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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로 분출된 소설 속 풍경소설화전 '그림, 소설을 읽다'

'샛바람 사이를 긋던 빗방울이 멎자 금방 교교한 달빛이 계곡의 억새밭을 쏟아져 내렸다(소설 "객주" 중).' 깊은 계곡의 억새밭 위로 희고 맑은 달빛이 내리는 까만 밤. 이처럼 소설을 읽다보면 머리 속에는 어느새 책 속의 세상이 자연스레 그려지곤 한다. 때문에 작가와 화가는 신문소설의 삽화나 시화전과 같은 자리를 통해 종종 만나왔다.

지난 6월 14일 교보문고 강남점 문화이벤트홀에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5명과 화가 5명이 만난 소설화전, '그림, 소설을 읽다'가 열렸다. 이번 소설화전에서는 소설의 한 구절을 모티프로 해 재창조된 회화작품들을 선보였다. 박항률─박완서, 김점선─최인호, 민정기─황석영, 김선두─이청준으로 이어진 4주간의 전시회를 마치고 지난 12일에 소설화전의 마지막 순서인 '이두식─김주영전'이 문을 열었다. 소설가 김주영씨는 "이 전시회는 그림과 문학의 단순한 만남이 아니다"라며, "이들의 입체적인 만남을 시도했다"고 그 의의를 밝혔다. 이는 문장에 생동감을 주는 수단으로 그림을 사용하던 그간의 종적인 관계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그림을 통해 문학을 재해석하는 또 다른 길을 마련한 것이다.

김씨는 "소설화전의 시초는 옛 선비들의 족자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족자의 시와 그림이 저마다 나름의 의미를 지니면서 서로간의 조화를 통해 온전한 작품으로서 제 의미를 표현하듯, 문학과 그림의 횡적인 만남을 기획한 것이다. 문학평론가 박덕규씨는 소설화전이 "문학이 그림으로 재창조되는 시각적 혁명을 대중에게 심어주는 예술적 더듬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번 소설화전은 '그림으로 소설 읽는 법'을 제시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짝을 이루는 화가와 작가의 교감이 필수적. 때문에 개인적 친분을 뛰어넘어 평소에 주목해오던 작가와 화가가 만났다. 김씨는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와 거친 질감을 지닌 이씨의 화풍이 특히 내 작품과 잘 맞았다"고 설명한다. 이씨는 『아라리 난장』, 『객주』 등 김씨의 작품 속에 스며있는 에로티시즘을 그의 화폭 속에 고스란히 담았다. 소설 『여자를 찾습니다』에서 느껴지는 강렬함은 붉은 색채 속에 숨어있는 여체의 모습으로 재현됐다. 이씨의 원시적인 화풍은 인간의 본능에 관심을 가졌던 김씨의 작품과도 일치한다. 전시장에는 『여자를 찾습니다』,『도둑견습』, 『천둥소리』 등 김씨의 초기작과 더불어 『홍어』, 『가족의 얼굴』, 『객주』 등 장편 소설의 한 구절을 그려낸 작품이 20여점 정도 소개됐다.

독자들이 상상으로 그려 본 책 속의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듯한 소설화전, '그림, 소설을 읽다'. 그림 속에 그려진 소설의 장면마다 익숙한 듯 신비로운 정취가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본 전시회는 오는 9월 22일부터 10월 5일까지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다시 열린다.

/ 학술부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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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교감하는 소설가 김주영.
/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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