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들의 권리를 고려한 재개발 정책 필요해

지난 1983, 서울시는 명동 일대를 총 5개의 구역으로 나눠 명동 도시 정비형 재개발구역으로 지정했다. 그중 서울 중구 명동길 83에 위치한 명동 2지구는 현재까지 재개발되지 않고 남아있는 유일한 구역이다. 2021년 서울시는 명동 내 도로 및 공원 기반 시설정비를 목적으로 명동 2지구 도시 정비형 재개발구역 정비 계획안을 발표했다. 해당 안이 가결된 직후 민간 재개발 시행자가 선정됐다.

명동 성당 맞은편에는 파란 천막이 즐비해 있다. 명동 2지구 재개발에 반대하는 상인들이 세운 농성장이다. 천막이 세워진 지는 약 300일째로, 명동 2지구에 남은 9개 가게 상인들이 농성장을 24시간 교대하며 지키고 있다.

 

▶▶ 명동 2지구 농성장의 모습. 강제 집행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 명동 2지구 농성장의 모습. 강제 집행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파란 천막 속 이야기

 

농성장 옆,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베로니카 화원이 나온다. 꽃들과 분재로 가득한 작은 가게로, 사람 한 명이 지나다닐 정도의 작은 통로를 제외하곤 꽃으로 가득 차 있다. 홍정희씨가 명동 2지구에서 베로니카 화원을 연 지도 벌써 30년이 지났다. 홍씨는 꽃을 좋아해 자연스레 화원을 열게 됐고, 딸의 세례명을 따서 베로니카로 이름을 짓게 됐다그만큼 제겐 소중한 가게다고 말했다. 최근 홍씨는 재개발로 인해 가게와 파란 천막의 농성장을 오고 가며 생활하고 있다.

홍씨가 재개발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된 건 6년 전 즈음이었다. 상가 세입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홍씨는 재개발 시행자가 명동 2지구 일대를 재개발 하기 위해 건물을 사들인다는 소문을 듣게 됐다며 "이는 곧 사실이 돼 상가 세입자들에게 건물을 비우라고 통보하는 명도 소장*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화원에 대해 이야기하자 홍씨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딸에게도 물려주려 한 가게였는데 재개발로 한순간에 나가야 될 처지라고 말했다. 홍씨는 현재 대법원에서 명도 소송** 3심을 진행 중이다. 명도 소송에서 패소하게 되면 가게에서 나가야 한다. 강제 철거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난 20235, 옆 가게 주방 만게츠는 강제 집행 계고장을 받아 언제 가게가 없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 주방 만게츠 사업주는 강제 철거를 막고자 장사를 접고 가게 앞에 철문을 세웠다.

명도 소송을 포기하거나 소송에서 패소해 명동을 떠난 가게도 있다. 지난 2021108, 베로니카 화원 옆에 있던 A 사진관은 명도 소송에서 패소해 강제 철거가 집행됐다. ‘명동 공동대책위원회김중현 활동가는 합의 없이 강제 철거가 이뤄졌다하루아침에 사장님이 가게에 출근하니 이미 모든 게 사라진 후였다고 말했다.

지난 202310, 재개발을 둘러싼 분쟁이 계속되자 서울시 중구청에서는 명동 2지구 재개발 사전협의체를 구성해 재개발 시행자와 세입자 간 면담을 주관했지만,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사전협의체를 진행하고 있지만 세입자와 시행자 사이의 의견 차이가 크다언제 협상이 완료될지는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은 가운데 영업 중인 베로니카 화원의 모습.
▶▶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은 가운데 영업 중인 베로니카 화원의 모습.

 

재개발 사업에서
배제된 세입자들

 

전문가들은 재개발 논의에서 상가 세입자를 배제하는 것이 분쟁이 계속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도시연구소 이원호 책임연구원은 재개발 여부를 결정하는 첫 과정에서부터 세입자는 참여할 수 없다재개발 결정은 토지 소유주와 건물주 위주로만 진행된다고 말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토지 소유자는 지정개발자로서 재개발 사업을 시행할 수 있고, 지정개발자가 아닌 경우 조합을 설립해야만 재개발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세입자는 조합원 자격을 갖추지 못해 재개발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없다. 이 연구원은 조합원이 되기 위해선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를 보유해야 한다재개발 사업의 주체가 될 자격을 가진 사람은 토지 소유자나 건물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생활경제연구소 구본기 소장은 재개발 사업에서 세입자 동의 여부를 묻는 절차도 전혀 없다이에 세입자들은 재개발 소식을 갑작스레 통보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개발 과정에서 세입자를 위한 보상 대책이 충분치 않은 것도 문제다. 현행법상 세입자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라 재개발로 인한 영업 손실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영업 손실 보상은 폐업 보상과 휴업 보상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이 연구원은 폐업 보상은 인정 절차가 워낙 까다로워, 재개발 보상 과정에서 세입자는 폐업 보상을 거의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10~2015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진행한 재개발 사업에서 세입자가 폐업 보상을 받은 경우는 전체 3408건 중 4건으로 전체 영업 손실 보상 중 0.1%에 불과했다. 휴업 보상은 재개발 사업 인가 후 4개월 이내의 영업 손실금을 추산해 시행자가 지급하는데, 이 보상만으로는 세입자가 새로운 터전으로 이주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 연구원은 세입자는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개발 시행자가 재개발 휴업 보상금으로 홍씨에게 제시한 금액은 5천만 원이다. 홍씨는 “30년 전 처음 꽃집을 열 때 든 비용이 15천만 원이었다재개발 보상금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재개발로 인해 세입자가 사업장에서 퇴거하게 될 때, 권리금을 받을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권리금은 매장을 양도할 때 다음 세입자로부터 기존 세입자가 받을 수 있는 금액으로, 지난 2020년 상가정보연구소에서 발표한 권리금을 받는 상권 비율은 62.7%였다. 2015년 상가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상가 권리금 일부를 보호받을 수 있게 됐지만, 재개발로 인한 퇴거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 연구원은 권리금을 줄 수 있는 세입자가 없어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씨는 이곳에 권리금 3500만 원을 내고 들어왔는데 권리금을 아예 받을 수 없다고 하니 막막하다고 했다.

