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랙, 고정관념을 부수고 사회를 유연하게 만들다

지난 9월 23일 토요일 새벽 1시, 이태원의 한 클럽은 드랙(Drag)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가득 찼다. 드랙은 전통적인 성별 구분에서 벗어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모습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퍼포먼스다. 대중문화 비평가 이연숙 작가는 “드랙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고정관념을 부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남자가 여장을 하거나, 여자가 남장을 한 채 무대에 서는 것이 대표적이다. 드랙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직접 현장에 방문했다.

 

현장에서 본
드랙 공연

 

▶▶ 드랙 아티스트 캼이 드랙쇼를 펼치고 있다. 공연에 사용된 소품과 무대 조명 모두 캼이 직접 준비했다.
▶▶ 드랙 아티스트 캼이 드랙쇼를 펼치고 있다. 공연에 사용된 소품과 무대 조명 모두 캼이 직접 준비했다.

 

새벽 1시가 되자 네 명의 드랙 아티스트들이 차례로 무대 위에 등장했다.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른 드랙 아티스트 ‘캼’은 가수 김연자의 노래 「아모르 파티」를 재해석한 공연을 펼쳤다. 관객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함께 즐기면서 캼의 이름을 연호하거나, 의상이 화려하다며 감탄하기도 했다. 그날 무대에 오른 드랙 아티스트들은 모두 성인 남성이지만, 공연을 위해 짧은 치마를 입고 긴 머리 가발을 착용했다. 관객 김지선(25)씨는 “기대 이상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공연이었다”며 “드랙 아티스트들의 표정과 역동적인 제스처를 보며 에너지를 얻었다”고 말했다.

공연장은 무대 단상 높이가 낮았고, 무대와 객석 사이 거리도 1m가 채 되지 않았다. 관객들은 공연 중인 드랙 아티스트와 대화를 주고받거나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관객 A(31)씨는 “드랙 아티스트들이 객석에 와 먼저 말을 건넸다”며 “의상이나 소품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직접 이야기 나눠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소수의 하위문화로 분류되던 드랙은 최근 대중에 노출되는 빈도가 잦아졌다. 시즌 5까지 제작된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가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얻거나, 공중파 방송에 드랙 아티스트가 소개된 것이 그 예다. 이 비평가는 “힙합이 그랬듯, 소수의 문화를 대중이 향유하게 된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며 “우리 사회가 성 소수자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A씨 역시 “유튜브를 통해 드랙을 처음 접한 뒤, 이태원에서 공연을 한다길래 통영에서부터 올라왔다”며 “기회가 된다면 또 보고 싶다”고 말했다. 공연을 즐기러 온 또다른 관객 배주원(26)씨는 “공연을 보기 전에는 여장 퍼포먼스에 거부감이 들까봐 걱정했으나 노래가 시작되자 공연에 완전히 빠져들었다”며 “소수만의 문화라거나 나와 다른 사람들이라는 편견은 사라지고, 재미있는 공연이라는 생각만 남았다”고 말했다.

 

낯설고도 흥미로운 드랙,
단순히 소비하지 않으려면

 

성별의 경계를 넘나드는 드랙 문화는 기성 질서에 억눌려 있던 욕망을 일시적으로 해소해 줄 수 있다. 한보희 교수(사과대·문화인류학)는 “신체 구조상 남성으로 분류되지만 화려하게 꾸미기를 좋아하고, 여성적인 의상 착의를 원하는 개인도 있다”며 “이들은 본인의 욕구를 표출할 수 없는 사회 질서를 마주했을 때 굉장한 혼란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드랙 문화는 욕구를 억누르고 있던 개인에게 해방감을 줄 수 있다. 사회적 시선으로 인해 치마를 입고 일상을 보내는 데 주저하는 남성도 드랙 공연장 무대 위에서는 자유롭게 입고 꾸밀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현실 공간에서 성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공유하기란 어렵지만, 드랙은 이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남자가 여장하거나 여자가 남장하는 것이 새롭게 등장한 문화 현상은 아니다. 일본의 가부키, 중국의 경극처럼 과거 문화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비평가는 “과거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었지만, 최근 들어 드랙이 유독 각광받고 있다”며 “드랙의 화려한 시각적 요소가 콘텐츠로 제작하기 좋고, 대중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중들이 드랙을 주목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단순히 구경거리로만 소비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드랙 문화를 향한 관심이 커지면서 부작용도 생겨났다. 드랙 문화에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내거나 이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드랙 아티스트 ‘나나 영롱킴’은 퀴어 퍼레이드에서 공연을 마친 뒤 행인으로부터 설사약을 탄 생수통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교수는 “성을 생물학적인 것(sex)과 사회적인 것(gender)으로 구분하기 시작했지만, 우리 사회가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비평가는 “드랙 문화에 적대적인 사람들의 생각이 주류 의견이 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춤추고 노래하는 게 재밌어서”
 드랙아티스트 캼을 만나다

