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노동자의 고단함을 들여다 보다

맞벌이 가구와 1인 가구의 증가로 가사 노동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국내 가사 서비스 결제 금액은 지난 2017년 7조 5천억 원에서 2019년 약 16조 원으로 214% 증가했다. 가사 노동의 시장 규모는 커진 반면, 가사 노동자는 저임금과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을 보호할 법과 제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가사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지 않으면 일할 사람은 더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부당한 지시에도
따를 수밖에

 

가사 노동은 가정생활 유지에 필요한 업무 전반으로 청소와 빨래, 가구 구성원을 돌보는 일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전국 최초로 출범한 가사·돌봄 노동조합인 가사돌봄유니온송미령 사무국장은 가사 노동은 맞벌이 가구나 1인 가구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며 가사 노동자의 사회적 역할이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는 가사 노동자의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뿐더러 정확한 종사자 통계조차 집계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23년 가사 노동자의 수를 11만 4천 명으로 집계했지만, 업계에서는 6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전략조정본부 장진희 국장은 공식적으로 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가사 노동자까지 생각하면 실제 수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사 노동자가 이용자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가사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바로 해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사 노동자는 청소와 요리, 아이 돌봄 등 이용자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업무를 맡는다. '3시간 동안 아이를 등원시키고, 반찬을 준비해 주세요와 같은 요구에 따라 일하는 방식이다. 표준화된 업무 지침이 없다 보니 시간 내 소화하기 어려운 요구를 받기도 한다. 송 사무국장은 이용자가 4시간 걸리는 일을 2시간 내 끝내라고 지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업무가 중간에 추가되기도 한다. 지난 2021년 서울연구원에서 실시한 가사서비스 이용과 공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객의 무분별한 요구와 표준화되지 않은 업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37.9%에 달한다.

가사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 이용자의 태도 역시 가사 노동자를 힘들게 한다. 송 사무국장은 락스로 청소하는 가사 노동자에게 아이가 곧 돌아오니 문을 닫고 청소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5년 차 가사 노동자 임미영(55)씨는 일반쓰레기를 종량제 봉투에 넣지 말고 무단 투기하라는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받은 적도 있다거절한 후로는 해당 가사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송 사무국장은 이용자가 플랫폼에 민원을 넣거나, 낮은 평점을 주면 가사 노동자의 플랫폼 이용이 제한될 수 있다이들은 고용과 직결되는 사용자 평점을 높이거나 좋은 후기를 받기 위해 과한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0년 일해도 남는 것은
아픈 몸과 변함없이 낮은 임금뿐

 

노동 강도에 비해 낮은 임금 수준도 문제다. 충남대 경제학과 윤자영 교수는 가사 노동자의 대다수인 중·고령 여성들은 다른 일자리 기회가 많지 않아 저임금에도 높은 강도의 업무를 감수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가사 노동자의 평균 시급은 1만 2천300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소득의 18~25%를 플랫폼에 수수료로 지불하고, 근무지까지 교통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하기에 실수령액은 더 적다. 가사돌봄유니온 최영미 위원장은 가사 노동자는 연차 수당이나 주휴 수당을 받지 못해 실제 보상 수준은 더 낮다고 지적했다. 장 국장은 단순 소득이 아니라 실수령액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력에 따른 보상 체계가 없다 보니 가사 노동자는 연차가 쌓여도 저임금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한국노동연구원 손연정 연구원은 경력에 따라 적정한 보상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건강 문제로 직결된다. 지난 2018년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실시한 서울지역 가사 노동자 노동 실태조사’(아래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픈 데도 일하느라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29.4%였다. 송 사무국장은 가사 노동자의 대부분인 50, 60대 여성은 부상에 취약하다시간에 맞춰 일을 끝내려고 근육을 반복적으로 쓰다 보니 통증을 호소하는 노동자가 많다고 말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해 보험에 가입한 가사 노동자가 35%에 불과하다. 이는 65%의 가사 노동자가 노동 중에 다치더라도,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함을 의미한다.

