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 대리기사를 따라가 보다

대리기사는 술에 취한 사람들, 피로로 운전하기 힘든 사람들을 태우고 늦은 시간 도로 위를 달린다. 승객의 안전한 귀가를 도와주지만, 어려움도 많다. 1년 차 대리기사 김민수(30·가명)씨의 밤을 따라가 봤다.

 

▶▶ 김씨가 이용하는 대리운전 앱 화면. 목적지와 거리, 승객이 설정한 요금이 나온다.
▶▶ 김씨가 이용하는 대리운전 앱 화면. 목적지와 거리, 승객이 설정한 요금이 나온다.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지는 좋은 콜

 

지난 12일 오후 8, 마포역 1번 출구 근처 카페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음료를 주문하는 동안에도 콜 알림을 확인하느라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좋은 콜은 1초 만에 사라져요. 얼른 잡아야 해요.”

대리운전은 승객이 목적지와 금액을 정해 콜을 부르면, 기사가 조건을 확인하고 수락하는 방식으로 대리기사 간 좋은 콜을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기자가 주문한 음료가 나오는 중에 첫 콜이 잡혔다. 한 시간 거리의 수원시 장안구 A 아파트로 가는 콜이었다. 매장용 컵에 나오던 커피를 테이크아웃 잔에 옮겨 담은 후, 기자와 김씨는 마포구 공영주차장으로 이동했다.

평소 김씨는 승객의 차까지 개인형 이동장치인 전동휠을 타고 이동한다. 그는 반경 2~3km 내의 콜을 잡고, 차까지 10분 안에 도착하려면 전동휠 사용은 필수라고 말했다. 이어 기사들이 이동할 때 전동휠이나 전동 킥보드를 많이 타는데, 승객이 트렁크에 싣지 못하게 해 곤란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이번 손님은 다행히 괜찮다고 하시네요.” 전동휠을 승객의 트렁크에 실으며 김씨가 말했다.

 

▶▶ 김씨는 콜 장소까지 개인형 이동장치인 전동휠을 이용한다.
▶▶ 김씨는 콜 장소까지 개인형 이동장치인 전동휠을 이용한다.

 

손님 출발하겠습니다.” 김씨는 차 키를 받아 든 뒤 운전을 시작했다. 늦은 시간에 운전하는 게 어렵지 않냐고 묻자, “가로등이 없는 경우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승객에게 돈을 받아내는 것도 기사의 몫이다. 선결제 방식의 애플리케이션(아래 앱)을 이용한 대리운전 호출이 늘어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후불제 승객이 많다. 취한 경우 앱 조작이 쉽지 않고, 기존에 이용하던 대리운전 업체에 전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씨는 만취한 승객이 목적지에 도착해도 일어나지 않거나, 다음날 주겠다며 기사를 보낸 뒤 잠적하기도 한다신고해도 받아내는 과정이 복잡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오후 915, 김씨는 아파트 단지 내에는 콜이 많지 않다콜밭*을 찾아 걸어가 보자고 말했다. 이동하는 내내 휴대전화로 콜을 조회했지만 잡히지 않았다. 콜이 뜨더라도 2~3초 만에 사라지기 일쑤였다. 김씨는 앱을 보니 근처에 대리기사가 족히 50명은 된다손님에 비해 기사가 많아 콜 잡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카페도 하나둘 문을 닫는 시간, 머무를 곳이 마땅치 않아 다음 콜이 잡힐 때까지 김씨와 기자는 길거리를 배회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평소에는 술집 앞에 앉아 콜을 기다리거나, 편의점에 들어가 간단히 끼니를 해결한다고 말했다. 지자체나 노동권익센터에서 김씨와 같은 이동노동자를 위한 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 지난 20239월 기준,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집계한 전국 이동노동자 쉼터는 총 57곳이었다. 그러나 절반에 달하는 29개 쉼터가 수도권에 몰려있고, 오후 6시에 문을 닫는 쉼터도 있다 보니 대리기사들이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다음 콜까지
하염없이 걸어야

 

거리를 걸은 지 1시간 15분이 지나자 근처 호프집에서 두 번째 콜이 들어왔다. 30분 거리의 봉담읍으로 향하는 2만 원짜리 콜이었다. 서둘러 호프집 앞으로 이동했지만, 가게 앞에서 20분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손님이 포장 주문한 통닭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콜을 부르고 술집 앞에서 나오지 않는 손님들이 많다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취한 손님이 대부분이다 보니, 운전 중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김씨는 본인이 아는 길로 가지 않는다며 화를 내거나, 뒤에서 툭툭 치는 경우가 있다최대한 부딪히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국토교통부가 실시한 실태조사(아래 실태조사)에서 대리운전 중 욕설이나 위협, 폭행 등의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대리기사는 전체 68.5%에 달했다. ‘한국대리운전기사연합회양태건 대표는 고객 대부분이 술에 취한 상태라며 대리기사는 차 안에서 늘 감정 노동을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목적지에 도착한 뒤 1시간 가까이 걸으며 다음 콜을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김씨는 거리의 가게들도 다 닫은 것을 보니 콜이 오지 않을 것 같다근처에 있는 콜밭 판교역으로 가자고 말했다. 김씨와 기자는 판교역까지 공유 자동차를 타고 이동했다.