 

▶▶ 캼이 행사 진행자로 무대에 섰다. 캼은 트랜스젠더 공연 기획자, 행사 진행자, 댄서 등으로 다양한 활약을 하고 있다.
▶▶ 캼이 행사 진행자로 무대에 섰다. 캼은 트랜스젠더 공연 기획자, 행사 진행자, 댄서 등으로 다양한 활약을 하고 있다.

 

Q. 최근 들어 드랙을 향한 대중의 관심이 커졌다. 인기를 실감하는가.

A. 여러 드랙 아티스트들이 방송에 출연하고, 드랙 콘텐츠가 제작되다 보니 이전보다 섭외 연락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SNS에 공연 영상을 올리면 전보다 반응이 좋다. 인기까지는 아니고, 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 주시는 점은 감사하게 생각한다(웃음).

 

Q. 본인이 생각하는 드랙이란 무엇인가.

A. ‘모든 구분’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남자는 이래야 돼, 여자는 이래야 돼’ 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표현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문화다. 드랙을 흔히 ‘남자가 여장한 채로 노래하는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드랙은 단순히 여장한 남자들의 공연이 아니다. 짙은 화장을 하고 가슴에 보형물을 넣는 것 역시 여장이라서 하는 게 아니다. ‘누구든 그런 차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공연의 재미를 위해 가미한 극적 요소다. 무대에서 ‘티가 나는 립싱크’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노래를 직접 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유롭게 표현한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Q. 드랙 공연의 준비 과정이 궁금하다.

A. 드랙 공연은 정해진 틀이 없다. 선곡부터 어떤 안무를 선보일지, 어떤 색의 조명을 쓸지 모두 내가 정한다. 화장도 직접하고, 의상과 가발 등 소품도 직접 제작한다. 원작자 무대를 보고 의상이나 소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있고, 원하는 대로 새롭게 만들기도 한다. 공연 방식이 자유롭다 보니, 그날 공연장 현장 분위기를 보고 곡을 즉석에서 바꾸기도 한다. 첫 순서로 무대에 올라야 할 때면, 공연장 분위기를 띄우고자 김연자의 「아모르파티」처럼 박자가 빠르고 신나는 노래를 선택하는 편이다.

 

Q. 주로 어떤 관객들이 찾아오나.

A. 과거에는 아는 사람들만 찾는 공연이었지만, 최근에는 미디어를 통해 드랙을 접하고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이 늘어났다. 공연장이 전국에 몇 군데 없다 보니, 지방에서 공연을 보고자 서울로 오는 경우도 있다. 제주도에서 오는 관객들도 있었다.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러 오는 관객도 꽤 있다. 이들은 남자인데 여자처럼 꾸미기를 좋아하는 본인 모습에 혼란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한다. 트렌스젠더 공연 기획자로 일하다 보니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봤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는 선에서 조언하며 도움을 주려고 한다.

 

Q. 우리 사회는 드랙을 ‘성 소수자의 문화’로 보는 것 같다. 이런 인식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A. 다양한 사람들이 즐긴다. 드랙은 ‘누구만의’ 문화가 아니라 ‘누구든 즐길 수 있는’ 문화다. 대중들이 드랙을 즐길 때 ‘어떤 성격의 공연인지’를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공연 그 자체로 재밌게 즐겨주셨으면 한다.

 

이 비평가는 “개인을 어떤 존재로 규정하면 우리 사회는 그에 걸맞은 행위를 기대하게 된다”고 말했다. 남자나 여자와 같이 이중적인 잣대에 맞춰 개인을 규정하는 순간, 개인은 ‘남자다움’이나 ‘여자다움’에 갇히게 된다는 의미이다. 드랙은 기성 질서에 따른 기대를 부수고 유연한 태도를 갖게 한다. 드랙 아티스트들의 자유로운 표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은 보다 유연한 사회를 위한 시작이 될 것이다. 

 

 

 최은지 기자
socio_king@yonsei.ac.kr

<사진제공 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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