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묻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관리는 필요합니다

안전한 도시는 시민들의 건강한 삶을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하지만 도시 곳곳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공사가 중단된 건축물이 철골을 드러낸 채 위험천만하게 방치돼 있습니다. 노후화된 상하수도관이 터져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기자는 2주에 걸쳐 도시 안전을 진단해 보려 합니다. 지난주 ‘지상’의 안전을 다룬 데 이어, 이번 주는 ‘지하’의 안전을 다뤄보겠습니다. <기자주>

 

지하시설물이란 상하수도, 전력시설물, 전기통신설비, 가스공급시설, 열 공급시설, 공동구와 같이 지하 공간에 설치된 시설물을 말한다. 지난 2018년 지하정보활용지원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전국 지하시설물의 총길이는 45만 5천159km에 달했다. ㈜지오매직 소속 ‘측량및지형공간정보’ 김은경 기술사는 “매설된 지하시설물 대부분이 전기, 통신, 수도와 같은 사회 기반 시설”이라며 “지하시설물과 관련된 사고는 사회적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지하를 안전하게 개발하고 활용하고 있을까?

 

주요 시설 묻혀있는 지하,
중요성에 비해 관리는 미흡해

 

전선이나 가스관 같은 시설을 지하에 설치하면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을뿐더러, 낙뢰 등을 피할 수 있어 유지 및 관리가 용이하다. 이재민 교수(공과대·도시공학)는 “지상 공간을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보니 도시 고밀화 문제를 해소하고자 지하 공간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하시설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을 경우, 사회에 치명적인 피해를 끼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11월 24일 KT 아현지사 건물 지하 통신구에서 발생한 사고는 지하시설물의 미흡한 관리 실태를 여실히 보여줬다. 통신구에 화재가 발생했지만, 당시 지하시설물을 파악할 수 있는 지도가 없어 화재 진압이 빠르게 이뤄지지 못했다. 또한 인근 지역 통신이 마비돼 시민들은 한동안 불편을 겪어야 했다.

미흡한 지하시설물 관리는 지반침하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상하수도관이 적절한 주기에 교체되지 않으면 관이 노후돼 누수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주변 지반이 약해져 도로가 가라앉거나 다른 지하시설물이 손상되는 등 2차 피해가 생길 수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22년 발생한 지반침하 사고 177건 중 상하수도관 손상으로 인한 사고가 82건으로 전체 46%였다. 원광대 공유협업지원센터 윤원섭 센터장은 “지반침하 사고가 발생하면, 도로를 지나던 차량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노후관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의 초기 도면이 소실되거나 일부 자료가 누락돼 몇몇 상하수도관은 위치 파악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 굴착 공사 중 광케이블이 손상될 것을 우려해 보도블럭 위에 표시된 안내 원형판. 사업자가 10m 미만 규모의 굴착 공사를 진행할 때는 지하시설물 정보를 얻기 위해 각 기관에 일일이 연락하거나, 이와 같은 표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 굴착 공사 중 광케이블이 손상될 것을 우려해 보도블럭 위에 표시된 안내 원형판. 사업자가 10m 미만 규모의 굴착 공사를 진행할 때는 지하시설물 정보를 얻기 위해 각 기관에 일일이 연락하거나, 이와 같은 표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하공간통합지도 
제작은 했지만…

 

지하시설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6년 ‘지하 안전사고 없는 스마트한 국토 실현’을 국정 과제로 제시하고, 「지하안전관리특별법」(아래 지하안전법)을 제정했다. 해당 법안은 지하공간통합지도 구축과 지하안전영향평가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다. 이에 지난 2018년 국토교통부 소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지하공간통합지도(아래 통합지도)를 제작했다. 현재 가스관은 한국가스공사, 열 수송관은 지역난방공사, 전력관은 한국전력공사가 관리하고 있다. 통합지도는 여러 기관에 산재한 지하시설물 정보를 모아 지하개발 사업자에게 제공하고, 지하 사고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구축됐다.

