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위기’를 바라보는 대립된 시선

지난 26, 정부는 의과대학(아래 의대) 입학 정원 확대 방안 관련 브리핑에서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정부의 발표에 맞선 의료계 각지의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 역시 지금이 의료 개혁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절박감을 느낀다며 물러서지 않을 것을 단언했습니다. 양측 간 대치가 길어지자, 국민의 불안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 지난 2월 18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대 증원에 관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이다.
▶▶ 지난 2월 18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대 증원에 관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이다.

 

의대 증원,
왜 지금일까

 

한국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 발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207, 정부는 2022학년도 대입부터 의대 정원을 매년 400명씩 10년간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의료 시설 마비가 이뤄진 직후였습니다. 전국의 의사들은 집단 휴진과 파업에 나섰고, 증원 계획은 무산됐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무산됐던 의대 증원 정책을 다시금 꺼내왔습니다. 정부는 의사 수 부족 의사 수요 확대 비필수 분야와의 격차로 인한 필수의료* 위기를 이유로 들며, 대대적인 의료 개혁안을 발표했습니다. 정부가 내건 의료 개혁은 의대 정원 확대로 시작됩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국내 의사 수는 인구 1천 명당 2.6명으로,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적습니다. OECD 평균인 3.7명에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의대 정원을 늘려온 타 국가와 다르게 우리나라는 지난 27년간 의대 증원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다수의 전문가는 오는 2035년에 15천 명 수준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2035년에는 고령화·소득 증가로 입원 일수가 45% 증가하는 등 의료 수요가 확대될 것이라며 의대 증원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이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얻고자 발표됐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인천광역시의료원 조승연 원장은 “(정책을 시행할 생각이었다면) 작년에도 추진할 수 있었다총선용으로 오해받기 쉬운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의대 증원 계획 발표 이후,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동안 상승하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지난 1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서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전주보다 5%p 오른 39%로 나타났습니다. 긍정 평가 이유로 응답자의 21%의대 정원 확대를 꼽았으며, 가장 높은 비율이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국민의힘지지율은 40%로 전주보다 3%p 상승했습니다. 국민 여론 역시 의사 인력 확충을 지지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202312,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89.3%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의료계는 정부가 부족하다고 밝힌 의사 규모 15천 명의 추산 근거가 불명확하고, 의대 정원 확대만으로 필수의료 위기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의료계는 의대 증원 계획에 강하게 반발하며 대규모 집단행동에 돌입했습니다. 지난 220일 이뤄진 전공의 집단 사직이 그 시작입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8일 기준, 100개 수련 병원 전공의 12912명 중 약 93%가 계약 포기 또는 사직서 제출 후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전국 의대생도 집단행동을 시작해 15일 기준, 36.3%에 달하는 6822명이 휴학했습니다. 의대 교수들도 집단행동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습니다. 16일에는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오는 25일부터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의대 증원 대립의 핵심,
필수의료 위기

 

우리나라가 필수의료 위기인 이유는 의사 수 부족 말고도 행위별 수가제 실손보험** 체계 의료전달체계*** 등 의료체계 왜곡 문제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이 행위별 수가제로 설계돼 있습니다. 행위별 수가제는 의료인이 제공한 진료행위 수마다 가격을 책정해 진료비를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행위별 수가제가 의료진이 진료량을 고의로 늘려 더 많은 수가를 받도록 유도한다고 주장합니다. 서울대 의과대학 오주환 교수는 의료의 질보다 양이 중시되는 지불제도로 인해 불필요한 의료서비스 양이 늘었다고 했습니다.

