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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토불이> 구슬픈 울음 속에 담긴 낙동강의 한(恨)김정한 소설 '모래톱 이야기'의 배경 을숙도를 찾아
  • 윤성훈 기자
  • 승인 2004.09.05 00:00
  • 호수 1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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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마이섬의 갈밭 속에서 나고 늙어 간다는 데서 지어졌으리라 믿어 왔던 갈밭새란 별명에, 어쩜 그가 즐겨 굴리는 그 가래 소리가 갈밭새의 울음 소리와 비슷한데 연유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조마이섬의 지킴이, ‘갈밭새 영감’. 태백의 황지에서 시작하는 낙동강 그 기구한 물줄기가 경상북도와 남도를 지나 마침내 바다와 만나는 곳에 그가 있다.

현재를 그리는 소설의 특성 때문일까, 갈밭새 영감이 오늘도 꿋꿋하게 지키고 서 있을 것만 같은 남쪽나라를 향해 경부선 열차는 한강을 힘차게 박찬다. 1천3백리에 이르는 낙동강의 멀고 먼 여정만큼이나 깊숙히 품고 있을 그의 기구한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차는 무심히 부산역에 도착한다. 시원한 바닷바람, 담장너머 정박 중인 선체들의 위용, 그리고 투박한 경상도 방언이 피부를 흠뻑 적신다. 드디어 요산 김정한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던 부산에 도착했다.

김정한이 태어나 스무해가 넘도록 살았다는 그의 생가는 부산의 진산(鎭山) 금정산 앞으로 앉아있다. 작가의 대표작 『사하촌』의 ‘보광사’ 배경으로 알려진 ‘범어사’가 굽어보는 곳이다. 사람들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둔 김정한 생가는 단아한 한옥 앞마당에 내리쬐는 햇살 가득한 바람만큼이나 굳건하면서도 가슴 포근한 작가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김정한 생가가 있는 범어사역에서 부산 지하철 1호선을 타고 한 시간 남짓 내달려 하단역에 도착했다. 『모래톱 이야기』의 어린 소년 ‘건우’가 매번 집으로 돌아갈 때 이용한 나룻터가 바로 이곳에 있는 ‘하단나루’다. 하구둑이 생겨 자동차가 마음대로 오가는 지금, 나룻터는 자취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나룻터 대신 높다란 아파트가 즐비하고 있을 뿐. 한(恨) 많은 사연들이 빼곡히 쌓여 모래톱이 있어야 할 낙동강 둔치엔 사람도 건널 수 없는 넓은 차도와 아파트만이 병풍을 치고 있다. 조마이섬을 만들어 낸 낙동강은 이제 아름다운 풍광만을 뽐내는 절름발이가 됐다. 낙동강 물줄기와 함께 생을 영유했던 민중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듯 변해버린 것이다.

어느 하늘에서인지 종달새가 재잘재잘 쉴 새 없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잔등에 땀을 느낄 정도로 발을 재게 떼놓아, 건우가 사는 조마이섬에 닿았을 때는 해가 얼마만큼 기운 뒤였다.

“부산말로 ‘쪼마이’가 주머니 아잉교.” 다리 위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의 말 너머로 해는 조금씩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섬에 들어서 보니 섬 중앙은 시민들의 휴양지로 개발돼 있었다. 이제 집으로 가기 위해 갈대밭을 한참 헤치고 가야했던 건우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섬의 개발로 모래톱마저 대부분 사라진 지금 을숙도가 오늘에도 여전히 을숙도일 수 있는 이유는 변함없이 섬을 지키는 갈대와 철새가 있기 때문이다.

“섬 남단에 일반인들 못드가게 하는 데가 있는데요, 거 함 가보세요. 거 가면 아마 갈대밭과 철새들이 마이 있을끼라요.” 섬을 자신의 몸과 같이 걱정하던 어른스러운 건우처럼, 섬에서 하단 쪽을 멍하게 바라보던 한 소년의 말에 무거운 발걸음을 남으로 향한다. 낙동강과 남해가 접하는 곳. 길 옆에는 강인지 바다인지 모를 푸른 물줄기가 을숙도를 감싸고 있다. 남쪽 나라에 경계 따윈 없었다. 바다와 강이 공존하고 있으며, 철새와 날치가 함께 뛰놀고 있다. 물줄기를 옆에 끼고 남쪽으로 내려가자, 드디어 제법 무성한 갈대밭이 보인다.

길가 수렁과 축축한 둑에는 빈틈없이 갈대가 우거져 있었다. 쑥쑥 보기 좋게 순과 잎을 뽑아 올리는 갈대청은,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과는 판이하게 하늘과 땅과 계절의 혜택을 흐뭇이 받고 있는 듯, 한결 싱싱해 보였다.

강바람인가, 바닷바람인가. 가슴 시원한 바람이 섬을 덮친다. 남쪽으로는 남해가 섬을 받치고, 물이 드나드는 곳엔 갈대밭이 우거졌다. 강은 바다와 만나 땅을 만들었고, 그 땅위로 싱싱하게 뻗은 갈대밭이 바람에 휘청이고 있다. 바람에 꺾이면서도 여지없이 일어서는 갈대의 끈기는 섬을 지키려던 예전 섬 사람들의 굳은 의지와 꼭 닮아있다. 갈대밭에서 날다 쉬다 하는 백로, 왜가리, 도요새의 기품은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곳이 조마이섬임을 온몸으로 와닿게 한다.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둑을 허물고, 이를 막는 유력자의 하수인을 물에 빠뜨린 갈밭새 영감의 굳은 의지가 아마 갈대밭에서 목을 길게 빼고 있는 새하얀 갈밭새와 분명 흡사하리라. “여 철새들 어마어마 하지요? 이따만한 철새들이 끼룩끼룩 울 때는 내가 다 슬퍼지더라니깐.” 섬 전체를 한 바퀴 뛰고 있던 한 아저씨는 철새가 날개를 펼치듯 양 팔을 넓게 벌리며 말을 건넨다.

우리 조마이섬 사람들은 지 땅이 없는 사람들이요. 와 처음부터 없기싸 없었겠소마는 죄다 뺏기고 말았지요…(중략) 별안간 왜놈의 동척 명의로 둔갑을 했더란 것이었다…(중략) 건우 할아버지는 그렇게 해서 다시 국회의원, 다음은 하천부지의 매립허가를 얻은 유력자……이런 식으로 소요자가 둔갑되어 간 사연들을 죽 들먹거리더니

섬 사람들의 젖줄과 같은 낙동강 물이 몇 천년간 갖은 풍상과 홍수를 겪어 고운 모래로 빚어낸 조마이섬. 지금 이곳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섬의 파수꾼 갈밭새 영감도, 모래톱을 사랑하는 건우도 없다. 이제 조마이섬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학술적인 목적을 지니고 연구를 하거나 휴양을 즐기러 온 사람들에게나 가치있는 공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땅을 빼앗긴 데 이어 삶의 터전마저 잃어버린 섬 사람들. 강과 바다와 갈대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갈밭새는 예전보다 더 애달픈 목소리로 구슬피 울고 있었다. 섬사람들의 기구한 사연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어느덧 긴 여름철을 뒤로 하고 있는 조마이섬.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박물관’이 돼버린 을숙도지만, 갈밭새 영감의 눈초리와 꼭 닮은 갈밭새들 만큼은 내년에도 어김없이 찾아와 섬을 지키는 파수꾼 노릇을 할 것이다. 요산이 그랬고, 갈밭새 영감이 그러했던 것처럼.

윤성훈 기자  saintange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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