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역마를 위한 복지 체계 마련 필요해

지난 2022년의 연간 경마장 입장 인원은 932만 명으로 경마는 많은 이가 즐기는 레저 스포츠다. 경주마는 수많은 관중에게 재미를 주지만, 은퇴 후에는 애물단지로 취급된다. 퇴역마가 처한 환경을 들여다보고 해결 방안을 살펴봤다.

 

▶▶늘봄이는 도축 직전 동물보호단체 ‘제주비건’에 의해 구조됐다.
▶▶늘봄이는 도축 직전 동물보호단체 ‘제주비건’에 의해 구조됐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퇴역마

 

지난 2024130, 제주도에 위치한 말 도축장 입구 100m 앞에서 퇴역마 늘봄이가 구조됐다. 늘봄이는 2007년 미국에서 태어난 서러브레드품종으로, 경주마로 활동하다 2010년에 은퇴했다. 현역 시절 10번 넘게 경주에 출전해 상금 약 3830만 원을 벌어들이기도 했다. 은퇴 후 번식마로 용도가 전환된 늘봄이는 새끼 여덟 마리를 낳은 후 도축장에 팔려 갔다. 마주가 늘봄이는 더 이상 새끼를 낳을 수 없어 이용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늘봄이는 말 도살 현황 조사를 위해 도축장에 방문했던 동물보호단체 제주비건김란영 대표에 의해 도축 직전 구조됐다. 김 대표는 도축 업자에게 돈을 주고 도축장으로 이송 중인 늘봄이를 데려왔다고 말했다. 구조 후 늘봄이의 건강 검진을 진행한 결과, 다행히 건강에는 이상이 없었다. 이어 김 대표는 늘봄이처럼 건강한데도 불구하고 쓰임을 다했다는 이유로 도축되는 말이 많다고 말했다. 현재 늘봄이는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 경주마 기업 스트로나흐 그룹의 보호를 받고 있다. 하지만 늘봄이는 편안한 여생을 보내는 몇 안 되는 퇴역마 중 하나다.

지난 20228, ‘동물자유연대는 방치된 말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방문한 충청남도 부여 폐목장에서 퇴역마 도담이별밤이를 구조했다. 동물자유연대 정진아 활동가는 두 말 모두 장기간 물과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가 심각한 상태였다특히 도담이는 오래 방치돼 엉덩이 쪽에 염증이 심했다고 말했다. 두 마리의 말은 구조된 후 제주 보호시설로 이송됐지만, 도담이는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정 활동가는 도담이는 염증이 심해 안락사를 진행했다방치되지만 않았어도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에 처한 퇴역마는 이들만이 아니다. 말 산업 관리 포탈 호스피아에 따르면 지난 2022년에 은퇴한 말은 총 1326마리다. 해마다 약 1400마리의 경주마가 은퇴하지만, 퇴역마 관리 체계가 미흡한 탓에 이들은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 구조된 직후 보호 시설로 옮겨진 별밤이와 도담이다. 장기간 방치돼 앙상히 마른 모습이다.
▶▶ 구조된 직후 보호 시설로 옮겨진 별밤이와 도담이다. 장기간 방치돼 앙상히 마른 모습이다.

 

2살에 데뷔,
4살이면 은퇴 후 나 몰라라

 

말은 평균 생후 2살부터 경주를 시작한다. 한국마사회법에 따라 마주가 소유한 말을 한국마사회에 등록하면 경주마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경주마는 평균 4살이 되면 은퇴한다. 나이가 들수록 경주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선수 수명이 짧은 것이다. ‘동물해방물결장희지 활동가는 말의 평균 수명이 30세인 것을 고려하면, 어린 나이에 경마를 시작해 청소년기에 은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마는 은퇴 후 승용마 번식마 촬영마 등으로 용도가 전환돼 여생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부상을 치료받지 못해 인간에게 쓰임이 없어지면,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거나, 도축돼 동물 사료 혹은 말고기로 이용되기도 한다.

경주마는 부상을 입는 순간부터 사용 가치가 떨어지는데, 치료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경주마의 부상이 안락사로 이어지기 쉬운 이유다. 한국마사회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동안 안락사된 말은 695마리로, 해마다 평균 약 70마리가 안락사를 당했다. 전주기전대 마사과 정태운 교수는 다친 말을 치료하고 관리하려면 한 달에만 200만 원이 넘게 든다비용이 부담돼 치료가 아닌 안락사를 선택하는 마주들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속 60km 이상의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하는 경주마는 부상이 잦을 수밖에 없을뿐더러, 태생적으로 부상과 질병에 취약하다. 경주마로 주로 쓰이는 서러브레드는 단거리 경주를 위해 다리를 얇게 개량한 품종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경주마는 그저 인간의 오락과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용된다부상당한 경주마가 치료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은퇴한 경주마는 도축돼 말고기나 사료로 이용되기도 한다. 동물자유연대의 지난 2022년 발표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전체 퇴역마의 약 50%가 도축됐다. 장 활동가는 “4살쯤 은퇴해 도축되면, 청소년기인 어린 나이에 죽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활동가 말고기 산업을 아예 금지할 수 없는 만큼 윤리적인 도축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축산물 위생관리법은 인증받은 도축 업체에 한해 위생적이고 동물 친화적인 방식으로 도축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마주가 신고하지 않고 불법으로 도축하는 사례도 있어 실제로는 더 많은 말들이 도축됐을 것이라며 불법으로 이뤄지는 도축은 기본 수칙을 지키지 않은 채 잔인하게 진행돼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퇴역마 관리
근본적인 문제는

 

경마 산업은 한국마사회법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아래 농축산부)가 한국마사회에 위탁해 주관한다. 하지만 말 등록과 말의 이력 관리를 마주 재량에 맡겨 두다 보니, 퇴역마 관리에 미흡한 점이 많다. 정 교수는 호스피아에 등록된 말만 경주마로 활동할 수 있어, 말 등록 자체는 잘 이뤄지는 편이라며 문제는 경주마가 은퇴한 후라고 말했다.

