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적 저작물을 둘러싼 불공정 계약 실태를 살펴보다

최고시청률 8.2%로 성황리에 방영을 마친 『미생』과 OTT 플랫폼에서 공개된 지 5일 만에 1위를 차지한 『D.P』. 이들은 모두 웹툰을 원작으로 각색된 드라마로 「저작권법」 제5조에 따른 2차적 저작물이다. 2차적 저작물은 원저작물에서 변형된 창작물로, 소설·노래·상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산되고 있다.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강진근 교수는 “원작자가 2차적 저작물로 권리를 침해받았다며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구름빵』을 그린 백희나 작가가 『구름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애니매이션, 굿즈 판매로 인한 수익을 거의 받지 못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2021년 서울시가 발간한 ‘문화예술불공정 피해 사례분석집’에 따르면 문화예술 분야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피해 사례로 2차적 저작물에 대한 원작자의 권리 침해가 꼽혔다.

 

작가를 위협하는 
매절 계약*

 

원저작물이 만들어지면, 원작자는 원저작물을 배포·변형할 권리와 함께 2차적 저작물 작성권(아래 작성권)을 가진다. 작성권은 원작품을 2차적 저작물로 만들거나 이용할 수 있는 권리다. 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김기태 교수는 “작성권은 원작자의 저작권을 보호할 수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원작자가 아닌 제3자가 2차적 저작물을 만들거나 사용하기 위해서는 「저작권법」 제45조에 따라 원작자에게 이용을 허락받거나 저작재산권**을 양도받아야 한다. 김 교수는 “원작자의 허락 없이 2차적 저작물을 만드는 것은 원작자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라 현행법상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은 인세 계약과 매절 계약에 따라 다르게 보장된다. 전문가들은 매절 계약이 특히 원작자의 저작권을 온전히 보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등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매절 계약에는 제3자에게 작성권을 양도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정 교수는 “인세 계약은 원작자가 제3자에게 작성권을 양도해도, 2차적 저작물이 팔리는 만큼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다”며 “그러나 매절 계약은 계약 체결 당시 한 번만 대가를 지불받기에 작성권이 양도되면 2차적 저작물로 발생하는 수익을 원작자가 일체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매절 계약을 체결하면 창작자가 본인 저작물에 대한 추가적인 창작 활동을 할 수도 없다. 이일호 연구교수(법학연구원·저작재산권법)는 “매절 계약이 체결되면 원작자 자신이 파생 작품을 만들고 싶어도 매절 계약의 상대방인 사업자의 허락 없이 만들 수 없다”며 “이러한 매절 계약이 불합리한 계약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계약의 한 형태로 당연시되며 관행처럼 남아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에서는 작성권의 양도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저작권법」 제45조는 계약 체결 당시 원작자의 작성권이 특약을 만들어야만 양도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 교수는 “해당 법 조항은 원작자의 작성권을 완벽히 보호하지는 못한다”며 “특약 조항을 만들어 작성권을 양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작성권의 양도는 원작자의 권리를 침해하지만, 허용되는 상황”이라며 “현재로서는 작성권 양도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 문체부의 표준계약서 양식이다. 특약 조항으로 기재해 작성권이 양도되면 원작자가 수익을 얻지 못하는 등 악용되는 문제가 있다.
▶▶ 문체부의 표준계약서 양식이다. 특약 조항으로 기재해 작성권이 양도되면 원작자가 수익을 얻지 못하는 등 악용되는 문제가 있다.

 

사각지대에 감춰진 불공정 계약,
울 수밖에 없는 원작자

 

매절 계약으로 인한 불합리는 불공정한 계약에서 시작된다. 불공정 계약이 일어나는 원인으로는 ▲창작자와 업계의 위계 구조 ▲불투명한 계약 과정 ▲모호한 표준계약서가 꼽힌다.