막차가 끊긴 시간 대리기사들은 공유 자동차를 이용하거나, ‘대리기사 전용 셔틀버스’(아래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셔틀버스는 대리기사들이 자체적으로 운행하는 것으로, 시중 택시 요금보다 저렴한 금액으로 대리기사들을 태운다.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영업이라 불법이지만, 이용자가 많다. 양 대표는 셔틀버스는 불법이라 사고가 나도 보험으로 처리할 수 없지만,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다 보니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음날 오전 1230, 판교역 편의점에 들어가 콜을 기다렸다. 김씨는 밥 먹고 운전하면 졸리다는 이유로 도시락 대신 핫식스를 집어 들었다. 그는 편의점 의자에 앉아 세 개의 대리운전 앱을 번갈아 가며 콜을 확인했다. 실태조사 결과 김씨처럼 2개 이상의 앱을 이용하는 대리기사는 전체의 85%였다. 대리기사들은 더 많은 콜을 받고자 여러 업체에 등록하는데, 업체마다 각기 다른 앱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대리기사들은 이용하는 업체마다 기사 등록비와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지만, 더 많은 콜을 받기 위해 이를 감수한다.

한 시간이 지나도 콜이 잡히지 않았다. 오전 130, 시간이 늦어 기자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김씨는 좀 더 기다려보겠다며 걸음을 옮겼다. 몇 시에 들어갈지는 모르겠고, 목표한 금액 다 채우고 들어가려고요.” 김씨가 다른 콜밭으로 향하며 말했다.

 

▶▶ 오전 1시, 김씨가 편의점에서 고카페인 음료를 마시며 콜을 기다리고 있다. 
▶▶ 오전 1시, 김씨가 편의점에서 고카페인 음료를 마시며 콜을 기다리고 있다. 

 

대리기사도
근로자라면서요

 

이날 5시간 30분 동안 김씨가 번 돈은 6만 원이다. 요금의 20%를 업체에 수수료로 내고, 보험비와 업체 등록비를 제하고 나면 김씨의 일당은 45천 원이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약 8천 원으로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한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근무했던 박정우 연구원은 이동 비용이나 대기 중에 발생하는 비용까지 모두 포함하면 임금 수준이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1년 서울노동권익센터 발표에 따르면, 대리기사 평균 시급은 9500원이었다. 이들은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프리랜서로 구분돼 근로기준법(아래 근로법)상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한다. 2019년 부산고등법원이 대리기사가 업체에 종속돼 지휘를 받는 만큼 근로자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이들은 여전히 법 밖에 있다. 전국 대리기사 약 287천 명이 과중한 업무 대리운전 업체의 불공정 관행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대리기사는 근로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주 52시간 초과 근무가 가능하다. 권오성 교수(법학전문대학원·노동법)일한 만큼 벌어가는 구조인데, 보수 자체가 낮아 대리기사들은 계속해서 더 많은 일을 하도록 자신을 내몰 수밖에 없다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고자 법으로 근로시간을 정해둔 만큼, 대리기사 역시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리운전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야간 운전 역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김씨는 카페인 음료를 많이 마시고, 밤낮이 일정하지 않다 보니 숙면을 취하기 어렵다수면제를 먹어야 잠에 들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일반 근로자는 1.5배의 야간 수당이라도 받지만, 대리기사는 그렇지 않다휴식을 취해야 하는 시간대에 일하는 만큼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리운전 업체의 불공정 관행도 문제다. 업체가 대리기사에게 출근비나 기사관리비라는 이름으로 징수하는 비용이나, 일정 수 이상의 콜을 강제로 소화하게 하는 숙제가 대표적이다. 박 연구원은 비용을 납부하지 않으면 대리기사의 앱 이용을 제한하는 등 불공정 관행이 만연하다고 말했다.

 

대리기사의
노동권을 보장하려면

 

대리기사가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기 위해선 표준계약서 작성 확대 적정 수준의 임금 보장 플랫폼 규제가 필요하다.

표준계약서는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하지만, 근로법상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계약서다. 지난 2020년 처음으로 마련된 대리운전 표준계약서에는 부당한 비용 징수, 일정 수 이상의 콜 강제와 같은 대리운전 업체의 불공정 관행을 금지하고, 대리기사에게 산업재해 보험을 보장해주는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표준계약서 작성이 의무가 아니다 보니 현장에선 작성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표준계약서 작성이 보다 활발히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적정 수준의 임금을 보장해주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실태조사 결과 전업 대리기사의 비율은 52.4%. 대리운전을 부업으로 여기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절반에 달하는 대리기사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리운전업에 종사하고 있다. 권 교수는 현재 건수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이 보장되지 않아 생계를 위해 더 오래 일할 수밖에 없다건수 노동자의 최저임금도 법으로 보장하는 영국처럼, 우리나라에도 관련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대리운전 업체로부터 대리기사를 보호할 수단이 필요하다. 업체가 책정한 수수료에 따라 대리기사의 임금 수준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양 대표는 업체가 수수료를 자의적으로 책정하다 보니 30%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 모빌리티나 티맵 같은 플랫폼 기업이 대리운전 업체를 인수하며 시장 지배력을 키워가고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개입도 필요하다. 실제로 지난 2023년 티맵은 대리기사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업체를 인수한 후, 수수료를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반발을 사기도 했다. 권 교수는 독점을 달성하는 순간 플랫폼 기업이 수수료를 올리더라도 대리기사가 대항할 수 없다대리운전 산업을 규율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리운전은 음주 운전을 방지하고, 고객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일로 사회 안전에 필수적인 직업이다. 대리기사가 불공정한 관행에서 벗어나고 자기 착취에 가까운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글·사진 최은지 기자
socio_king@yonsei.ac.kr
글 이지웅 기자
socio_oong@yonsei.ac.kr

 

 

* 콜밭: 대리기사 용어 중 하나로, 대리운전 콜이 많은 지역
** 건수 노동자: 대리기사, 배달기사처럼 수행한 업무 수에 따라 임금이 정해지는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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