퇴역마의 소재지가 변경되면 마주가 호스피아 상 정보를 수정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의무 사항이 아니다. 정 활동가는 마주가 정보를 제때 수정하지 않아 퇴역마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소재 파악이 어려워 퇴역마를 조사하는 것도 힘들다호스피아를 보고 퇴역마를 조사하러 갔으나 엉뚱한 장소에 있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앞서 구조된 별밤이도 전남 승마장 소유로 기록돼 있었으나, 실제로는 충남 부여에 방치돼 있었다.

경주마의 용도 변경 신청 역시 마주의 몫이라 미흡한 점이 많다. 마주가 전환된 용도를 제대로 기재하지 않으면, 퇴역마는 용도 미정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지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용도 미정 상태로 분류된 말은 868마리로, 전체 퇴역마의 12.2%. 김 대표는 용도 미정으로 분류된 말은 위치 파악이 어렵고, 동물보호단체에서 관리가 잘 이뤄지는지 찾아가 확인할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용도 미정 상태의 퇴역마가 늘어나는 상황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마사회에 따르면 용도 미정인 퇴역마 비율은 20165%에서 202022.5%로 급증했다.

마주가 정보를 아예 잘못 기입해도 바로잡을 방법이 없다. 폐목장에서 구조된 도담이는 1년 전 이미 폐사한 말로 호스피아에 기재돼 있었다. 김 대표는 퇴역마를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말 등록과 이력 기재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23년 농축산부는 최초로 퇴역마 전수조사를 실시한 후, 이력의무제를 검토하겠다고 했으나 현재까지도 진전이 없다.

말은 사유재산에 속해 마주가 전적으로 관리 책임을 진다. 이에 퇴역마 복지 역시 마주에게 달려있다. 정 활동가는 마주에 의해 퇴역마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학대를 당하는 말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제주축산농협은 퇴역마를 때리고 다른 말들이 보는 앞에서 퇴역마를 도살해 동물보호법위반으로 벌금 500만 원 형을 받았다. 김 대표는 말은 마주의 소유물이라 국가 차원에서 학대 사실을 적발하기 어렵다마주의 말 관리와 학대를 감독할 기관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한국마사회에서 말과 마주를 격리하는 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말을 보호하기엔 역부족이다. 지자체 공무원의 협조가 필수인데 일부 지자체에서만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출동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지자체는 경기도, 경상북도, 전라북도 세 곳이 전부다. 한국마사회 말복지센터 김진갑 센터장은 지자체 측에서 업무 부담을 이유로 프로그램에 참여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방치가 아닌
보호를 위해서는

 

퇴역마 복지를 요구하는 여론이 계속되자 한국마사회가 지난 2022말 복지 세부 가이드라인’(아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은 마주에게 퇴역마의 건강관리 책임을 부여하고, 용도 전환 시 말의 개별 특성을 고려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퇴역마의 복지 기준을 최초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정 활동가는 가이드라인은 의무 사항이 아니기에 말 복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퇴역마를 보호하려면 관련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 지난 20235, 퇴역마의 학대와 불법 도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동물보호법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이 개정안은 퇴역마의 복지를 증진하고, 인도적인 방법으로 도축하도록 하는 등 마주의 퇴역마 사후 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이혜윤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퇴역마를 위한 별도의 복지법이나 예산이 거의 없다다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부족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홍콩은 국가 차원에서 퇴역마 관리 시설을 운영하고, 마주가 퇴역마의 복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국가가 개입해 말을 몰수한다. 이 변호사는 해외에서는 말 도축 금지법, 말 학대 금지법 등이 일반화된 만큼 우리나라도 관련 법을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퇴역마를 위한 제도가 실효성 있게 운영되려면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한다. 전주기전대 마사과 박영재 교수는 경마 산업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는 것은 정부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한국마사회는 매출의 16%를 세금으로 낸다. 지난 2022년 한국마사회의 회계 감사 결과 매출 64311억 원 중 1007억 원이 세금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2024년 기준 퇴역마 복지를 위한 정부 차원의 예산은 43천만 원에 불과하다. 정부 차원의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현재 말 복지는 더러브렛 복지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는 퇴역마 보호를 위해 한국마사회와 경마업계 종사자가 기부한 돈으로, 연간 20억 원 규모다. 김 센터장은 세금의 일부라도 말 복지를 위해 운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말 번식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 활동가는 현재 번식되는 말 자체가 많고, 은퇴도 빠르다고 말했다. 제주비건에 따르면 한 해에 약 1350마리의 말이 태어나는데, 이 중 900마리가 경주마로 활동하다 2년 뒤면 은퇴한다. 김 대표는 기존의 말을 관리하는 것부터 선행돼야 한다경주마가 오래 활동할 수 있도록, 충분한 경마 교육과 안전한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주마는 태어나서부터 은퇴 후까지 오직 사람을 위해 살아간다. 장 활동가는 말이라는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감응력이 있는 존재라며 자유와 행복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퇴역마가 열악한 환경에서 방치되지 않고 적절히 보호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글 오혜연 기자
socio_quokka@yonsei.ac.kr

<사진제공 동물자유연대, 제주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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