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를 살펴보다

지난 2020년 웹소설 작가 A씨가 헌법재판소(아래 헌재)에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22조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습니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22조는 도서 등 간행물의 판매·할인율을 제한하는, 일명 도서정가제를 규정한 법률입니다. A씨는 도서정가제로 도서 시장이 위축됐으며, 직업적 자유와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2023년 7월, 헌재는 도서정가제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 합헌 판결을 내렸습니다. 도서정가제가 지나친 가격경쟁을 방지하고, 독자의 도서 접근권을 확대하며 출판 문화산업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책을 더 싸게 살 수 없다고?

 

도서정가제는 서점 간 과도한 가격경쟁을 막고 소규모 자본으로 운영되는 동네 서점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해, 출판 시장이 위축되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지난 2003년부터 시행됐습니다. 초기 도서정가제는 발매 직후 12개월간만 도서의 할인율을 규제하고, 그 이후에는 판매 서점이 재량껏 가격을 결정할 수 있게 했습니다. 초기 도서정가제의 규제 대상은 온라인 서점뿐이었습니다. 정부는 온라인에서 도서를 구매하면 할인이 최대 10%까지만 가능하도록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2005년부터 온라인 서점 사이에서는 도서정가제의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규제 대상에 오프라인 서점을 포함하지 않는 것이 부당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온라인 서점 측은 2005년 ‘출판·저작자 공동 성명’에서 도서정가제의 개정을 촉구하며 “인터넷 서점에만 신간의 할인율을 규정하는 것은 차별적이고 시장 질서를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주장했습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지난 2007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도서정가제에 대한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처음 이뤄진 2007년 개정에서는 적용 대상이 오프라인 서점으로 확대됐고, 적용 기간도 6개월 늘어 18개월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대형 서점 위주의 출판업계에서 도서정가제를 강화해 출판 시장을 더욱 안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자 2014년에 추가적인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그 결과 18개월이었던 할인 규제 기간 조항이 아예 삭제돼 10%를 초과하는 할인이 영구적으로 불가능해졌습니다. 대신 18개월이 지나면 해당 도서의 ‘정가’를 조정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정가 조정은 할인율 조정보다 어렵습니다. 정가는 발간 당시 도서에 명시해 둬야 하고, 이를 변경하려면 발간된 도서를 전부 회수해 수정해야 합니다. 동일한 책을 판매처에 따라 다른 정가로 판매하는 것 역시 허용하지 않기에, 정가 조정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 지난 2023년 7월 28일 헌법재판소가 도서정가제 합헌 결정을 내린 가운데,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형 서점에 책이 진열돼 있다.
▶▶ 지난 2023년 7월 28일 헌법재판소가 도서정가제 합헌 결정을 내린 가운데,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형 서점에 책이 진열돼 있다.

 

도서정가제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선

 

도서정가제에 대한 논란은 꾸준했습니다. 지난 2011년에는 출판사 협회 연합이 도서정가제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고, 2019년에는 도서정가제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 올라와 20만 명이 넘게 동의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공약으로 도서정가제 개혁을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도서정가제에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은 출판계의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대형 서점 ▲독립서점 ▲전자책 출판사 ▲소비자 모두 도서정가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대형 서점은 도서정가제가 출판 산업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이들은 도서정가제로 가격 할인율이 제한되면, 서점 간 과도한 가격경쟁이 사라져 도서 공급률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6대 대형 서점이 공개한 재무제표에 따르면, 도서정가제 시행 후인 지난 2014년부터 대형 서점의 매출 합계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2년 9천349억 원으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이처럼 대형 서점은 도서정가제로 도서 공급률이 안정되면 판매율이 높아져 매출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입니다.

