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현대인의 강장제, 원예 문화

 지난 102일부터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는 세계 원예 박람회가 한창이다. 기원전 3천 년경 시작된 가장 오래된 문화 중 하나인 원예는 식물을 인위적으로 기르고 가꾸는 활동이다. 인류는 원예를 통해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이를 통해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 또한 기쁘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아름다운 꽃과 풀을 서로에게 전달하며 감정을 나누기도 했다. 그런 원예는 오늘날 현대사회의 삭막함을 치료하는 지점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원예, 취미에서 치료로

 

지난 1027일 발표된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치유농업* 시설은 2020234곳에 불과했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 확산된 이후 2021년에는 254, 2022년에는 353곳으로 확대됐다. 3년 새 무려 50.9% 늘어난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불안과 고독에 시달리는 현대인이 자연 친화적인 활동을 통해 정신적 안정을 얻으려는 욕구를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농촌과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FATI’ 보고서 10호에 따르면, 귀농과 귀촌에 대한 온라인 정보량은 202011만 건에서 202217만 건으로 늘어났다. 현대사회의 불안과 고독에 대한 해법으로 사람들이 자연으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원예치료는 지난 1984년 한국원예학회에서 처음으로 소개됐고, 1988년 이후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구가톨릭대 원예치료학과 윤숙영 교수는 “1988년에 개최된 8회 서울 패럴림픽이후 직업 교육을 목적으로 원예치료가 관심받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1991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대구가톨릭대에서 학부생을 대상으로 원예치료학이 개설됐다. 2000년대 초반에는 여러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새로운 대체 치료 요법이 필요하다는 사회적인 요구에 부응해 원예치료 과정을 설치하기도 했다.

원예 활동은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점에서 치료 요법으로 활용된다. 식물을 돌보는 일이 실제로 스트레스와 정신 건강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원예치료사협회 신상옥 회장은 원예치료는 꽃과 식물 등을 가꾸면서 정신적·육체적 회복을 추구하는 활동이라며 사람의 사랑을 바탕으로 식물의 생육을 추구하기에 치료의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신 회장은 식물을 보며 생각을 비우는 이른바 식물멍은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단국대 환경원예조경학부 이애경 교수는 인간은 자연에 대한 본능적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현대인에게 식물은 자연과의 유일한 연결 고리라고 말했다.

원예치료는 음악, 미술 등의 치료 기법과 달리 자연 그 자체를 치료의 소재로 활용한다. 인공적인 소재에 비해 자연 친화적인 소재는 손으로 직접 만지기에 거부감이 없다. 소재와의 신체 접촉을 통해 감각 경험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환자의 인지 기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컨대 흙을 만지고 식물을 가꾸는 과정에서 촉감이 자극되고, 이를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신 회장은 원예 활동을 통해 오감의 자극을 극대화할수록 원예치료의 효과가 높아진다고 전했다. 원예치료는 치매 노인들에게 특히 효과적이다. 지난 2012년 단국대 일반대학원에서 발표한 회상 자극 소재를 이용한 원예치료 프로그램이 치매 노인의 인지 및 우울에 미치는 영향에서는 노인은 지난날을 회상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회상 자극 소재를 이용한 원예치료 프로그램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원예는 인지 기능 향상에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 지난 2023년 제주대 사회교육대학원이 발표한 원예치료가 노인의 인지기능과 자아존중감 및 우울감에 미치는 효과에 따르면, 치매 예방의 차원에서 원예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인들의 인지 기능이 모두 유의미하게 향상됐다.

대상자와 식물 간의 상호작용이 일어난다는 점도 원예치료의 특징이다. 이 교수는 식물을 아끼는 마음으로 돌보는 과정에서 인간적 성숙을 이룰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식물의 성장 과정은 인간의 생애주기와 유사하다. 작은 씨앗에서 난 싹은 병충해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라서 꽃을 피운다. 이후 비로소 열매를 맺고, 열매는 떨어진 뒤에 씨앗을 남기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이 교수는 원예 활동으로 식물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식물을 돌보고 가꾸는 과정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원예치료의 현장, 초록기억카페

 

▶▶ 초록기억카페는 초로기의 치매 환자들이 운영하는 카페다.
▶▶ 초록기억카페는 초로기의 치매 환자들이 운영하는 카페다.


초록기억카페에 오는 날이면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너무 설레고 기분이 좋아요

강서구의 강서치매안심센터에서 근무하는 60대 치매 환자 A씨가 한 말이다. A씨는 초로기 치매** 환자를 위한 초록기억카페의 직원이다. 초록기억카페는 만 65세 이전 발병한 조기 치매 환자들을 위해 원예 프로그램과 사회참여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으로, 지난 8월에 운영을 시작했다. 초록기억카페 안에는 치매 환자로서가 아닌 카페 직원으로서 밝게 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치매안심센터에 방문한 손님들은 키오스크를 통해 음료를 주문했고, 손님이 주문하자 직원들은 음료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밝은 조명 아래에는 초록빛을 띠고 있는 싱그러운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고, 정성스럽게 가꾼 채소들은 음료의 재료로 사용됐다.

초록기억카페에서 근무하는 환자는 식물을 가까이 하는 업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억력과 사회성을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다. 실제로 초록기억카페의 직원들은 음료 제조 및 손님 응대와 같은 소일거리를 통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상호 작용했다. 이로써 소외감과 고립감을 극복하고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작업치료사 한미리(27)씨는 초로기 치매 환자들은 나이대에 맞는 사회활동에 참여하지 못해 우울감을 느끼기도 한다환자들이 우울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치매 악화를 지연할 수 있도록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환자들은 가장 특별한 메뉴로 초록 야채 주스를 꼽았다. 이 주스에는 로메인, 버터헤드, 카이피라 등 초로기 치매 환자들이 직접 수경 재배한 채소들이 재료로 사용된다. A씨는 손님들을 맞이하며 직접 재배한 채소로 음료를 제조하는 일이 정말 즐겁다앞으로도 꾸준히 이곳에서 행복하게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캡션: 직원이 직접 재배한 식물로 만든 음료를 제공하고 있다.
▶▶ 직원이 직접 재배한 식물로 만든 음료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초록기억카페와 같이 원예 문화를 단순 문화가 아니라 치료 목적으로 활용하는 곳들이 늘고 있다. 복지관, 학교 등 다양한 기관이 원예치료를 접목한 프로그램을 진행함으로써, 참가자들에게 자연과 교감하며 심리적 안정을 찾을 기회를 제공한다. 지역사회에서도 청소년, 미혼모, 지적 장애인, 그리고 노인 등 폭넓은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원예치료를 확대하고 있다.

 

원예문화는 현대사회에서 스트레스와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 방향을 제시한다. 특히 원예치료는 사람들에게 자연과 더욱 가까워질 기회를 제공하며, 일상 속 작은 변화를 통해 큰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글·사진 류지원 기자
culture_land@yonsei.ac.kr
글 박준화 기자
culture_show@yonsei.ac.kr
최혜정 기자
culture_shock@yonsei.ac.kr
 

 

* 치유농업: 국민의 건강을 회복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이용되는 다양한 농촌자원의 활용과 이와 관련된 활동.
** 초로기 치매: 65세 미만, 주로 40~50대의 이른 나이에 오는 치매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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