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수율 99.9% 건강보험제도의 이면을 들추다

가벼운 감기몸살부터 각종 만성질환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나 질병은 예기치 않게 닥쳐온다. 우리나라는 각종 질환으로 발생하는 고액의 진료비가 가계에 과도한 부담이 되는 것을 막고자 건강보험제도(아래 건강보험)를 시행하고 있다. ‘OECD 보건통계 2023’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외래진료 횟수는 연간 15.7회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광주대 사회복지학부 이용교 교수는 “건강보험 제도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수치”라며 “그렇지 않으면, 아파도 병원비가 부담돼 쉽게 병원에 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2023년 6월 기준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인 5천 140만 명가량이 건강보험에 가입해 있다. 시민건강연구소 정성식 박사는 “건강보험은 국민의 건강 보호와 증진에 우수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건강보험이 사회의 주요한 안전망으로 평가받는 것만큼 이를 둘러싼 논란의 목소리도 거세다. 인권운동사랑방 몽 활동가는 “건강보험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고 있다”고 했다.

 

건강보험, 어떻게 운영되나

 

건강보험은 국민들이 매달 납부한 보험료를 국민건강보험공단(아래 건강보험공단)이 관리하다가 필요한 때에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김진수 교수(사회과학대학·사회복지)는 “병원에 많이 가지 않으면 돈만 내고 혜택은 못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상할 수 없는 위험에 대비하는 게 사회보험의 기본적인 특성”이라고 했다. 건강보험가입자는 직장가입자*지역가입자**로 나뉜다. 직장가입자의 건강보험료는 이들이 지급받는 보수에 정해진 보험료율을 곱하여 산정한다. 이에 반해 지역가입자는 소득 외에도 자동차·전월세 등 보유 재산을 보험료율 산정 기준으로 둔다. 김진수 교수는 “지역가입자는 직장가입자처럼 소득이 명확히 잡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건강보험공단이 보유 재산으로 소득을 추정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산정 기준이 현실을 올바르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어 왔다. 몽 활동가는 “거주지만 등록돼 있고 실제로 거주하지 않거나 빚뿐인 집이 보험료 책정 기준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세현행정사사무소 정세현 행정사는 “건강보험공단이 정확한 소득 수준을 파악하고자 노력하지 않고, 행정상 편의를 위해 보유 재산으로 소득 수준을 추정하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지역가입자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세대주와 세대원에게 보험료의 ‘연대납부 의무’를 지운다. 「국민건강보험법」 제77조 2항은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는 가입자가 속한 세대의 전원이 연대하여 납부한다’고 규정한다. 구체적으로는 세대주가 피부양자에 해당하는 세대원의 건강보험료까지 함께 내는 방식이다. 김진수 교수는 “납부 능력이 없는 미성년자, 장애인, 고령층의 몫을 가족이 연대해 함께 납부할 수 있어 유용하다”고 했다.

문제는 이 유용함이 정상 가족의 형태에서만 작동한다는 점이다. 실직, 가출, 실종, 사망 등의 이유로 세대주가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으면, 그 책임은 세대원에게 넘어온다. 체납된 금액이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어 세대원이 갑자기 부담하기에는 큰 액수인 경우가 많다. 체납된 보험료에 매월 0.5%씩, 일 년에 최대 5%까지 이자가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몽 활동가는 “체납금이 작게는 몇십만 원, 크게는 연체료까지 붙어 몇백만 원에 달하기도 한다”고 했다. 납부 능력이 없는 사회초년생이 연대납부 제도로 인해 체납자가 될 경우 문제는 더 커진다. 성년이 되자마자 밀린 보험료를 납부하느라 학업과 구직활동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정 행정사는 “상담 사례 중 아버지가 건강보험을 미납해 휴학하고 아르바이트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미성년자는 일정한 조건을 충족할 때 연대납부 의무를 면제해 주기는 하나, 그 경우 역시 몹시 제한적이다. 미성년자가 연대납부 의무를 면제받기 위해서는 부모가 모두 사망했거나 소득과 재산이 없고, 해당 세대가 모두 미성년자로 구성돼 있어야 한다. 정 박사는 “조건을 불문하고 미성년자의 연대납부 의무를 면제해 줘야 한다”고 했다.

 

 

건강보험 체납하면 생기는 일

 

건강보험료를 6회 이상 미납할 경우, 장기체납자가 된다. 지난 2021년 기준 장기체납자는 105만 6천 명이었는데, 이 중 70%가 월평균 체납액이 5만 원도 되지 않는 생계형 체납자였다. 몽 활동가는 “이는 돈을 내지 않으면서 건강보험 제도는 이용하려는 방만한 태도가 아니라, 그 정도의 비용마저 낼 수 없는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라고 했다. 장기체납자가 꾸준히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 징수율은 2023년 기준 99.9%로, 상당히 높다. 몽 활동가는 “사실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징수하는데 이렇게 높은 수치가 나오는 건 불가능하다”며 “건강보험공단이 체납한 사람에게 징벌적인 방식을 취하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장기체납자로부터 보험료를 징수하기 위해, 보험료 금액 및 납부 기한, 장소를 기재한 독촉고지서를 발부한다. 정 박사는 “독촉고지는 체납자에게 심리적 위축과 자책감, 모욕감 등 정신적 고통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독촉고지서를 여러 차례 발부한 후에도 체납이 해결되지 않으면 보험자의 부동산, 자동차부터 예금통장, 카드 매출 등 재산까지 압류한다. 통장이 압류되면 기본적인 입출금조차 불가능해진다. 몽 활동가는 “압류는 국가가 국민의 재산권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예외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이라고 했다. 사회초년생 체납자에게는 이런 상황이 더 가혹하다. 월급을 받아도 압류된 통장으로 다 빠져나가고, 신용 불량이라 필요한 대출을 받을 수도 없다. 대학생은 장학금 신청도, 학자금 대출도 불가능해진다.

