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잡이 배를 따라서

‘쏴아’ 망망대해 위로 자욱이 어둠이 깔릴 무렵, 기자단을 태운 어선은 파도 위를 시원하게 가른다. 오징어축제 둘째 날, 오징어잡이 취재를 위해 이곳 울릉도까지 달려온 기자단은 앞뒤 생각할 것 없이 오징어조업체험승선에 몸을 맡겼다. 지난 이틀 동안 저동항에서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바다 위를 질주하려니 숨이 탁 트이는 게 흥취가 감돈다.

“그러다 바다에 나자빠져뿌도 난 몰라요.” 어선 위를 이곳저곳 헤집고 다니는 기자들에게 선장은 연신 주의를 준다. 꺼무잡잡한 얼굴에 숫접음이 절로 묻어나오는 ‘대복’호 선장 손모익씨(55). 울릉도에서 태나고 자란 그는 지금까지 오징어잡이만 30년째란다. 어릴 때부터 오징어잡이 배에 종종 승선했다니 그야말로 일생을 오징어와 함께 한 ‘오징어인생’이다.

이윽고 배가 속력을 늦추나 싶더니 엔진이 꺼진다. ‘자리’를 잡았다. 저녁 8시도 채 안된 시간이건만 주위는 칠흑 같이 어둡다. 뱃머리에 서서 암흑 속 저 멀리 비치는 어선들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우주 한가운데를 떠도는 기분이다. ‘수평선 너머에선 오징어잡이 배들이 어김없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을 겝니다. 이쯤 되면 밤하늘과 밤바다의 경계는 이미 흐려졌을 테고 별들 또한 서로 어울리느라 바쁘겠지요.’ 울릉팔경 중 하나인 저동어화(漁火)가 실감나는 순간이다. 배가 멈추니 이제 선장이 바쁘게 움직인다. 얼마가 지났을까. 발전기의 굉음과 함께 뱃지붕에 빼곡히 매달려 있던 50여개의 1천500촉짜리 집어등들이 동시에 빛을 발한다. 장관이 따로 없다.

뒤이어 차례를 기다리던 조상기들이 하나둘씩 가동을 시작한다. 기계화의 바람은 이곳 오징어잡이 배에도 어김없이 불어와 8대의 조상기가 선원들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오징어를 자동으로 낚아채 올리는 조상기로 인해 일손이 많이 줄어 울릉도 어민수도 날로 감소하는 추세란다. “혼자 일하는 거 외롭지 않으세요?”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선장 곁에 다가가 슬쩍 떠본다. “단련돼서 괜찮아.” 예상보다 짤따란 대답에 “뒤바뀐 밤낮 생활이 힘들지 않느냐”, “먼 바다에서 일하는데 집안에서 걱정이 심하겠다” 연이어서 공세를 퍼붓지만 대답은 한결같다.

시끄러운 기계소리가 귀에 익어갈 즈음 오징어 한 마리가 막 배 안으로 튀어 들어온다. “와아” 탄성이 오가고 선장도 신이 난다. 오징어는 힘도 좋다. 꼬챙이로 집어 들자니 연신 물을 뿜어댄다. 이어서 심심찮게 오징어가 하나 둘씩 줄에 매달려 배 안으로 들어온다. 오늘 운이 지지리도 없는 이 녀석들은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뱃바닥 어항 안에 고이 모셔진다. “아가씨들이 타서 재수가 좋아 삐네.” 선장의 걸쭉한 사투리가 흥을 돋운다. 그리고는 얼른 오징어 두 마리를 꺼내 회를 뜨기 시작한다. 인심도 좋다. 초고추장까지 곁들여져 금세 오징어회 한상이 차려졌다. 소주도 빠질 수 없다. 오징어잡이 배에서의 기분 좋은 밤참, 그렇게 분위기는 무르익어간다.

아침 해가 밝았다. 저동항의 아침, 이른 새벽은 하루 중 가장 소란스러운 때이다. 전날 저녁에 출항했던 오징어잡이 배들이 각기 일을 마치고 항구로 돌아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선이 정박하기가 무섭게 오징어가 담긴 플라스틱 상자들이 분주하게 어판장으로 옮겨진다. 오징어의 하역작업이 끝나자 ‘딸랑딸랑’ 경매를 시작하는 종이 울린다. 어느새 모였는지 이미 중간상인들은 주위에 둥그렇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제 바다 속에서 한 형제였던 오징어들이 제 갈 길을 달리 하는 시점이다. 상인들은 큰소리로 몇 마디씩 주고받더니 자기 몫의 배차표를 받고 자리를 뜬다. 오징어 한축(20마리)에 4천원. 정말 속전속결이다. 하긴 하루 이틀 하는 장사도 아니고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났을 터이다. 이제 거래가 끝났으니 칼잡이 아낙네들이 출동할 시간이다. 이들의 임무는 오징어 배를 가르고 눈알과 내장을 분리하는 일이다. 이름하여 ‘할복’작업. 대여섯 명씩 무리를 지어 어판장 이곳저곳에서 할복을 시작한다. 오징어가 많이 잡히는 날에는 공간이 어판장으로는 모자라 길거리까지 점령한단다. 언제나 수다스런 아낙네들이지만 할복작업 때 만큼은 일에 몰두하느라 엄숙하기까지 하다. 쑥 배를 따고 내장을 긁어내는 게 눈 깜짝할 새다.

