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좌진의 불완전한 노동 환경을 살펴보다

연차 쓸 수 있는 의원실은 여의도 북유럽이라 불러요."
- 전 인턴 비서관 전모씨

공무원의 단점과 사기업의 단점만 모아뒀다고들 얘기합니다.”
- 8급 비서관 B

모두 국회 보좌진끼리 실제로 주고받은 농담이다. 국회의 노동법 입법으로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이전보다 더욱 보장되고 있지만, 오히려 국회 보좌진의 노동 여건은 수십 년째 정체돼 있다. 보좌진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 실상을 살펴봤다.

 

▶▶우리 국회에는 2천700여 명의 보좌진이 일하고 있다.
▶▶우리 국회에는 2천700여 명의 보좌진이 일하고 있다.

 

당연한 연장근로,
당연하지 않은 휴식

 

우리나라는 국회의원의 보좌직원과 수당 등에 관한 법률2조에 따라 국회의원(아래 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는 보좌직원(아래 보좌진)을 둔다. 각 의원은 4급 보좌관 25급 선임비서관 26·7·8·9급 비서관 각 1인턴 비서관 1명까지 총 9명의 보좌진을 채용할 수 있다. 국회에 300명의 의원을 보좌하는 2700명의 보좌진이 있는 것이다. 보좌진은 의원의 의정활동을 보좌하며 각종 법안과 정책을 만든다. 이 외에도 보좌진은 보도자료나 여러 행사의 연설문을 작성하며 지역구 민원을 해결하는 일을 한다. 보좌진은 의원의 의정활동을 최일선에서 보좌하는 만큼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5급 선임비서관 A씨는 법안을 만들어서 의원에게 직접 보고하고, 의원이 승인하면 법안이 발의되는 구조라며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국익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점에 보람과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좌진들은 열악한 업무 환경을 견디고 있다. 먼저 과중한 업무량으로 인해 근무에 어려움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보좌진 대부분은 연장근로수당이 지급되는 시간보다 한참 웃도는 시간을 근무한다. 8급 비서관 B씨는 2회 정도는 오전 6시에 출근하고 평시 오후 830분 혹은 자정이 지나서야 퇴근해, 하루 12시간 넘게 근무하는 날이 많다바쁜 시기에는 주말에도 빠짐없이 출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좌진은 행정부 등 일반적인 공공기관에 속한 공무원과 달리 포괄임금제*로 임금이 지급된다. 이로 인해 추가 근무 시 수당을 인정받을 수 있는 시간이 월 20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A씨는 보좌진 대다수의 추가 근무 시간이 월 20시간을 넘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업무가 매우 유동적이라 매번 추가 근무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해 급여를 책정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9년 인사혁신처가 발표한 '2024년도 국회의원 보좌직원 보수 지급기준'에 따르면 ▲4급 보좌관 685만 5천160원 ▲5급 선임비서관 605만 2천940원 ▲6급 비서관 423만 9천050원 ▲7급 비서관 367만 4천360원 ▲8급 323만 1천620원 ▲9급 288만 6천680원에 달하는 정해진 월 급여를 받고 있다. 해당 금액에는 초과근무수당 등이 포함돼 있다.

연차·병가 제도도 뜻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인턴 비서관으로 6개월 정도 근무했었던 전모씨는 연차를 쓰려면 상급자에게 개인적으로 양해를 구해야 해서 눈치를 본 적이 많다의원실의 문화나 분위기에 따라 다르지만, 연차 사용이 어려운 의원실이 많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B씨 또한 ·월차 제도는 존재하지만 실제로 사용한 적은 없다일이 있으면 따로 말씀을 드리고 휴가를 내는 식이라고 답했다.

보좌진들은 직무 특성상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업무가 많아 노동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회 일정이 유동적이기에 의원 일정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교육위원장이자 현재 권성동 의원실에 소속돼 있는 5급 선임비서관 윤희진씨는 의원의 의정활동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만 이뤄지지 않는다오히려 야간이나 주말에 시민들과 소통이 많을 수밖에 없는 업무 특성을 감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감사, 대정부질문, 총선 등 국가적인 행사가 열리는 시기가 되면 수행해야 할 업무는 더욱 많아진다. 전씨는 상황 통제를 위해 보좌진이 5분 대기조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고, A씨 또한 휴가 기간에도 자발적으로 더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래전부터 지적돼 온 문제
해결이 더딜 수밖에 없는 이유

 

