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부모는 왜 소외돼야만 했나

“고작 열아홉에 내 세상이 무너졌다. 내게 새 생명이 찾아왔는데, 삶은 끝난 것 같았다. 아이를 임신해 낳기까지의 시간은 내내 가시밭길 같았다. 용기를 내 한 생명을 책임지기로 결심했지만, 나는 한 아이의 온전한 엄마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내게 문란하다고 손가락질했고, 어린 엄마라며 수군댔다.”

일찍이 부모가 된 서현(가명)씨를 만났다. 서현씨는 행여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까 두렵다며 인터뷰 내내 철저한 익명을 부탁했다. 서현씨네 부부처럼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의 연령이 모두 만 25세 미만인 부부를 청소년 부모라 한다. 임신, 출산, 양육 모든 단계에서, 청소년 부모의 삶은 차별과 소외로 뭉그러져 있다.

 

청소년 부모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청소년 부모가 사회에 처음 가시화된 건 지난 2021년도가 돼서였다. 「청소년복지지원법」이 개정되면서 이들의 실체가 처음 드러났는데, 그 해에 청소년부모지원단체 ‘킹메이커’가 추정한 청소년 부모의 가구 수는 4천 가구에 달했다. 킹메이커 배보은 대표는 “청소년 부모가 정책 대상으로 포함된 지 고작 2년 정도 됐다”며 “그전까지는 사회에 방치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실상은 여전히 정부 통계나 공식 실태조사에서 집계되지 않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상정 연구위원은 “청소년 한부모 가정, 미혼모 가정에 대한 공식 조사 자료는 있지만 청소년 부모를 집계한 자료는 없다”며 “조사 대상자를 잘게 쪼개다 보니, 막상 청소년 부모는 조명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의 부재는 곧 지원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청소년 부모를 대상으로 한 사업을 마련해도 정책 대상자를 발굴하기 어렵고, 예산을 편성하기 힘들다. 이 연구위원은 “청소년 부모를 대상으로 양육비 지원사업이 시행됐었는데, 대상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워 예산이 남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 부모에 대한 통계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결혼을 전제로 꾸려진 법은 다소 편협하기까지 하다. 혼인신고는 하지 못했지만, 아이를 함께 양육하고 있는 사실혼 관계의 부부는 「청소년복지지원법」 상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김민정 대표는 “민법상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은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혼인신고가 가능한데, 대부분의 가족들은 임신 초기 청소년 부모에게 낙태나 입양을 권한다”며 “환영받지 못한 임신에 결혼까지 동의받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청소년 출산율은 1만 건을 넘었는데, 혼인율은 3천700건 정도에 불과했다.

나이 제한도 이들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게 했다. 제도상 청소년 부모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부모의 연령이 ‘모두’ 만 25세 미만이어야 한다. 김 대표는 “부모 중 한 명이 만 25세를 넘었다 해서 정책 대상에서 배제하는 건 많은 이들을 정책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것”이라며 “한 살 더 먹는다고 해서 곧바로 자립 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자녀가 어리면 일터로 뛰어들어 돈을 벌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부부’라는 이유가 되려 청소년 부모에게 제한을 가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부모·청소년 미혼모·한부모 가정에 대한 지원이 모두 상이한데, 이 중에서도 청소년 부모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잦았다고 말한다. 이 연구위원은 “미혼모·한부모 가정에는 이들의 자립 지원을 돕는 정책이 있지만, 청소년 부모에게는 부재하다”며 “이들 중 누가 더 취약한지를 비교해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통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누구도 내 편이 돼주지 않을 때

 

청소년 부모에게 임신은 처음부터 마냥 환영할 만한 소식은 아니다. 서현씨는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너무도 당황스럽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초등교육과 임고운 교수는 “부부가 함께 출산을 계획하고 준비하던 상황에서 찾아온 결과가 아니라, 예기치 않은 사고처럼 닥쳐온 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임신 초창기에 임신 사실을 빠르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청소년 부모도 많다. 임 교수는 “임신 가능성에 대한 교육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설마 임신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신 후에 배가 많이 불러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한 청소년 부모도 많았다”며 “마땅한 주거지, 생활비조차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기치 못한 임신에 청소년 부모들은 원가족과 심각한 갈등을 겪고, 관계를 단절하기까지 한다.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인트리) 최형숙 대표는 “청소년 부모는 ‘네가 부모 역할을 하며 아이를 제대로 양육할 수 있겠느냐’, ‘어쩌다 일찍 사고를 쳐서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만드냐’ 등의 말을 듣는다”고 말했다. 유년기부터 누적된 원가족과의 불안정한 관계가 청소년 부모를 더욱 고립시키기도 한다. 원가족이 청소년 부모가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도록 정서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지원해 줄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청소년 부모 중에는 어린 시절부터 원가족과의 관계가 불안하고 가정환경이 원만치 못한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가정 안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거나, 기대할 수 없는 청소년 부모는 집을 나선다. 그러나 가정 밖에서도 차별은 이어진다. 협성대 사회복지학과 성정현 교수는 “청소년 부모는 ‘아이를 입양 보내라’, ‘낙태해라’, ‘어떻게 키우려고 하냐’는 등의 이야기를 병원에서도 접한다”며 “부모로서의 정체성을 무시당하고 가정에서 나왔는데, 사회에서도, 심지어 전문가마저 자신을 그렇게 대하면 굉장히 큰 상처를 받는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청소년 부모에 대한 불신은 이들을 사회적 일탈자로 바라보는 낙인과 폄훼 의식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청소년 부부가 부모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준비해나가는 것을 사회가 제대로 돕지 못하고 있다. 

