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국가를 꿈꾸는 국회의 살림꾼을 만나다

제35대 국회사무총장 이광재 동문(법학·83)은 2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정치에 입문했다. 이 동문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강원도지사, 세 차례의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국회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 우리신문사는 지난 16일 국회사무총장 이광재 동문(법학·83)을 만나 그의 정치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우리신문사는 지난 16일 국회사무총장 이광재 동문(법학·83)을 만나 그의 정치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대학 시절의 경험이 정치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A. 봉사 동아리 ‘로타랙트’에서 사람을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방법을 배웠다. 또한 사회 봉사단체 ‘로터리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매주 월요일 플라자호텔에서는 로터리클럽 회원들의 모임이 있었다. 회원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성공한 사람에겐 공통적인 DNA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메모를 성실하게 했고, 공부를 열심히 했으며, 시간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다. 나는 정치 활동을 하며 이 세 가지를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Q. 정치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가 궁금하다. 어떤 경로로 정치에 입문했나.

A. 대학 시절 로타랙트에서 활동하며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야학 교사로 일했다. 야학에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기에 부산에서 수감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출소 직후인 지난 1988년, 노무현 변호사가 부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당시 노무현 국회의원은 보좌진을 찾고 있었고, 부산 재야운동가였던 임정남씨가 나를 추천했다. 노무현 국회의원은 나와 3시간 정도 대화한 후, 23살인 나에게 비서실 구성의 전권을 맡겼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다. ‘운명’ 같은 거라고 표현하고 싶다. 어린 나이에 비서실 구성을 맡게 되면서 정치권에 발을 디뎠다.

 

Q.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도지사, 그리고 국회의원을 모두 역임했다. 각각의 지위에서 경험하고 느낀 바가 달랐을 듯한데.

A.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근무하며 국가가 무엇이고, 국가를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공직사회가 무엇인지와 공직자와 어떻게 일하는지도 배웠다.

도지사 생활에서는 밀착형 행정을 배웠다. 국민 가까이에서 국민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고 해결하는 방식이다. 또한 국민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게 됐다. 도지사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경로당에 돋보기가 달린 손톱깎이를 보급하는 것이었다. 경로당에 방문해 보니 어르신들 손에 반창고가 많이 붙어 있었다. 눈이 침침해 손톱을 깎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곧바로 돋보기가 달린 손톱깎이를 도내 모든 경로당에 보급했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지금까지는 국회의 생산성을 어떻게 높여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성공한 국가가 됐지만 국민은 여전히 여러 위기 상황에 놓여있다. 그 위기를 해결하려면 예산과 법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국회로는 역부족이다. 미국 국회는 3천 회가량 회의를 열지만, 우리나라 국회는 일 년에 본회의와 상임위원회를 합쳐 500회가량 회의를 연다. 미국은 발의된 법안의 6.4%를 통과시키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26%를 통과시킨다. 우리나라 국회가 회의는 더 적게 하면서 법은 많이 통과시킨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국회가 더 내실 있게 운영될 필요가 있다.

 

Q. 국회사무총장으로서 어떤 일을 담당하고 있나.

A. 국회의 직원이 대략 5천 명, 출입 기자는 1천500명이다. 국회 방문객 또한 매일 수천 명 정도다. 사무총장은 이 조직의 예산, 인사, 운영 등 전체 살림을 관장한다. 또한 의원들이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Q. 국회사무총장으로서 역점으로 삼고 있는 부분은.

A. AI를 활용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두고 있다. 국회라는 축구장에서 진보 진영은 진보 골대에만, 보수 진영은 보수 골대에만 집중하는 것이 현실이다. 서로의 골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AI 기술을 활용해 국회 전체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와 외국의 입법, 논문 등의 자료를 정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문제 상황이 무엇인지, 문제 상황과 관련한 쟁점에는 무엇이 있는지, 해결을 위해 예산이 얼마나 필요한지 등을 찾는 것이다. 이에 AI 국회를 만드는 것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국회의원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한다. 국회에서는 매년 1천400여 개의 세미나가 열린다. 이를 전부 유튜브로 중계해 국민이 국회의원의 활동을 확인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회도 ‘직접 민주주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대의 민주주의’는 한계가 왔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원하는 법을 스스로 만들 수 있게 해야 한다. 국회에는 ‘국민 청원 제도’가 있다. 5만 명 이상 동의하면 국회에서 청원 내용을 논의한다. 현재 온라인 서명이 가능하게 만들었고, 그중 일부는 국회 방송에서 소개하고 있다. 청원 제도를 강화해 국민이 직접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Q. 정치인으로서 가장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면.