장기체납자는 의료기관 이용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 3항에서는 ‘공단은 가입자가 보험료를 체납한 경우, 완납할 때까지 보험급여를 실시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한다. 장기체납자는 진료받아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병원에서 진료받은 금액이 전부 부당이득금으로 기록된다. 부당이득금은 환수당하거나 갚지 못할 때는 이마저도 매달 연체료가 붙어 빚으로 쌓인다. 몽 활동가는 “건강권을 보장해야 하는 건강보험공단이 징수에 집착해 본래 목적을 경시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필요한 때에 병원에 가지 못해 질병이 악화되기도 한다. 건강정책학회 김창보 부회장은 “체납자 가구원 중 희귀·난치성 질환자나 급성질환자가 있을 수 있다”며 “체납을 이유로 의료보험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체납자에 대한 의료보험 제한 제도는 전면 폐지돼야 한다”고 했다.

 

진정한 ‘국민’ 보험으로 거듭나려면

 

김진수 교수는 “체납자 역시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라며 “비참하고 차별적인 경우를 양산해 내는 현 제도에 정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현 제도가 장기체납자의 보험료 납부 유인을 고취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밀린 보험료를 전부 납부하지 않는 이상, 보험료를 성실히 납부해도 체납자 신분은 유지된다. 가령 10개월째 보험료를 내지 못하던 장기체납자가 3개월 연속으로 납부하더라도, 여전히 체납자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독촉고지서도, 통장압류, 보험적용 제한도 계속된다. 보험료가 체납된 기간은 여전히 6개월 이상이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단순히 체납된 기간만을 셀 것이 아니라 납부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한 기간이 6개월을 넘기더라도, 납부하고자 노력한 정황이 보이면 이를 감안해 줘야 한다”고 했다.

건강보험의 개선과 더불어,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른 의료급여 수급 대상자 확대도 필요하다. 정 박사는 “의료급여 수급 선정기준이 까다롭다 보니, 보험료 부담 능력이 없어도 제도 안에 남아 장기체납자가 된다”며 “우리나라의 상대적 빈곤율은 15% 남짓으로 추정되는 반면, 의료급여 수급자는 전체 인구의 3%밖에 안 된다”고 했다. 장기체납자라 하더라도 150만 원 이하 최저생계비와 기초생활보장 급여는 압류가 금지돼 있으나,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체납자가 직접 소득 수준을 소명해야 하는 신청주의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명지대 행정학과 기정훈 교수는 “건강보험공단은 계좌 조회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냥 압류한다”며 “신청주의를 알지 못해 피해받는 계층을 구제하기 위해 현행 방식에 개선이 분명히 필요하다”고 했다.

장기체납자를 구제할 수 있는 정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건강보험료를 탕감해 주는 결손처분 제도가 존재하지만, 대상자 선정기준과 방식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몽 활동가는 “결손처분 대상자 선정기준이 까다롭고, 신청 이후 발표까지 기간이 6개월 정도 걸려 다소 길다”고 했다.

결손처분을 활성화하면 도덕적 해이가 심각해지고 재정 건전성에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 박사는 “기존 여러 실태조사를 통해 장기체납자 대부분이 생계형 체납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는 주장은 현실과 맞지 않다”고 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도 “체납금이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에 크게 위협이 안된다”고 했다. 실제로 시민건강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6년 7월 보험료 6회 이상 누적 체납액은 2조 4천131억이었는데, 이는 정부 지원금만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액수였다. 정부는 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 1항에 따라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를 지원해야 한다. 정 박사는 “정부가 그동안 한 번도 국고 지원 비율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다”며 “그동안 미지급된 정부 지원금만 32조 원 규모”라고 했다. 정부 지원금만 제대로 지급되면 필요한 재원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결손처분을 심의하는 재정운영위원회가 장기체납자의 상황과 특성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 부회장은 “위원회는 정해진 기준으로 결손처분 대상을 선정하고 금액을 승인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며 “조사와 연구를 통해 적절한 기준을 마련하고 유연하게 결손처분 심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36조 3항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보건의료법」 제10조 2항
‘모든 국민은 성별, 나이, 종교, 사회적 신분 또는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관한 권리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건강보험의 목적은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데에 있다. 정 박사는 “보험료를 납부할 능력이 없는 이들이 경제적 부담 때문에 필요한 의료 이용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했다. 무리한 보험료 징수가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 의료 혜택이 가닿지 못하게 하진 않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체납관리 제도 운영방식과 보험료 지원체계 전반에 꼼꼼한 정비가 필요하다.

 

 

 글 김혜진 기자
socio_queen@yonsei.ac.kr

<그림 노태린>

 

* 직장가입자: 사업장의 근로자 및 사용자와 공무원 및 교직원, 그리고 이들의 피부양자.
** 지역가입자: 직장가입자와 그들의 피부양자를 제외한 가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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