색깔을 띠는 사람이 되라고 말이다. 지금 나는 쓰레기인지도 모른다. 나 자신도 온전히 파악하지 못했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헷갈린다. 그러나 나는 쓰레기도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각자 색깔이 있고 쓰임새가 있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무대에 서 있는 배우다. 비록 지금 배역이 쓰레기 같은 삼류일지라도, 가슴속에 뜨거운 열정이 살아 있다면, 그 열정을 과감히 실현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지금 우리는 가슴 속에 ‘일류’를 간직한 삼류배우들인 것이다.

 

일류배우를 향한 열정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삼류배우 주인공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해서였을까… 연극이 끝나고 커튼콜을 하면서 관객들 모두가 박수를 치고 있는데 눈물이 그칠 줄 몰랐다. 뜨거운, 그러나 정말 한없이 시원한 느낌으로 마음껏 눈물을 쏟았다. 가슴 속에 뜨거운 ‘일류’의 열정을 지니고 살아가는 삼류배우들이 진정한 ‘일류배우’가 아닐까.  

 

        /김용건(신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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