명도 소송을 위해 재판마다 내야 하는 공탁금도 부담이다. 세입자는 명도 소송을 진행할 때 강제 퇴거 불이행에 대한 담보로 법원에 공탁금을 예치해야 한다. 홍씨는 재판을 위해선 2천만 원 정도의 공탁금을 내야 한다공탁금과 변호사 수임료의 압박으로 소송을 포기하는 세입자도 있다고 말했다.

 

임박한 강제 철거,
부딪힐 수밖에 없는 구조

 

명동 2지구 세입자들은 재개발에 대한 적절한 보상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버틸 것이라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러나 세입자들의 요구에 재개발 시행자 측은 묵묵부답인 상황이다. 세입자들이 계속 버틴다면 결국 강제 철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재개발 시행자가 세입자를 끌어내기 위해 용역과 같은 외부 인력을 동원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인 충돌을 피하기는 어렵다. 민사집행법에 따라 법원의 허가를 받은 재개발 시행자는 법원 집행관을 동행해 외부 용역을 고용할 수 있다. 이 연구원은 세입자가 모두 퇴거해야 재개발이 진행될 수 있기에, 세입자를 빨리 이주시키고자 위협적인 방식이 많이 동원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09년 용산 4구역에서는 강제 철거에 반발한 세입자와 용역 업체 사이에서의 물리적 충돌로 6명이 죽고, 24명이 다쳤다. 2011년에는 명동 2지구와 인접한 3지구에서 3명의 세입자가 강제 철거에 반대하다 다치기도 했다.

강제 철거 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강제 퇴거 현장에서 폭행 등의 사례가 발생한다재개발 강제 퇴거 시 인권을 고려해야 한다고 법무부에 권고했다. 그럼에도 18대부터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강제 퇴거 금지 내용을 담은 행정대집행법개정안은 모두 폐기됐다. 이 연구원은 강제 철거는 세입자와 철거 인력 모두를 위협한다모두를 위해서라도 철거 현장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강제 철거를 금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재개발에 참여한 민간 기업은 지정된 법적 절차에 따라 재개발을 진행하고 있어, 그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민 교수(공과대·도시공학)재개발 시행자 입장에서는 사업 시행부터 명도 소송까지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것이라며 이를 규제하는 것이 오히려 사업자의 권리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애초에 재개발 시행자가 강제 철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재개발 사업은 대규모로 이뤄지고 위험 부담이 높아, 시행자의 초기 투자 비용이 크다는 특징이 있다. 이에 대부분의 재개발 시행자는 투자 비용이 큰 만큼 높은 액수의 대출을 받고,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강제 철거를 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이 교수는 세입자들의 반대로 인해 공사 시작이 늦어질수록, 시행자가 내야 하는 대출 이자 및 금융비용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재개발 시행자는 빠른 공사를 위해 강제 철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재개발 시행자와 세입자,
모두를 위해서는

 

전문가들은 구체적인 세입자이주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주거 재개발은 상가 재개발과 달리 손실 보상 및 임대 주택 제공 등의 이주 대책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상가 재개발과 관련해서는 세입자의 이주 대책이 부족하다. 일례로 공공 기관 주도 재개발이 진행되는 경우, 상생협력상가 등 시청·구청이 관리하는 저렴한 임대 상가를 활용해 기존 상인들이 영업할 수 있게 하는 이주 정책이 마련돼 있다. 이 연구원은 공공에서 진행하는 임대 상가 제도를 민간 시행자 주도의 재개발에서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재개발을 단기간에 하는 것이 아닌, 점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현재 국가에서 계획한 재개발 사업의 진행 속도가 너무 빠르다민간 기업은 속도를 맞추기 위해 재개발 사업을 빨리 진행하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도시정비사업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4년도에 시행된 재개발 구역은 804528이지만 2022년도는 105955525이상 차이가 난다. 구 소장은 성급한 재개발보다 세입자들을 충분히 고려하고 보상할 수 있는 중장기적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30명의 사상자가 나온 용산 참사가 발생한 지 15년이 지났다. 용산 참사를 거울삼아, 세입자와 재개발 시행자 모두 상생할 수 있는 재개발 논의가 필요하다.

 

 

글·사진 오혜연 기자
socio_quokka@yonsei.ac.kr

 

* 명도 소장: 임차인이 부동산을 부당하게 점유하고 있을 경우 이를 인도하라고 요구하는 소장
** 명도 소송: 임차인이 자진해서 건물을 비워주지 않았을 경우 관할 법원에 소유주가 제기하는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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