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책을 한권 구입했다. ‘20대 여성들이 사회에서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다루고 있는 그 책에는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들이 많았다. 거기에는 많은 대학생들이 사회와 소외된 계층을 고민하던 시절, 토익과 자신의 학점관리에만 집중했던 한 여학생의 성공기가 담겨 있었다. 마지막 부분, 그녀의 선택이 현명했다는 평을 곁들이면서 책은 독자들에게 ‘사회 문제를 고민할 시간에 자기 것을 잘 챙기는, 사회가 원하는 여우가 돼라’고 일러주고 있었다.

사회를 바꾸는 것보다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는 것을, 그것이 이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법임을. ‘이 경쟁 사회를 사는 처세 요령’은 연세 사회에도 여실히 적용되는 듯하다.

이번 수강신청 기간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보였던 사안 중 하나는 ‘재수강’ 문제였다. 연세인들의 참여가 활발한 프리챌의 한 사이트에는 지난 1개월 동안 ‘재수강’과 관련된 글이 60여개 남짓 올라와 있다. 대부분의 글들은 D+이상의 학점으로는 재수강이 안되는 학교측의 재수강 개정안에 대한 푸념과 ‘학점을 더 잘 받기 위한 방법’에 대한 고민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 달린 답글에는 2004학년 2학기, 재수강으로 학점을 최대한 메우라는 충고가 대부분이다. ‘재수강 제도 변경’은 지난 2003년 2학기 총학생회와 학교의 첨예한 대립 끝에 한해 동안 결정을 유보한 사안으로 이번 학기 재협상이 있을 예정이다.

그러나 다수의 학생들은 실질적으로 어떤 재수강 제도가 우리의 수업권을 제대로 보장해줄 수 있는지, 진정한 교육의 길인지를 ‘고민’하고 ‘말’하기 이전에, 이미 새로운 제도에 적응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제도’를 고민하기에 앞서 제도에서 적응하는 법을 먼저 배우고 있다. 그러나 속한 사회의 틀에 따라 개인의 삶의 양태가 좌우되기에, 우리는 삶의 방향을 규정짓고 있는 ‘제도’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 나와 밀접한 연을 맺고 있는 사회의 일이라면 그 반응은 더 민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반응은 단순한 불평을 넘어 제도에 대한 고민이 담긴 제대로된 ‘말’로, 타인에게 읽힐 수 있다면 더욱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유리한 삶의 방식을 이미 체득한 우리가 말(言)을 하기엔 너무 여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말(言)로써 공론(論)화하지 않는 것들은 ‘개인의 문제’일 뿐 사회적으로 논의할 ‘꺼리’가 되지 못한다. ‘꺼리’가 아닌 것들을 알아서 바꿔 주는 사회는 드물다. 사회가 강요하는 맞지 않는 틀에 적응하기 위해 들여야 할 지나친 노력, 그것은 현명한 여우가 원하는 바는 아닐 것이다.

물론 대학 사회 안에서 이런 ‘담론’의 형성이 미흡해진 데에는 『연세춘추』의 노력 역시 부족했다.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말을 들으려는 노력 역시 부족했다. 그러나 그를 감안하더라도 다수의 우리는 현재 나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제대로’ 말하려 하지 않는 듯하다.

『연세춘추』는 이번학기, 우리들의 ‘말’을 듣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려 한다. 이것이 오랫동안 우리가 충실하게 하지 못했다고 지적받던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움직임이 더 바빠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학기 생각 있는 사람들의 현명한 ‘말’로써 연세 사회가 뜨거운 ‘논’의 장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진정 현명한 여우라면 자신의 노력 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구조에 의해서도 자신의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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