독립서점은 기존 베스트셀러 중심의 시장에서 도서정가제로 다양한 종류의 책을 판매할 수 있어 좋다는 입장입니다. 이들은 도서정가제를 시행하지 않았다면, 대형 서점과의 가격경쟁에서 독립서점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2020년 도서정가제 개선을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종복 회장은 “도서정가제는 온라인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는 현 구조에서 독립서점이 버틸 수 있도록 해주는 정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3월 책과사회연구소에서 발표한 ‘도서정가제 영향 평가 및 개선방향연구 주요 결과 발표’(아래 도서정가제 발표)에 따르면 독립서점 수도 2014년과 비교했을 때 97곳에서 745곳으로 7배 넘게 늘어났습니다. 3월에 이뤄진 도서정가제 개선 방향 공개토론회에서 책과사회연구소 백원근 대표는 “독립서점이 생존함으로써, 출판문화의 다양성이 확대되고 도서 접근성도 증대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e-book 등 전자책 출판사는 전자책 시장에 맞는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공개토론회에 따르면 전자책 사업자의 72%가 현행 도서정가제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도서정가제가 전자책 시장의 자유로운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자책 시장은 종이책 시장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저렴하게 거래할 수 있고 가격을 유연하게 조정하기 쉽습니다. 또한 전자책은 짧은 시간 내에 읽을 수 있는 킬링타임용 콘텐츠가 많기 때문에 다양한 할인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를 유입해야 합니다. 헌법소원을 청구한 A씨는 “도서정가제로 인해 전자책 업계는 다양한 마케팅을 시도할 기회를 차단당한다”며 도서정가제에서 전자책 시장을 제외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동안 전자책 업계는 30년이나 90년 같은 장기 대여 형식으로 전자책을 제공했습니다. 사실상 영구 소장에 가까운 형태이지만, 대여 형태면 도서정가제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난 2018년 출판업계에서 ‘건전한 출판유통 발전을 위한 출판·유통업계 자율협약’(아래 자율협약)을 시행하며 장기 대여는 불가능해졌습니다. 자율협약에 따라 전자책의 대여 기간이 최대 90일로 제한됐기 때문입니다. 전자책 업계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도서정가제의 적용을 피할 수 없게 돼 불만을 표했습니다.
이에 전자책을 도서정가제의 예외 품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실물 도서를 소유하는 종이책과 달리, 전자책은 플랫폼이 사라질 경우 소비자가 다시 볼 방법이 없습니다. 도서정가제 개선 방향 공개토론회에서 웹툰랩 성대훈 소장은 “현 도서정가제는 종이책을 바탕으로 한 제도”라며 “전자책만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도서정가제에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소비자도 다수 있습니다. 지난 1월 ‘도서정가제 적용 예외’를 주제로 대통령실에서 주관한 제1차 국민참여토론에서는 참가자 3천 명 중 2천188명이 도서정가제의 변경 및 할인 판매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 찬성했습니다. 그 이유에는 가격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초기 도서정가제 시행 당시에는 구매하고 싶은 신간 도서가 비쌀 경우, 18개월을 기다리면 할인을 받아 저렴한 값으로 책을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정된 도서정가제로 이러한 기다림도 불가능해졌습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22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책 평균 가격은 2021년 대비 4.2% 올랐습니다. 소비자정책 감시단체 컨슈머워치는 7월, 도서정가제 합헌 결정에 “도서정가제는 가격통제로 서점과 출판사 간의 경쟁 유인을 없앤다”며 “소수 플랫폼 도서 판매업자의 시장 지배력만 공고해져 소비자의 선택권을 저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도서정가제, 출판 업계의 미래를 위해서는

 

도서정가제가 안정적인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새롭게 등장한 전자출판 업계와 상대적 약자인 독립서점을 고려한 복합적인 시각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웹툰 등 웹콘텐츠 업계는 새롭게 등장한 콘텐츠라는 특수성을 인정받아 도서정가제의 적용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도서정가제의 합헌 판결로 웹콘텐츠도 도서정가제의 적용을 받게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웹콘텐츠 시장에도 도서정가제가 지금처럼 일률적으로 적용된다면, 디지털 콘텐츠의 성장이 과도하게 저해될 수 있다는 주장이 존재합니다. 지난 4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웹툰 분야 UCI 표준식별체계 도입 및 활용 기초연구’에서는 “도서정가제가 디지털로 창작해 소비하는 웹콘텐츠의 다양한 마케팅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며 “웹콘텐츠를 도서정가제의 예외로 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도서정가제가 대형 서점으로부터 독립서점을 온전히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독립서점은 유통 구조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듭니다. 1인출판협동조합 박옥균 이사장은 “독립서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류 기업들의 독과점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며 도서정가제가 아닌, 독립서점을 보호할 수 있는 근본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출판사는 거래 물량이 많은 대형 서점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책을 공급합니다. 거래 물량이 적은 독립서점은 출판사에서 도매상을 거쳐 책을 공급받습니다. 이 때문에 대형 서점에 비해 마진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는 “도서정가제처럼 도서의 할인율 제한에만 집중하는 정책보다, 도서 자체를 처음부터 적절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위해 도서 공급 가격을 동일하게 규정하는 ‘완전 도서정가제’가 해결 방안으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지난 2019년 한국출판연구소가 실시한 ‘도서정가제 이해관계자 설문조사’ 결과 완전 도서정가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58.7%로 반대 의견보다 3배 가까이 많았습니다. 특히 독립서점 측은 완전 도서정가제가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거품을 없앨 수 있어 차별적인 도서 시장의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도서정가제는 출판 시장의 균형을 위해 필요한 제도입니다. 하지만 아직 개선할 점이 많습니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는 3년마다 도서정가제 유지의 타당성을 재검토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정부의 도서정가제 재검토 기한은 오는 11월입니다. 합헌 판결을 받은 도서정가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요. 

 

 

글·사진 오혜연 기자
socio_quokk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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