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경계선 지능인은 지적 장애 수준은 아니지만 평균보다 낮은 지능을 가진 이들을 말한다. 웩슬러 지능 검사* 결과 지능 지수(아래 IQ)85 이상 115 이하면 평균, 71 이상 84 이하면 경계선 지능인에 해당한다. 이들은 일상생활에 고충을 겪고 있음에도 지적 장애의 법적 기준에 해당하지 않아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없다. 장애인복지법상 지적 장애 기준이 ‘IQ 70 이하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아래 밈센터) 이교봉 센터장은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 짓는 모호한 기준 탓에 경계선 지능인이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했다.

A씨는 IQ 72의 경계선 지능인이다. A씨는 평소 가위질 같은 일상적인 활동을 어려워했고, 겨우 구한 일자리에서 번번이 해고됐다. 그는 군 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해, 결국 관심 병사로 군 시절을 보냈다. 20대 내내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자, 도움을 받기 위해 사회복지관에 찾아갔다. 이날 A씨는 사회복지사의 권유로 실시한 지능 검사에서,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지난 2023년 국회입법조사처는 A씨 같은 경계선 지능인이 약 7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 지난 2022년, 경계선 지능인의 자립을 돕기 위해 밈센터가 출범했다.
▶▶ 지난 2022년, 경계선 지능인의 자립을 돕기 위해 밈센터가 출범했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거조차 어려웠습니다."

 

경계선 지능인 B씨의 어려움은 학창 시절부터 시작됐다. 평균 지능의 학생을 대상으로 설계된 정규 교육 과정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B씨는 하루 종일 배운 내용을 복습했지만 진도를 따라가기 어려웠다일반 학급 수업이 너무 벅찼다고 말했다.

경계선 지능인은 일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도 그냥 다닐 수밖에 없다, 특수학교나 특수 학급에 가려면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아래 특수교육법)에 따라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돼야 하지만, 탈락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특수교육지원센터는 특수교육대상자 선정을 위해 진단 평가와 위원회 심사를 진행한다. 진단 평가는 5개 영역 검사를 종합해 결과를 내는 방식인데, 한 영역에서라도 정상 범위에 들면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기 어렵다. ‘느린학습자시민회홍세영 이사는 “4개 영역에서의 평가 점수가 평균 미만 수준이더라도, 1개 영역 점수가 정상 범주에 들면 심사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경계선 지능인들의 IQ가 지적 장애 기준보다 조금 높다는 이유로 탈락하는 경우도 많다. 강남대 산학협력단 설문조사(아래 강남대 설문조사)에 따르면,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한 경계선 지능인은 54.7%에 달했다.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다. 어렵게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더라도 거주 지역에 장애 학생이 많으면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지적 수준이 비슷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역 상황에 따라 정부의 지원 여부가 달라지는 것이다. 특수 교육 과정이 경계선 지능인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최진오 교수는 지금 특수교육은 중증장애인 위주로 구성돼 있다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개별 교육이 필요하지만 전문 교육 과정 부재해 현실적으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맞춤형 교육의 부재는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으로 이어진다. 학부모들은 공교육이 채우지 못한 학습 공백을 메우기 위해 사교육 시장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송 이사장은 공교육이 제 역할을 못 하니 사교육에 기댈 수밖에 없다한 달에 백만 원이 넘는 돈을 사교육에 할애한다고 말했다. 이어 발달 센터나 교육 기관들이 수도권에 몰려 있어 비행기를 타고 오는 부모도 있다고 덧붙였다.

 

"일을 느리게 한다는 이유로 해고된 적도 많습니다.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습니다"

 

