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잠시 머무르는 곳을 넘어 기억을 간직하는 곳이다. ‘오래됨’을 허무는 것이 아닌, 기존의 추억을 간직하며 새롭게 변화한 공간들을 방문했다.

 

예술이 머문 기차역

 

‘문화역서울284’ 공간은 1925년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경성역에서 출발했다. 경성역은 해방 후 서울역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지난 2004년 고속철도의 개통과 신(新) 서울역의 준공으로 역할을 잃자 방치됐다. 그 뒤 오랜 기간 관리하지 않은 탓에 이곳은 한동안 흉물로 전락했다.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는 낡은 서울역을 경성역 건립 당시 모습으로 복원했다. 명칭도 ‘문화서울역284’로 바꿨는데, 이는 서울역의 사적번호 284에서 따온 것이다. 

▶▶ 문화역서울284의 외관. 옛 서울역을 떠오르게 한다.
▶▶ 문화역서울284의 외관. 옛 서울역을 떠오르게 한다.

 

문화역서울284 입구를 들어서면, 중앙홀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스테인드글라스는 한국전쟁 당시 파괴됐지만, 건물을 복원하면서, 3태극과 다양한 색상의 선 모양을 가진 스테인드글라스로 재탄생했다. 중앙홀을 지나 마주한 내부에는 방문객이 다양한 작품과 한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예술공간이 마련돼 있다.  

▶▶ 천장 스테인드글라스의 모습
▶▶ 문화역서울284에는 시기별로 다양한 전시가 이뤄진다.
▶▶ 문화역서울284에는 시기별로 다양한 전시가 이뤄진다.

 

석유탱크에 채워진 문화공간

 

상암동에 위치한 석유비축기지는 지난 1973년 석유파동 이후, 비상사태를 대비해 석유를 비축하던 공간이다. 국가가 석유비축기지를 1급 보안시설로 관리했던 탓에 지난 수십 년간 근처에 사는 주민들조차 존재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석유비축기지의 운영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중단됐다. 서울월드컵경기장 건설 당시, FIFA에서 국제적인 행사장 근처에 위험 시설이 있으면 안 된다는 기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에 해당 건물은 2000년까지 운영한 뒤 방치됐다. 지난 2017년, 서울시 도시재생 정책에 따라 석유비축기지에서 문화비축기지로 재탄생했다. 

▶▶ 유리천장을 통해 보이는 암반 지형과 T1 파빌리온은 조화를 이룬다.
▶▶ 유리천장을 통해 보이는 암반 지형과 T1 파빌리온은 조화를 이룬다.

 

문화비축기지는 T0부터 T6까지 총 7가지의 문화 공간으로 나뉜다. 각 공간에는 석유비축기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탱크 상단을 투명한 유리 천장으로 대체한 T1 ‘파빌리온’은 천장으로 들어오는 빛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T2는 기존의 탱크를 감싸던 외벽을 일부 허물어 공연장으로 탈바꿈했다. 남은 외벽은 바람과 어우러져 다양한 소리를 이루게 했다. 또한 T2 해체 과정에서 나온 철판은 T6 커뮤니티센터를 짓는 데 이용됐다.

▶▶ 낡은 외벽은 매봉산 암벽과 더불어 T2 공연장에 독특한 울림을 만든다.
▶▶ 낡은 외벽은 매봉산 암벽과 더불어 T2 공연장에 독특한 울림을 만든다.
▶▶ T6 커뮤니티센터의 모습. 오래된 철판이 새로운 건물의 재료로 쓰였다.
▶▶ T6 커뮤니티센터의 모습. 오래된 철판이 새로운 건물의 재료로 쓰였다.

 

투박함이 주는 새로운 감성

 

성수역에서 10분가량 걸어가면, 사람으로 가득 찬 대림창고를 찾을 수 있다. 1970년대에 대림창고 공간은 정미소였다. 이후 1990년대부터 20년간 물류창고로 이용됐다. 하지만 지난 2011년, ‘샤넬’ 행사가 이곳에서 진행되며 ‘복합문화공간 대림창고’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 대림창고의 낡은 적벽돌이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 대림창고의 낡은 적벽돌이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 천장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은 창고에 개방적인 느낌을 준다.
▶▶ 천장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은 창고에 개방적인 느낌을 준다.

 

대림창고는 기존 창고 6개 중 3개를 합쳐 카페·문화 공간으로 변모했다. 입구의 녹슨 철문과 적벽돌은 창고의 투박한 느낌을 드러낸다. 내부 곳곳에 심은 나무는 반투명 유리천장을 통해 자연광을 직접 받는다. 이곳을 방문한 이준상(21)씨는 “오래된 높은 천장과 거친 느낌의 콘크리트 벽을 그대로 살린 대림창고는 독특한 분위기를 주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차가운 철길 위로 피어난 시민의 숨결 

 

경의선숲길은 용산구 효창공원역에서 마포구 가좌역까지 약 6.3km에 걸쳐 뻗어 있다. 1905년 일제에 의해 설치된 경의선은 용산과 신의주를 연결했다. 하지만 1950년대 이후, 남북이 분단되며 경의선은 반쪽짜리 철길로 남게 됐다. 

▶▶ 끊긴 철길에 귀를 대며 기차 소리를 기다리는 동상의 모습
▶▶ 끊긴 철길에 귀를 대며 기차 소리를 기다리는 동상의 모습
▶▶ 경의선숲길은 사람들에게 휴식을 제공한다.
▶▶ 경의선숲길은 사람들에게 휴식을 제공한다.

 

2000년대 들어 용산과 가좌를 연결하는 구간이 지하화되면서, 남은 지상의 철길은 시민들을 위한 경의선숲길로 탈바꿈했다. 경의선숲길 곳곳에서는 기차가 달렸던 철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철길과 함께 복원된 철도건널목과 새롭게 세워진 동상들은 방문객의 시선을 끈다. 방문객은 공원과 함께 들어선 상권을 이용하며, 지역사회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글·사진 이서준 기자
photo_gondr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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