하지만 통합지도에 불탐 지역*이 존재해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장용구 센터장은 “불탐 지역은 지도의 정확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며 “탐사 장비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생긴 문제”라고 말했다. 과거 주로 사용하던 탐사 장비 MPL은 금속 재질의 관만 탐지할 수 있었다. 그 탓에 비금속 관이 지나는 경우 MPL이 탐지하지 못해 불탐 지역으로 표기한다. 최근 비금속 관도 탐지할 수 있는 탐사장비 GPR이 도입돼 정확도 개선에 속도가 붙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 지하안전영향평가 전문기관 셀파이엔씨 이기석 연구소장은 “GPR 장비 역시 해상도나 속도 측면에서 부족함이 있다”며 “계속해서 첨단 지하시설물 탐사 장비를 개발할 수 있도록 정부 예산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 센터장은 “통합지도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는 2000년대 이전에 설치된 지하시설물 정보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설치된 지하시설물은 실측 의무가 없어 관이 지나가는 경로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고, 도면에 일직선으로 그어 기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라며 “이 경우 정보를 활용할 수 없어 새롭게 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가 모든 지하시설물을 직접 탐사할 수 없다 보니 정보 수집에 어려움이 있다. 국토교통부 소관 탐사 조사는 국토교통부가 자체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담당하는 통신이나 산업통상자원부가 담당하는 가스와 같이 타 부서가 관리하는 지하시설물은 담당 기관에 지하시설물 탐사를 요청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김 기술사는 “탐사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다 보니 담당 기관이 난색을 표한다”며 “쉽사리 협조해 주지 않아 지하시설물 정보 수집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 3D 지하공간통합지도의 화면. 지하시설물과 지하구조물의 정보를 담고 있지만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 3D 지하공간통합지도의 화면. 지하시설물과 지하구조물의 정보를 담고 있지만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현재 통합지도는 2D와 3D 두 종류가 있다. 그러나 국가공간정보 보안관리 지침에 따라 지하개발 사업자는 2D 통합지도만 열람할 수 있다. 3D 통합지도는 전기, 통신, 가스 등 공공의 이익이나 안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정보를 담고 있어 민간에 공개하는 것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김 기술사는 “2D 통합지도는 입체감이 떨어져 현장에서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장 센터장은 “3D 통합지도의 필요성이 상당한 만큼 관련 보안관리규정 개정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지도에 대한 접근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통합지도는 10m 이상 규모의 굴착 공사를 진행하는 지하개발 사업자만 열람할 수 있다. 그러나 지하시설물 대부분은 10m 이내에 있다. 실제로 7개 지하시설물 중 심도 10m 이상에 매설된 시설물은 하수도와 공동구뿐이다. 윤 센터장은 “10m 이내 굴착 공사를 진행하는 사업자는 통합지도를 열람할 수 없다 보니 각 기관에 일일이 연락해 지하시설물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센터장은 “현재 10m를 기준으로 제시한 것은, 지하안전법 제정 초기 건설 분야의 기준을 따라 한 것”이라며 “별도의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하안전영향평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나

 

「지하안전법」 제2조에 따라 10m 이상 규모의 도로를 굴착하거나 지하 건설 사업을 시행할 때는 지하안전영향평가(아래 안전평가)를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이에 따라 사업 부지의 지반을 조사하고, 안전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러나 안전평가 항목 중 지반조사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센터장은 “현재는 명확한 기준 없이 일부 구간에 대해서만 지반 조사를 진행한다”며 “꼼꼼한 조사를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전평가의 하나로 공사 후에도 주기적으로 지하시설물 안전 점검을 실시하고, 점검 결과를 공유해야 한다. 하지만 김 기술사는 “현재 안전 점검 여부와 결과가 공유되지 않아 한 시설물을 여러 번 점검하기도 한다”며 “인력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윤 센터장은 “안전 점검 결과에 대한 정보 공유가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지하시설물 안전평가는 지하개발사업자가 업체를 선정해 자체적으로 진행한다. 하지만 지난 2020년 국정감사에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지하개발사업자가 진행하는 안전평가의 신뢰도를 지적한 바 있다. 국토교통부는 평가 결과만 살펴볼 수 있을 뿐, 평가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 센터장은 “평가 업체가 평가를 의뢰하고 비용을 지불한 사업자 편에서 안전평가 결과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며 “측정된 데이터를 국토교통부가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하시설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사회적 재난으로 이어져 시민들에게 막대한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 지난 2018년 지하안전법이 제정돼 관리 체계가 마련됐으나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윤 센터장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지속해서 지하시설물을 관리하고 관련 기술 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최은지 기자
socio_king@yonsei.ac.kr
 

 

* 불탐 지역: 현재 탐사 장비로 파악할 수 없어 통합지도 상 ‘탐사할 수 없다’고 표기한 채로 두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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