 

집도 없이, 아이를 키워야 한다

 

차별과 낙인은 청소년 부모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킨다. 이른 나이에 임신과 출산을 겪지만, 마음 편히 기댈 곳도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청소년 부모들은 마땅한 거주지를 찾지 못한 채 거리 위, 모텔, 쪽방촌 등지를 전전한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자녀를 안정적으로 양육하려면 적정한 주거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소년 부모는 시설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 청소년 한부모 시설의 공실률이 80%에 달하지만, 이들은 ‘한부모’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땅한 주거지가 없으면,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도 없다. 배 대표는 “정부 지원은 주소지를 기반으로 이뤄진다”며 “주거지가 없으면 사업 대상자로 선정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관계가 단절된 원가족 부모의 소득이 산정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직장이 없고 소득도 없는 청소년 부모는 제1금융권의 대출조차 불가능하다. 임 교수는 “청소년 부모에게 제3, 4금융권의 유혹이 많이 주어지는 것도 문제”라며 “집을 구하려면 어느 정도 규모의 돈이 필요한데 사회에서 내주는 길이 제3, 4금융권 대출밖에 없으니 여기에 손이 닿을 수밖에 없어 신용불량자가 되기 쉽다”고 말했다.

아이를 어떻게 길러내야 할지도 막막하다. 자녀 양육에 대한 정보를 나눌 사회적 지지와 인적 자원이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서현씨는 “아이를 낳았는데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며 “산후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가 아플 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유식은 뭘 먹여야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어려웠다”고 말했다.

임신기 청소년 부모에 대한 지원 자체가 부족하기도 하다. 배 대표는 “현재 청소년 부모가 받을 수 있는 지원은 임신 및 출산에 대한 의료비 지원뿐이라 매우 미미하다”며 “실제 안전을 위해 주거, 생계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임신 초기부터 청소년 부모를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김 대표는 “임신 초기에 안정적인 환경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며 아이와 애착 관계가 형성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며 “청소년 부모가 주눅 들지 않고, 스스로 내린 결정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이 흘러도, 
차별과 낙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청소년 부모는 시간이 흘러 청년 부모가 된다. 청소년 부모는 아이의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부모이기도 하지만, 아직 스스로 완수해야 할 삶의 과제가 남은 돌봄의 대상이기도 하다. 학업, 취업을 출산과 양육으로 마치지 못한 이들은 청년기에 다다라도 자립하기 어렵다. 임 교수는 “청소년 부모 중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거의 없다”며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겨우 마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출산을 선택한 청소년 부모는 자녀를 돌보기 위해 학교를 그만둬야 한다. 임 교수는 “당장 자녀와 함께 먹고 살 수 있는 집을 구하고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기에 대학 진학을 고려하고 있거나 다니고 있었더라도 학업을 포기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주변 시선에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최 대표는 “임신하면 학교를 그만둬야 한다는 암묵적인 압박에 짓눌린다”며 “공부해야 하는 학생이 어린 나이에 부정을 저질렀다는 시선이 만연하고, 선생님들조차 ‘너 학교 다닐 수 있겠냐’, ‘대안학교에 가라고 권유한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조차 하지 못한 이들이 사회에서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매우 협소하다. 자녀 양육과 병행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니 근무 시간의 제한도 있다. 임 교수는 “청소년 부모들이 구할 수 있는 직업은 제한적”이라며 “여성은 식당 홀서빙, 콜센터 직원, 남성은 건설노동 일용직, 배달 알바 등이 많다”고 말했다.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현실적인 부담이 취업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게 해 이들을 불안정한 노동자로 내몰기도 한다. 성 교수는 “이는 청소년 부모를 빠져나오기 힘든 빈곤의 늪에 가두는 것”이라며 “청소년 부모가 돌봄과 자립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돌봄·학업 및 취업 지원 제도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매년 25세 미만의 여성에게서 8천 명 이상의 아이가 태어나고 있다. 청소년 부모는 스스로 ‘부모’이기를 ‘선택’했다. 그러나 차가운 시선과 제도의 부재는 청소년 부모를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 임 교수는 “자녀를 낳기로 결정하고 부모의 역할을 해보려는 이들을 격려하고 함께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 부모에게 일탈자라는 시선을 겨누기보다 그 선택을 신뢰하며 지지해 주는 사회적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글 김혜진 기자
socio_queen@yonsei.ac.kr

<그림 노태린>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