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안으로 들어온 영화음악, 이제는 인공지능까지

영화 시네마 천국,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영화음악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는 말했다. “음악은 말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소통할 수 있는 언어다.” 영화음악은 대사로 담을 수 없는 내용과 감정, 분위기를 관객에게 전한다.

 

영화의 변천 속에서도 성장한 영화음악

 

19세기 말에 처음 등장한 무성 영화에는 영상에 아무 소리도 담기지 않았다. 당시의 카메라는 촬영과 녹음을 동시에 할 수 없었고, 필름 화면에 소리를 삽입하는 기술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20세기 초에 접어들면서 미국의 영화 제작자들은 스크린 앞의 공간이나 뒤에 오케스트라를 배치해, 장면에 맞는 음악을 연주하도록 해 무성 영화에 배경음악을 입히기 시작했다.

모던 타임즈로 잘 알려진 영화배우이자 감독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은 무성 영화 시티 라이트, 황금광 시대에서 직접 영화 장면에 알맞은 배경음악을 작곡한 바 있다. 작곡가 손한묵씨는 과거 무성 영화는 현장에서 음악을 연주했기에 스크린과 대사, 음악을 완벽히 맞추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초기 영화에서 음악은 단순 배경음악일 수밖에 없었다.

1927년 최초의 유성 영화 재즈 싱어의 개봉 이후에는 유성 영화의 시대가 열렸다. 주인공이 연설하는 장면 초반 2분만 소리가 나올 뿐, 나머지 장면은 기존 무성 영화나 다름없는 영화였다. 하지만 재즈 싱어최초의 유성 영화라는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영화 제작자들이 무성 영화를 포기하고 유성 영화만 제작하면서, 무성 영화는 서서히 유성 영화로 대체됐다.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까지 자극하는 유성 영화가 등장하며 영화음악의 중요성도 함께 대두됐다. 1928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는 화면의 동작과 음악을 일치시키는 미키 마우징 기법을 이용해, 영화음악 활용 가능성의 물꼬를 텄다. 이후 1933년 개봉한 킹콩에서는 영화음악 감독 막스 슈타이너(Max Steiner)가 연속된 음으로 구성된 선율로 영화음악을 작곡했고, 이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음악의 원조로 불리운다.

 

화음과 불협화음의 조화, 영화음악

 

영화음악은 영화에서 인물의 정서를 전달하고 서사를 부연한다. 영화 겨울왕국Let it Go는 주인공 엘사의 과거 시련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면서도, 그녀의 당찬 다짐을 보여준다. 영화 컨스피러시Can’t take my eyes off you는 대사로는 드러나지 않는 주인공의 사랑을 암시한다.

일반적으로 영화음악은 관객의 귀에 편안한 화음을 사용한다. 이는 지난 1964년 영화 황야의 무법자에서 모리코네가 서정적인 선율을 영화음악으로 활용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인터스텔라, 캐리비안의 해적의 음악감독 한스 짐머(Hans Zimmer) 등 유명 영화음악 감독들도 이러한 경향을 이어받았다. 작곡가 김준성씨는 전통적으로는 오케스트라처럼 듣기 편한 화음을 주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손씨도 이를 위해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비슷한 음역대와 주파수를 내는 클라리넷과 첼로 등의 악기가 자주 쓰인다고 설명했다.

특별한 경우에는 영화음악에 불협화음을 사용하기도 한다. 일례로 영화 사이코속 살인 장면에서는 불협화음 장2도음을 사용해 상황의 긴박함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영화음악 감독 A씨는 공포 및 스릴러 영화에서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데 불협화음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영화 장면에 어울리지 않는 음악을 의도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지난 2006년 개봉한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잔혹한 총기 난사 장면에는 우아한 왈츠가 흘러나온다. 이는 영화 장면과 음악의 이질감으로 분위기를 비현실적으로 만드는 동시에 관객을 집중케 하는 것이다. 2016년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 밀정속 의열단이 고문당하는 장면에는 가수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여유로운 스윙재즈가 나온다. 스윙재즈의 전성기와 일제강점기가 1940년대라는 시대적 유사성을 활용하는 동시에 장면과 다른 분위기의 음악을 삽입해, 일제 치하에서 고초를 겪는 독립운동가들의 비극성을 더 강조한 것이다.

 

새롭게 나아가는 현대 영화음악

 

최근 영화음악은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전통적인 음악이 멀리했던 소리까지 녹여내고 있다. 2023년 개봉한 오펜하이머에서는 공상 속의 소리를 전자음으로 현실화했다. 우라늄 원자가 굴러다니는 소리나 방사선이 움직이는 소리를 영화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소리는 관객에게 상상의 현실화라는 색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외계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인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 언더 더 스킨은 마이크와 같은 녹음 기기의 잡음을 변형해,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의 불안한 감정을 전달한다. 손씨는 “21세기에 들어서는 다양한 소리가 가미되고 있다관객들이 공상 속의 소리를 마치 현실의 소리로 받아들이게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하는 사례도 있다. 지난 2021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1920년대 무성 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오후 일과 장면에 맞춰 인공지능이 작곡한 영화음악을 시연했다. 이어서 2022년 한국영상자료원은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일제강점기 무성 영화 근로의 끝에는 가난이 없다의 영화음악을 작곡해 선보이기도 했다.

손씨는 인공지능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2023년 미국 기업 스테이빌리티AI’는 음악 생성 인공지능 프로그램 스테이블 오디오(Stable Audio)를 내놨다. 이 프로그램은 원하는 음악을 프롬프트(prompt)로 제시하면 관련 노래, 배경음악 등을 생성한다. 영화에 소리를 넣으려면 오케스트라와 같이 대규모 인력이 필요했던 과거와 달리 타악기와 금관악기를 사용한 강렬한 전통음악’, ’85 BPM의 로우파이 힙합 비트 및 멜로디를 가진 음악이라는 단어만 입력해도 영화음악이 생성되는 것이다.

 

손씨는 영화음악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형의 언어라고 말했다. 영화음악계는 무형의 언어로 관객의 마음을 울리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글 정수지 기자
muna_in@yonsei.ac.kr
황선우 기자
muna_sudal@yonsei.ac.kr

 

* 장2도음: ‘도’와 ‘레’의 관계처럼, 기준 음으로부터 반음 2개 떨어진 위치에 있는 2도 음정을 말함
** 프롬프트(prompt): 생성형 AI에게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자연어로 설명해 원하는 결과물을 출력할 수 있게 하는 입력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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