경계선 지능인의 어려움은 학령기 이후에도 이어진다. ‘경기도 경계선 지능인 생애주기별 평생교육 지원 방안 연구에 따르면 고등학교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응답한 경계선 지능인은 전체 응답자의 45.2%에 달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경계선 지능인들은 단기 아르바이트 등 단순노동 업무에 눈을 돌리지만 상황은 마찬가지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아래 장애인고용법)에 따라 50명 이상 규모의 사업장은 전체의 5%를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경계선 지능인은 장애 등록이 되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다 보니 장애인고용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이들은 일자리를 얻거나 유지하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에 놓이기까지 한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조인영 변호사는 안정적인 직장을 갖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는 경계선 지능인이 많다고 말했다.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임한결 변호사는 경계선 지능인 중에는 신체 능력이 떨어져 단순 반복 노동조차 힘겨워하는 경우가 많다겨우 일자리를 구해도 느리고 서툴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기 일쑤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취업 실패는 경계선 지능인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기도 한다. 강남대 초등특수교육과 최승숙 교수는 무직 상태가 계속되면 우울감 등 부정적인 정서가 축적될 수 있다이로 인해 경계선 지능인이 집 안에 은둔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1년 내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경계선 지능인이 26.7%에 달한 강남대 설문조사 결과는 이들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 밈센터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에서 경계선 지능인 학생들이 그린 그림이다.
▶▶ 밈센터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에서 경계선 지능인 학생들이 그린 그림이다.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성폭력이 일어난 뒤였어요"

 

20대 경계선 지능인 C씨는 성폭력 피해자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당시 알고 지내던 성인 남성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가해자는 C씨에게 성관계를 거듭 요구했다. 상황 판단 능력이 부족한 C씨는 가해자의 요구가 어떤 의미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성관계를 맺었다. C씨는 성폭력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이상하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성폭력이 일어난 후였다라고 말했다.

가해자는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C씨가 거부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C씨는 지적 능력과 상황 판단 능력이 부족한 경계선 지능인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었다성범죄로 인한 피해를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다고 말했다.

경계선 지능인은 범죄에 노출되거나 이용당하기 일쑤다. 강남대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계선 지능인 100명 중 7명꼴로 사기나 성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홍 이사는 경계선 지능인은 변별력이 부족하다 보니 이들을 범죄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승숙 교수는 이들은 타인의 제안이 위법인지 판단하지 못하고 의심 없이 받아들이다 보니 보이스피싱 같은 각종 사기의 돈 전달책으로 악용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계선 지능인은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크지만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렵다. 임 변호사는 경계선 지능인들은 본인이 범죄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범죄 피해 신고를 하지 않아 구제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법률 구제 방안도 전무하다. 발달장애인은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장애 전담 검사가 신문을 맡고, 발달 장애인과 신뢰 관계에 있는 사람이 재판에 동석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호 장치를 마련한 것과 대비된다.

 

경계선 지능인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A씨는 삶의 전반에서 장애인과 비슷한 수준의 어려움을 겪지만, 장애인을 위한 복지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A씨는 생활 전반에 걸친 어려움을 호소하며 차라리 장애인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어 장애인 등록 신청을 수차례 했지만, 장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반려됐다고 말했다.

UN은 지난 2022년 지능 검사 점수만으로 장애 여부를 판단하는 한국의 현행 법령을 지적하며 모든 장애를 아우르는 장애 개념을 채택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A씨도 반려처분이 부당하다며 국가를 상대로 장애등록신청 반려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조 변호사는 “IQ는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다르게 나올 수 있어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장애 여부를 판단할 때, 당사자의 어려움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계선 지능인을 보호하려면 이들의 정확한 수를 파악하는 일이 우선이다. 하지만 현재는 경계선 지능인의 정확한 수조차 집계되지 않고 있다. 조 변호사는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국가 차원의 통계는 부족하다통계의 부재는 관련 지원의 부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생애주기별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최진오 교수는 학령기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별도의 교육 과정을 마련하고, 전문 교사를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령기 이후 사회적 자립을 위해 일자리 정책도 마련돼야 한다. ‘이음발달센터김혜진 대표는 경계선 지능인을 대상으로 한 직업 선택 교육을 확대하고, 이들의 특성을 고려한 직무를 개발하는 일이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이들을 보호하려면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 현재는 경계선 지능인을 규정하는 법이 없고, 지자체가 조례를 제정해 자체적으로 관리하다 보니 미흡한 점이 많다. 현재 지자체 243개 중 경계선 지능인 관련 조례가 있는 지자체는 67개에 불과하다. 지난 2023경계선지능인 지원에 관한 법률이 발의됐지만 계류 상태다. 이 센터장은 경계선 지능인을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경계선 지능인의 교육과 자립을 돕는 밈센터가 출범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경계선 지능인은 장애와 비장애 사이 회색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이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제도가 필요하다.

 

 
글 · 사진 오혜연 기자
socio_quokka@yonsei.ac.kr

 

* 웩슬러 지능 검사: 장애 기준을 판단할 때 시행하는 검사로 법이 정한 유일한 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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