 

가사근로자법
가사 노동자 위한 첫 걸음

 

지난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자는 최저임금법, 산업재해보상법, 고용보험법 등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는다. 그러나 가사 노동자는 지금까지도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 밖에 있다. 근로기준법제11조에 가사 노동자를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는 예외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양승엽 연구원은 가사 노동을 가정 내 문제로만 보는 봉건적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이라며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지 70년이 지났는데도 예외 조항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10년 넘게 이어진 가사 노동자들의 입법 노력 끝에 지난 2022년 6월,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됐다. 이 법은 가사 노동자의 근로계약 체결 의무화, 최저임금과 퇴직금 보장, 4대 보험 보장 등을 골자로 한다. 손 연구원은 가사근로자법은 비공식적으로 다뤄지던 가사 서비스를 공식 영역으로 끌고 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근로계약 체결 의무화에 대해, “그동안의 구두 계약은 책임 소재를 묻기 어려웠는데, 근로계약서 작성을 통해 임금, 노동 범위, 노동 횟수 등을 합의하고 가사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사근로자법이 모든 가사 노동자를 보호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가사근로자법의 적용을 받는 가사 노동자는 정부 인증기관에 직접 고용된 가사 노동자로 국한되는데, 정부 인증기관이 전체 직업소개소의 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 기준 전국 직업소개소 3천733개 중 단 102개만 정부 인증을 받았다. 나머지 97%의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자리를 구하는 가사 노동자들은 여전히 가사근로자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손 연구원은 가사근로자법의 취지가 실현되려면, 더 많은 직업소개소가 정부 인증기관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직업소개소가 정부 인증을 받지 않아도 영업이 가능한 만큼, 이들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정부 인증을 받도록 할 유인이 필요하다. 장 국장은 정부 인증기관이 되면 직업소개소가 가사 노동자의 사회보험금 일부를 부담해야 하고, 가사 노동자에 대한 보호 책임이 늘어난다정부 인증을 받았을 때 얻을 수 있는 혜택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가사 노동자의
권리가 지켜지려면

 

가사 노동자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려면 업무 표준화 고충 처리 창구 확대 플랫폼 책임 제고 사회적 인식 개선 등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는 정부의 표준화된 업무 지침 없이 직업소개소가 자체 내규를 통해 업무를 지시하고 페널티를 부여하고 있다. 송 사무국장은 이용자의 무리한 요구로부터 가사 노동자를 보호하려면 정부가 업무를 표준화해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사 노동자가 고충을 털어놓을 수 있는 창구도 확대돼야 한다. 송 사무국장은 고용노동부가 가사 서비스 종합지원센터를 설립해 고충을 처리하고 있지만, 시범 사업이라 내년을 담보할 수 없다고충 처리 창구를 지속해서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플랫폼 기업들의 책임을 제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자활복지개발원 이상아 연구원은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구하는 가사 노동자는 늘고 있지만, 플랫폼 기업은 중개자로서의 역할만 강조할 뿐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제화를 통해 플랫폼 기업에 가사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보장하게 하거나, 이용자의 무리한 요구로부터 이들을 보호하는 등 플랫폼에 일정 책임을 지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사 노동자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손 연구원은 사회가 가사 노동을 허드렛일로 여기는 인식이 남아 있다필수적인 서비스가 된 만큼 인식이 전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관리사나 매니저 같은 호칭으로 부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사소해 보여도 이용자가 가사 노동자를 배려하고 존중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가사 노동의 중요도는 커지고 있지만 가사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대우는 갈 길이 멀다. 가사 노동자 모두가 안전하고 당당하게 일할 수 있도록 정부와 이해당사자들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 이지웅 기자
socio_oong@yonsei.ac.kr

그림 노태린 작가(노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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