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철 객원교수(우리대학교 문과대학/한국사상사학회장)
조경철 객원교수(우리대학교 문과대학/한국사상사학회장)

 

남의 ‘대한민국’과 북의 ‘조선’이 통일되면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남쪽은 대한민국을 선호할 것이고 북쪽은 조선을 선호할 것입니다. 어쩌면 대한민국과 조선이 아닌 새로운 이름이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통일한국의 나라 이름을 정하기에 앞서 과거 우리나라는 어떻게 나라의 이름을 지었나 살펴보겠습니다. 고조선부터 대한민국까지 많은 이름이 있었는데 한 가지 특징이 보입니다. 똑같은 나라 이름을 여러 번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나라 이름 가운데 한 번만 사용된 경우는 신라, 가야, 마진, 태봉, 발해 다섯 가지 정도입니다. 두 번 사용된 나라 이름은 부여와 남부여, 백제와 후백제 뿐입니다. 고구려와 후고구려는 여기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뒤에 서술됩니다.

그럼, 가장 많이 다시 사용한 나라 이름은 어느 나라일까요. ‘조선’일까요, ‘고려’일까요, ‘한’일까요. 조선이란 나라 이름을 맨 처음 사용한 것은 단군의 고조선입니다. 고조선의 ‘고’는 왜 붙였을까요. 이성계의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서 ‘고’를 붙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고조선’이란 나라 이름은 고려시대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이성계의 조선이 건국되기도 전입니다. 고려시대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조선은 단군의 조선, 기자의 조선, 위만의 조선까지 모두 세 조선이 있었습니다. 고조선은 바로 가장 오래된 단군조선을 말합니다. 

이성계는 나라를 세운 후 나라 이름을 다시 조선으로 정했습니다. 지금은 북한이 ‘조선’이란 나라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선이란 나라 이름은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이성계의 조선, 지금 북쪽의 조선을 포함해서 총 다섯 번 사용됐습니다.

고려란 나라 이름은 어떨까요. ‘고려’는 왕건이 세운 ‘고려’에서 한번만 사용된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궁예가 세운 나라도 고려입니다. 궁예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뜻으로 후고구려를 건국했다고 알고 있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역사적 사실과 다릅니다. 궁예가 세운 나라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모두 ‘고려’라고 했습니다. 왕건보다 먼저 궁예가 고려란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궁예는 왜 다시 고구려를 세우지 않고 고려를 세웠을까요. 그것은 고구려가 4~5세기 나라 이름을 고려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국호를 바꿨다고 보지 않는 연구자도 많지만, 4~5세기 이후 고구려보다 고려란 나라 이름을 더 많이 사용한 사실은 이들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망할 때 이름이 고려였기 때문에 궁예는 이를 계승한다는 취지로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했습니다. 정식 국호는 아니지만 발해도 ‘고려’란 나라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고려는 총 네 번입니다. 대한민국의 영문 국호인 ‘Korea’까지 합친다면 총 다섯 번 이네요.

왕건의 고려시대 사람들은 고구려의 고려를 전고려라고 부르고 궁예의 고려를 후고려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흔히 후고구려라고 부르는데 이 이름은 『삼국사기』는 물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쓰여진 적이 없습니다. ‘후고구려’는 20세기에 들어와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궁예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대한이란 나라 이름은 몇 번 사용됐을까요.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나라 이름을 바꿀 때 ‘대한’이란 나라 이름은 옛 ‘삼한’에서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삼한은 남부지역을 한정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앞에 ‘대’를 붙여 한반도 전체를 의미하는 의미를 담았던 것 같습니다. 대한제국은 망했지만 대한이란 나라 이름은 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나라 이름으로 다시 사용되었고 해방이후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계속 사용됐습니다. 한은 모두 네 번 사용된 나라 이름입니다. 

우리나라는 이처럼 나라를 세우거나 나라 이름을 바꿀 때 새로 이름을 짓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썼던 나라 이름을 다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이것을 국호계승의식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자, 그럼 통일한국의 나라 이름은 어떻게 정해질까요. 아마도 국호계승의식에 따라 예전에 썼던 이름이 다시 사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거 역사상 분열되지 않고 통일되었을 때 사용한 나라 이름의 국호나 가장 많이 사용된 나라 이름 가운데 하나가 되겠지요. 두 경우를 모두 만족하는 경우는 ‘고려’입니다. 또한 남북이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Korea라는 영문국호와도 잘 어울립니다.

또 고려 국호는 고구려가 4~5세기 고려로 나라 이름을 바꾼 이후 발해를 거쳐 궁예의 고려, 왕건의 고려, 지금의 Korea까지 1천5백여 년동안 계속해서 우리역사와 함께 해온 나라 이름이기도 합니다. 

다만 남북통일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한다면 새로 나라 이름을 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5천 년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한글’의 의미를 되새겨 통일한국의 나라 이름은 새롭게 한글로 짓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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