A. 농촌이 쇠락해 가는 것을 볼 때 힘들었다. 태백시, 영월군, 평창군, 정선군 등 탄광촌이 있는 지역에서 국회의원 생활을 했는데, 석탄 이용이 줄며 탄광촌들이 문을 닫았다. 폐광되면서 마을이 폐허가 됐기에 주민들의 삶을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정선군 임계 주민들은 약초를 심어서, 영월군 주민들은 포도를 키워서 경제활동을 하길 원했다. 이에 전문가들과 마을을 방문해 여러 차례 회의하고 예산을 지원하며 마을의 자립을 도왔다. 한꺼번에 세상을 바꿀 수 없으니 성공 사례를 하나씩 만들어 내는 데 집중했다. 

형편이 어려운 국민을 마주할 때도 마음이 아팠다. 국회의원 시절 홀로 사는 할머니가 나이 어린 손주를 데리고 사는 게 힘들어 장날에 아이를 시장에 놓고 간 사건이 있었다. 며느리와 아들이 떠나고 할머니 혼자 손주를 키우는 상황이었다. 할머니의 집에 가보니 형편이 열악해 할머니를 처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 사건을 보며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정치는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Q. 정치인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A. 한 개인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의원 시절 태백시, 평창군 등의 주요 고등학교에 기숙사를 건립했고, 학교에 많은 예산을 지원했다. 그 결과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아졌다. 여러 학교의 교장들이 신입생 입학이나 대학 진학 실적에 대해 연락을 줄 때 보람을 느꼈다. 마찬가지로 국회의원 시절에 세계적인 석학들이 강연하는 프로그램인 EBS 『위대한 수업』을 추진하며 예산을 지원했는데, 프로그램이 좋은 평가를 받을 때 뿌듯했다.

 

Q. 정치의 양극화와 진영 정치가 심화하고 있다. 한국 정치의 양극화를 극복할 방안이 있다면.

A. 정치의 양극화는 세계적인 현상으로, 중산층의 붕괴로 발생한다. 미국에서도 빈부 격차가 커지고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중산층이 무너졌다. 미국의 공화당, 민주당의 극한 대립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양극화가 미국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건강한 나라를 위해서는 중간 계층이 탄탄해야 한다. 중견·중소기업이 자리를 잡아야 하고, 중소 도시도 힘을 갖춰야 한다.

SNS 또한 정치 양극화 심화에 일조했다. SNS는 누군가를 공격하기에는 효율적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기에는 어려운 매체다. 그래서 SNS를 건강하게 이용하기 위한 운동이 필요하다. 국회사무총장이 된 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유명인에게 매달 ‘글로벌 인플루언서 어워드’를 주고 있다. 우리 공동체를 지키려 하는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양극화된 채로 서로의 인격을 파괴하는 지금의 행태를 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청년 세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취업과 스펙 쌓기로 여유가 없는 상황이지만, 청년이 정치에 참여해 자신의 권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강원도 원주시 소재 대학의 학생들이 주민등록상 거주지를 원주로 이전하는 운동을 한 적이 있다. 원주에 거주하는 인원이 늘어나자, 국회의원 의석수가 1개에서 2개로 증가했다. 원주가 확보할 수 있는 예산도 늘었다. 늘어난 예산은 학생들의 더 나은 대학 생활을 위해 사용됐다. 이처럼 학생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해 효능감을 느끼게 된다면 이후 참여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A. 궁극적인 목표는 정치인 평가 지표를 만드는 것이다. 축구에서는 경기를 마치면 모든 선수의 평점이 산정된다. 그러나 정치인을 대상으로는 이러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다. 국민에게는 먹고사는 일이 가장 중요한 만큼 정치인 대상 평가는 삶의 질과 연관돼야 한다. 세종대왕도 “임금에게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에게 하늘은 쌀”이라고 말했다. 교육, 건강, 문화생활 등 삶의 질과 연관된 자료로 지표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지표를 통해 매년 정치인을 평가한다면 국가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다.

 

Q. 우리대학교 학생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A. 인생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으니 도전적인 자세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넘버 원’보다는 ‘온리 원’이 되려고 해라. 남들과 똑같은 스펙보다는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대학교 청송대에 ‘내일은 오늘과 다르리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처럼 청년들이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믿음을 가지면 좋겠다.

 

 

글 백진주 기자
bodo_tapioca@yonsei.ac.kr
지혜진 기자
bodo_harvard@yonsei.ac.kr
김준재 기자
bodo_suzy@yonsei.ac.kr

사진 이제형 기자
bodo_nowbr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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