먼저 창작자가 기업의 요구를 쉽게 거절할 수 없도록 하는 위계적 권력 구조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 교수는 “기업이 갑이고 원작자가 을인 업계의 권력 구조는 원작자가 불평등한 계약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원작자가 불공정 계약에 문제를 제기하면 계약을 파기 당하기도 한다.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는 “불공정 계약을 거부하면 계약 자체가 무산되는 경우가 많다”며 “거의 모든 출판사가 불공정 계약을 강요하는 악습을 갖고 있다”고 했다. 강 교수는 “신인 작가나 소규모 창작 집단일수록 기업의 제안을 거절할 때 불이익을 받을까 불안해 한다”며 “결국 힘이 약한 원작자는 매절 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발표한 ‘문학분야 불공정 관행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에서 작성권 계약을 거부해 출판 계약이 중도 파기된 사례를 분석한 결과, 전 연령대 중 신인 작가가 대다수 포진한 20~39세가 24.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기업이 권력 구조를 이용해 원저작권자에게 계약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기도 한다. 불공정관행 실태조사에 따르면 2차적 저작권 내용에 대해 작가가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응답한 경우는 전체 응답자 중 40.1%였다.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는 “출판사가 2차적 저작물을 만들어도 원저작권자에게 따로 알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심지어 그렇게 만든 2차적 저작물로부터 출판사 지분을 더 챙기기도 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기업이 계약서의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자 하는 윤리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계약서가 모호해 원작자가 불공정 계약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기업이 계약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불분명한 단어를 사용해 매절 계약의 관련 조항을 숨기기도 한다. 인디 게임 업체 ‘스튜디오 806’ 권리안 대표는 지난 9월 문화콘텐츠 사업을 진행하는 A기업과 불공정 계약을 체결할 뻔했다고 토로했다. 권 대표는 자신의 저작물인 <알바생 시뮬레이터!>를 단순히 '참고하고 싶다’는 제안을 A기업으로부터 받았다. 권 대표는 “계약서에도 ‘참고’라는 용어가 사용돼, 그 이상으로 활용해 2차적 저작물을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그런데 계약서를 자세히 읽어보니 단순히 참고하는 수준이 아니라 2차적 저작물로 병행해 이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A기업이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본”고 말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표준계약서도 원작자를 힘들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작성권 관련 논란이 꾸준히 이어지자 대한문화출판협회(아래 출협)과 문화체육관광부(아래 문체부)에서 저작권 표준계약 내용을 규정한 표준계약서를 만들었다. 그러나 해당 표준계약서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여전히 작성권 양도가 가능하도록 체결하는 계약이 만연하다.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는 “문체부의 표준계약서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작성권을 출판사에 위임하는 계약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만든 계약서를 표준계약서라고 전달해 혼란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불공정 계약을 막기 위해서는 출협과 문체부의 표준계약서에 강제력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이 교수는 “문체부가 고시한 표준계약서를 계약 과정에 사용하면 불공정 계약으로 발생하는 피해를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는 “문체부에서 고시한 표준계약서를 준수하는 업계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내 작품,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전문가들은 창작자가 불공정한 계약을 체결하지 않도록 선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계약 자유의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계약이 체결되면 이전 상태로 되돌리기 힘들다”며 “처음 계약하는 과정부터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문체부는 신인 작가와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저작권 교육’을 실시했다. 권 대표는 “해당 특강처럼 창작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며 “불공정 계약 사례를 소개하거나 불공정 계약 예방법을 다룬 콘텐츠를 정부 차원에서 배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아가 이 교수는 “매절 계약 자체를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이 발의한 저작권법 개정안은 5개월째 계류 상태다. 원작자가 작성권을 양도하더라도 매출에 비례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이 교수는 “해당 개정안처럼 매절 계약 자체를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절 계약으로 피해 본 원작자를 보호하기 위해 ‘강제허락제도’를 이용하자는 논의가 나오기도 한다. 「저작권법」 제50조에 명시된 강제허락제도는 저작물을 이용할 때 반드시 원저작권자에게 적정한 수준의 대가를 지불해야만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를 활용하면 원작자가 원치 않게 매절 계약을 맺었거나, 계약이 부당하다고 여겨질 때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강제허락제도가 시행되면, 정부가 원작자를 대신해 기업에 적정 수준의 비용 조건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교수는 “강제허락제도는 매절 계약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관행처럼 남은 매절 계약은 창작자의 저작권을 위협한다. 이 교수는 “저작권 보호를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불공정 계약이 잘못됐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라며 “작가뿐만 아니라 독자 역시 잘못된 관행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작자들이 계약서 앞에서 불안하지 않은 사회가 오기 바란다.

 

 

글 오혜연 기자
socioi_quokka@yonsei.ac.kr

<사진제공 문화체육관광부>

 

* 매절 계약: 저작물 이용에 대한 대가를 작품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원작자에게 미리 일괄 지불하는 계약.
** 저작재산권: 저작물을 복제·공연·공중송신·전시·배포·대여·2차적저작물을 작성해 이용할 수 있는 저작권자의 권리.
*** 계약 자유의 원칙: 계약에 의한 법률관계 형성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각자의 자유에 맡겨지며, 법도 그러한 결과를 존중한다는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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