한동안 일하는 모습을 넋 놓고 지켜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말을 건넸다. “할머니 이 일하신 지 몇 년 되셨어요?” “잉, 61년도에 여기 울릉도에 왔응께” 잠시도 쉬는틈없이 손을 놀리며 답하는 김봉례씨(63). 대강 어림잡아도 경력이 40년을 넘는다. 본래 육지 태생인데 남편을 따라 울릉도로 건너와 오징어로 먹고 산단다.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보니 벌써 일이 마무리 돼간다. 어판장 바닥은 이리저리 뒹굴러 다니는 오징어 눈알로 지천이다. 내장은 오징어내장탕 같은 좋은 먹거리가 되고 가축사료로도 쓰이기 때문에 많이 수거가 되는 편이다.

할복 후 샤워까지 끝낸 오징어들은 20마리씩 사이좋게 축에 끼워져 트럭을 타고 이동을 시작한다. 기자들도 잠시 오징어가 돼 트럭 뒤에 얹혀 타고 건조장까지 따라나섰다. 건조장은 항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오징어의 건조는 햇볕에 말리는 과정과 그리고 그 뒤에 불을 피워 완전히 건조시키는 단계로 이뤄진다. 건조과정에서 마른오징어의 품질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만큼 건조작업은 대단히 중요하다. 반나절동안 햇볕에 말린 후 건조시설까지 거치고 나서 완성이 되는데는 꼬박 하루가 걸린다.

건조대가 설치돼 있는 옥상에 올라서니 저동항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미 옥상에서는 오징어를 햇볕에 내거는 작업이 한창이다. 할복작업을 거쳐 이미 넓적하게 몸을 편 오징어들이지만 햇볕에 말리는 동안 오므라들기 때문에 다리 사이에 막대기를 끼운다. 마른오징어 다리에 끼워져 있는 이 작은 막대기를 ‘팽기’라고 부르는데 이는 오징어가 울릉도 출신임을 밝혀주는 신분증 구실까지 한다. 팽기에 적혀있는 ‘울릉도산 특허 467호’ 표시는 타지역산 마른오징어와의 구별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징표다. 1층으로 내려가자 칼칼한 마른오징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완전 건조된 마른오징어더미가 산을 이룬다.

그 옆에서는 사장과 인부들이 마지막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마른오징어들을 비슷한 크기대로 취합해 묶는 과정이다. “한 마리당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지 몰라.” 한학준씨(68)는 오징어 몇 마리를 골라내더니 기자들 손에 쥐어준다. 오징어는 몸통이 깨끗하고 투명한 게 좋은 거라며 질 좋은 오징어만 선별한 것이란다. 수북이 쌓인 오징어더미 만큼이나 인심도 넉넉하다.

오징어를 뜯으며 한참을 지켜보다가 자리를 떴다. 어느덧 해가 중천이다. 저동항의 한낮은 오히려 잠잠하다. 항구에는 아지를 낚는 강태공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섰다. 이제 비릿한 바다내음도 코에 익숙해진 듯 하다. 저동항의 왼편으로는 색색의 양철집들이 능선을 따라 빽빽이 들어서 있다. 마치 서울의 달동네를 연상케 한다. 지난날 돈을 벌러 육지를 급하게 떠나온 정착민들의 주거지다.

맨 꼭대기 양철집에서 만난 신영주씨(66). 5년 전 몸을 다친 이후 지난 40년간의 선장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옛날엔 조상기고 뭐고 없었지. 그냥 손으로 잡았어도 40축은 거뜬했어.” 자랑스럽게 지난날을 회고하다가도 “이제 그만 쉬어야지”라며 말끝을 흐린다. 노쇠한 선장에게 배를 맡길 사람은 없다. 사람 대신 기계를 부리는 지금은 배를 소유한 어민들만 바다에 나가 일하는 형편이다. 배가 1톤당 9백만원, 조상기가 한대에 5백만원씩이니 웬만한 돈으로는 배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이곳에서도 빈익빈 부익부는 떨치기 힘들어 보였다. 갑작스럽게 높아진 수온 변화로 오징어가 많이 줄었다지만 그래도 울릉도는 사정이 좋은 편이다. 이제 갓 시작된 오징어잡이는 겨울을 넘어 내년 1월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 때까지 어민들의 흥락은 오징어와 함께 할 터. 오징어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울릉도. 오징어가 있기에 여기 울릉도는 외롭지 않다. 여정은 오징어를 좇았지만 언제나 함께 한 건 역시 사람들이었다. 오징어 만큼이나 맛깔나는 어민들과의 이틀밤은 그렇게 마치 꿈처럼 지나갔다.

/연세춘추 사진부 이성은, 이효규, 이용택,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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