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러브스토리’. '번지점프를 하다'는 일반 멜로에 동성애가 섞이면서 ‘퀴어러브스토리’라는 새로운 장르로 탄생했다. 이제 영화를 멜로, 호러, 액션, 코미디 등으로 나누던 전통적인 분류법은 무의미해지고 있다. 영화산업에도 이른바 ‘퓨전’바람이 불고 있다. 시나리오 창작센터 조재홍 연구실장은 “컴퓨터 그래픽의 발달이 퓨전영화의 생산을 촉진했다”고 말한다.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인해 영화는 애니메이션처럼 자유롭게 장르를 넘나들게 됐다. 이어 조실장은 “이러한 장르 혼성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갗아니면 ‘나’라는 사고방식을 넘어 ‘갗와 ‘나’를 섞는 색다른 시도가 활발해진 것이다.

이런 퓨전영화의 대표적인 예는 영화 '매트릭스'다. 공상과학이라는 장르에 긴 코트를 휘날리는 홍콩느와르식 총격신, 암울한 미래세계라는 재패니메이션적 주제, 남자 주인공이 메시아라는 성서적 내용 그리고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장자의 호접몽이 뒤섞여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990년대부터 장르 혼융이 활발하게 시도됐다. 영화 '강원도의 힘'은 특정 장르에 얽매이기를 거부한다.

남녀의 애정을 다룬 점에서는 멜로로 분류되지만 버디무비, 기행영화, 경찰 수사극 등 다양한 장르가 이 영화 속에 녹아 있다. 하나의 장르에 구속되는 대신 다수의 장르적 욕구를 수용하고 결합한 것이다. 퓨전영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미디어아트연구소 김무규 연구원은 “사람들의 취향이 변하면서 관객의 요구를 수용하고 문화적 흐름에 맞추기 위해 마련한 것이 장르의 혼용”이라고 말한다. 이제 고전적 장르만으로는 관객에게 어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분석은 감독의 의도에 따라 장르를 섞는 경우다. 이른바 ‘작갗감독이 장르에 대한 거리두기를 실천함으로써 하나의 장르에 구속되지 않고 이를 한데 뒤섞는 것이다.

 “기존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도다.” 이번 학기 영화의 이해를 강의하는 김소연 강사는 퓨전영화를 이렇게 평가한다. 하나의 장르만을 고집할 때 부딪히는 표현의 한계를 넘어 장르간 융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를테면 코미디영화의 생명은 어떻게 관객을 시종일관 웃기는가에 달렸다. 그래서 억지웃음을 강요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퓨전영화는 한 장르만의 고유성을 고집하지 않는다. 웃음이 빈 자리엔 감동을 넣으면 된다.

하지만 퓨전영화는 나름의 고민을 안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소영 교수는 “퓨전영화일수록 엄격한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대적 긴장감을 지니고 뚜렷한 역사의식과 함께 다양한 장르를 잘 버무릴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퓨전영화는 자칫 엉성한 줄거리와 정신없는 영상만이 난무한 ‘잡탕’영화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하나와 또다른 하나를 섞어 새로운 ‘하나’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왜’ 섞는지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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