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기념도서관에서 한강 작가 북콘서트 열려

지난 16일, 언더우드기념도서관 7층 국제회의실에서 한강 작가 북콘서트가 열렸다. 한 작가의 2021년 작 『작별하지 않는다』를 주제로 열린 이번 북콘서트는 두 시간가량 진행됐다. 한 작가는 우리대학교 국문학과 89학번으로,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붉은 닻』으로 등단해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을 썼다. 한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로 한국 작가 최초 프랑스 메디치상* 외국문학상을 수상했다.

 

꿈, 묘비, 눈, 4.3 사건…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렇게 탄생했다

 

한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구상하게 된 계기를 밝히며 북콘서트의 시작을 알렸다. 한 작가는 지난 2014년 5월 『소년이 온다』를 발표하고 나서 꾼 꿈이 『작별하지 않는다』의 단초가 됐다고 밝혔다. 책의 첫 두 페이지 내용이 실제로 한 작가가 당시 꿨던 꿈이었다. 한 작가는 도입부를 낭독하며 “이 꿈이 나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이 이야기에서 더 진척된 소설을 언젠가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처럼 조금씩 다른 키에, 철길 침목 정도의 굵기를 가진 나무들이었다. 하지만 침목처럼 곧지 않고 조금씩 기울거나 휘어 있어서, 마치 수천 명의 남녀들과 야윈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 같았다.
묘비가 여기 있었나. 나는 생각했다.
이 나무들이 다 묘비인가.

『작별하지 않는다』 中

 

꿈을 꾼 이후 한 작가가 소설을 빠르게 구상해낸 것은 아니었다. 한 작가는 이후 거의 3~4년 정도를 ‘꿈’ 다음이 뭘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떠난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한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제목을 생각해 냈다. 한 작가는 “아이슬란드 한 묘지에서 발견한 묘비에 맞잡은 두 손이 새겨져 있었다”며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의 손을 맞잡고 있는 듯한 이미지를 보고 문득 ‘작별하지 않는구나’라는 문장이 떠올랐다”고 밝혔다. 이어 “그 꿈에 이어서 쓰게 될 소설의 제목이 ‘작별하지 않는다’가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지난 2018년이 돼서야 『작별하지 않는다』의 윤곽을 그리게 됐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1948년에 시작된 제주 4.3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한 작가는 “인류가 아주 오랜 역사에 걸쳐 반복적으로 저지르는 제노사이드**에 대해 고민하며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런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더듬어 가고 싶었다”고 전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눈’이라는 소재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한 작가는 “4.3 사건은 아주 무겁고, 고통스러운 주제이지만 이야기를 가능한 한 가볍고 부드러운 것들로 그리고 싶었다”며 “눈의 부드러움, 차가움, 가벼움 등을 소설의 중요한 감각으로 묘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작별하지 않는다』가 역사적 사건을 다룬 소설인 만큼 자료 수집도 중요했다. 한 작가는 소설을 준비하면서 읽었던 자료를 소개했다. 제주 로컬 잡지 『iiin』부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 등 여러 책 일부를 발췌해 함께 읽었다. 그중 한 작가는 『아카이브 취향』의 한 구절을 읽으며 “역사를 다루는 것 자체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 들여다보는 일이고, 현재의 대화에 참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역사를 써야 하는 이유는 죽은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은 과거를 이야기할 어법을 찾아내 살아있는 존재들 사이의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아카이브 취향』 中

 

한 작가는 콘서트 말미에서야 ‘작별하지 않는다’는 말의 두 가지 의미에 대해 밝혔다. 한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별을 고하지도, 행하지도 않겠다는 뜻”이라며 “애도를 멈추지 않고, 결코 끝내지 않겠다는 결의인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지난 9년 정도 역사적 사건을 다뤘기에 앞으로는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는 글을 쓰지 않을 것”이라며 “‘순간주의적’인 삶을 살며 순간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밝혔다.

 

 

글 김대권 기자
bodo_shyboy@yonsei.ac.kr

<사진제공 언더우드기념도서관>

 

* 메디치상: 공쿠르상, 르노도상, 페미나상과 함께 프랑스 4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 제노사이드: 특정 집단 구성원을 절멸시키기 위해 행하는 집단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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