비급여 진료 남발로 의사들이 비필수의료에 몰리면서 의료 위기가 가중됐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는 실손보험 보상 범위에 해당합니다.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권용진 교수는 실손보험이 확대됨에 따라 이를 악용한 비급여 진료량이 급증했다고 말했습니다. 잘못된 체계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관행이 굳어졌고, 의사들은 이에 따라 비필수의료 분야로 몰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5’ 병원을 포함한 상급종합병원 중심이라는 점도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의료전달체계가 유명무실해 환자들이 경·중증에 상관없이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의대 정원 증원으로 필수의료 위기 극복이 가능한지를 두고 정부와 의료계가 극명한 입장 차를 보입니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만 늘리면 오히려 필수의료 위기가 가중될 것이라 주장합니다. 의료계는 의료체계 왜곡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 의대 정원만 늘린다면 건강보험료 추가 지출로 인한 의료재정 붕괴 의료의 질 저하 의료 교육 부실화 등의 문제가 파생될 것이라 지적합니다.

반면 정부는 필수의료 위기를 해결하려면 의대 증원을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228, 윤 대통령은 의사 수만 늘리면 위기가 해결된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라며 의대 증원마저 하지 않으면 어떤 의료 개혁도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의대 증원이 필수의료 위기 타개를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조 원장은 미래의 의사 수요를 채우려면 정부가 제시한 15천 명도 적다고 본다의사 훈련에 최소 10년 정도가 걸리는 만큼 의대 증원 정책은 하루빨리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지난 21일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서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공정 보상이라는 4대 개혁 과제를 발표해 필수의료 위기 문제에 대한 추가 보완책을 제시했습니다. 의대 증원 역시 입학 정원을 비수도권 의과대학을 중심으로 배정해 지역인재전형으로 60% 이상이 충원되도록 추진할 계획입니다.

 

강대강대치에
시민들만 볼모로

 

정부와 의료계 모두 입장을 강경하게 고수하고 있어, 합의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서로 강대강으로 몰아붙이자, 의료 공백 장기화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와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습니다.

현재 의료 개혁에 대한 논의는 의대 증원 여부에만 집중돼 다른 정책은 토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의대 증원 계획의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조 원장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미흡한 부분도 있지만, 의료계가 지적한 문제의 해결 방안이 어느 정도 포함돼 있다의사들은 이를 보완하는 식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부의 확고한 태도와 권위적인 대화 방식이 정부와 의료계 협의의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정부가 대화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것처럼 보여 의료계의 반감을 더욱 샀다는 것입니다. 권 교수는 정부가 의료계에서 우려하는 점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의료계에서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오 교수는 정부가 의대 증원 발표와 동시에 단체 행동에 대한 엄정 대응을 발표했다는 점은 정책 발표 전부터 파업을 예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정부가 의료계와 대화할 의지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처사라고 분석했습니다.

한편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로 의사의 책무를 다하지 않는 집단행동은 옳지 않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권 교수는 “2천 명 증원은 정부의 결정일 뿐이라며 국민의 위험부담을 높여가면서까지 정부 정책을 거부할 일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조 원장 역시 정부 정책 결정에 이렇게까지 개입하는 집단은 의사밖에 없다국민의 약 90%가 찬성하는 상황에서 의사 집단만 옳다고 고집하는 행태라고 주장했습니다.

 

정부와 의료계가 입장 차를 전혀 좁히지 못한 채 한 달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의료 행위가 필요한 시민들의 피해가 쌓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시민을 위한 진정한 의료 개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대치를 그치고 성숙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글 이다겸 기자
socio_isgyeom@yonsei.ac.kr
<사진제공 국무조정실>

 

* 필수의료: 통상적으로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적인 의료 행위를 의미한다. 정부는 고위험·고난도 업무에 당직이 많고 건강보험에 해당하는 분야를 ‘필수의료’로, 미용·의료 등 비급여 진료를 하는 분야를 ‘비필수의료’로 구분한다.
** 실손보험: 환자가 상해로 입원했을 때 발생하게 된 본인 부담 금액을 보장해 주는 보험을 의미한다.
*** 의료전달체계: 우리나라의 의료전달체계는 1차 의료기관(의원), 여러 진료과가 개설된 2차 의료기관(병원 혹은 종합병원) 그리고 3차 의료기관(대학병원 등 대형종합병원)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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