보좌진의 높은 노동강도와 고용 불안정성은 오래전부터 문제시됐다. 개선에 대한 논의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별정직 공무원 소수성 국회를 향한 외부 시선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보좌진은 별정직 공무원이다. 이에 표준화된 절차 없이 선발되며, 호봉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공개 채용시험이 따로 있지 않고 각 의원실에서 공고를 올려 개별적으로 선발하는 식이다. 능력을 인정받으면 언제든 선발되고 승진할 수 있다. 임면이나 진급에 관한 체계적인 기준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전씨는 채용이 알음알음 이뤄지기도 하고, 의원실마다 선발기준이 천차만별이라며 채용부터 업무까지 노동 환경이 의원실의 문화나 분위기에 따라 다르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보좌진은 국회사무처 소속 공무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의원과의 수직관계가 더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 윤 선임비서관은 보좌진 임면 권한이 전적으로 의원 개인에게 부여돼 있다국회에 의원실이라는 작은 회사가 300개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가중된 업무를 완수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압박에 놓일 수밖에 없다. B씨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의원 임기 중 언제든 면직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명예교수는 보좌진이라는 지위 특성상 업무에 대한 개선 및 요구사항을 상사에게 말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보좌진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도 고용 불안정성 개선에 어려움을 더한다. 우리나라에서 보좌진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27백 명으로 그 규모가 매우 작다. 보좌진의 노동 여건을 조사한 공식적인 통계자료나 연구 결과를 찾아보기 어렵다. 규모가 작다 보니 내부적으로 노동 환경 개선이 이뤄지기도 힘들다. B씨는 누군가의 갑질로 보좌진이 다른 의원실로 옮기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기존의 의원실에서 생긴 일을 모두가 내부에서 알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환경에서 고용 및 인권 보장을 외칠 수 있을지 의문이라 전했다. 윤 선임비서관은 상위 직급일수록 책임이 막중하고 하위 직급일수록 수직관계로 인한 압박이 강해 모두가 목소리를 크게 내기 어려운 딜레마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국회를 둘러싼 외부의 시선이 보좌진의 노동 환경 개선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좌진 인력 증원 등 처우 개선에 관해 제도권에서 논의할 경우 의원이 본인의 이익을 위해 입법부 권한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B씨는 세비가 아까워 의원 정수를 줄이자, 보좌진 정수를 줄이자는 얘기가 선거마다 나오는 것이 현실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 교수는 규모가 작다 보니 직무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부족하고, 그들의 노동이 공론화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윤 선임비서관은 국회가 국민으로부터 신임을 얻었다면 이런 비판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의정활동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보좌하는 의원의 사진을 남기고자 카메라를 내밀고 있는 보좌진들
▶▶자신이 보좌하는 의원의 사진을 남기고자 카메라를 내밀고 있는 보좌진들

 

제자리걸음보좌진 근로 환경
그럼에도 개선되려면

 

보좌진의 근로 환경을 본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선 국가시험으로 보좌진을 선발하는 등 통상적인 공무원과 같이 선발 절차를 표준화하는 방법이 있다. A씨는 임면권을 의원이 아닌 국회사무처가 행사한다면 노동 환경 문제가 제법 해결될 것이라면서도 보좌진은 높은 유연성이 필요한 직무이기 때문에 선발 절차를 표준화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덧붙였다. 윤 선임비서관 또한 의원의 임면권을 제한하기보다는 보좌진의 권리 구제나 권익 보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좌진들은 자신들의 노동 여건을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 방안으로 객관적인 임용·평가 제도 마련 각 당의 보좌진협의회 영향력 확대 등이 있다. A씨는 일부 의원실은 별도로 성과 평가를 진행해 직급 책정 및 면책에 반영하고 있다모든 의원실에서 일관된 기준으로 평가를 진행한다면 부당한 업무 지시를 비롯한 각종 문제를 근절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B씨 또한 직원 선발 및 역량 평가를 체계화해 명확한 검증 절차가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보좌진협의회는 보좌진의 권익 증진과 상호 간 친목 도모를 추구·실천하는 협의체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에 설립돼 있다. 보좌진은 헌법기관 소속이기에 사용자 또는 사측이 없어 노조를 설립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교육위원장으로도 근무하고 있는 윤 선임비서관은 협의회를 구성해 구체적인 입법 활동이나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22‘30일 전 면직예고제가 도입되고 보좌진 직급 중 하나인 비서의 직책명을 비서관으로 개정하는 등 여러 제도적 개선이 양당의 보좌진협의회를 주축으로 이뤄졌다. 직책이 변경되면서 보좌진의 권익이 더욱 향상됐다. 윤 선임비서관은 비합리적인 임면권 사용 등 보좌진이 겪는 부당한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한 권리 구제 수단을 계속해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개별 의원실 환경을 보좌진협의회가 일률적으로 규정하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보좌진들은 보좌진협의회를 지금보다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교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고, 이에 힘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만난 보좌진들은 모두 국가에 대한 헌신 내지는 사명감으로 높은 업무 강도를 감내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B씨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보좌진의 역할이기에 물불을 가릴 수 없다고 말했다. 윤 선임비서관 역시 “‘워라밸을 추구하는 사람은 이 직업에 진입할 생각조차 안 한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보좌진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이 조성될 필요가 있다.

 

 

글 · 사진 이다겸 기자
socio_isgyeom@yonsei.ac.kr

<사진제공 대한민국 국회>

 

* 포괄임금제: 정해진 근로 시간 외의 수당을 미리 정해 기본급과 함께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뜻한다. 근로 시간, 근로 형태와 업무의 성질을 고려할 때 시간 산정이 어려운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포괄임금제 방식으로 지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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