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준칙 법제화를 둘러싼 이모저모

 

“망하기 전 기업을 보면 껍데기는 아주 화려하다. 
그 기업을 인수해 보면, 안이 아주 형편없다. 
지난 대선 때 국정운영권을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됐겠나 아찔한 생각이 든다” 
-윤석열 대통령 8월 28일 국민의힘 연찬회 발언-

“지난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지난해 빚이 1천조 원을 돌파했다. 
우리 정부는 재정 만능주의를 단호하게 배격하겠다.” 
-윤석열 대통령 8월 29일 국무회의 발언-

 

윤 대통령은 여러 공식 석상에서 국가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현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늘어난 국가 부채비율을 확연하게 줄이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은 ‘재정준칙 법제화’ 입법 의지로 드러납니다. 재정준칙 법제화는 정부의 재정 적자에 관한 조정을 법으로 강제하는 법안입니다. 한 해 동안의 총 재정 적자는 GDP 대비 3% 이내로 유지하고, 국가부채가 60% 이상 넘어가면 재정 적자를 2%씩 줄여야 한다는 것이 법안의 요지입니다. 지난 2022년 9월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은 재정준칙 법제화를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발의 당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반드시 필요한 법안”이라며 입법에 힘을 실었습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1년째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재정준칙 법제화에 대한 상반된 관점과 배경을 분석해 봤습니다.

 

우리나라는 빚이
많다? 적다?

 

재정준칙 법제화에 대한 의견 대립은 우리나라의 부채비율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시작합니다. 지난 2021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국가 부채비율은 51.33%였습니다. 이는 OECD 36개국 중 뒤에서 12번째로 ▲영국 103.79% ▲미국 128.14% ▲일본 262.49%보다 낮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 이후 부채비율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2019년 우리나라 국가 부채비율은 42.13%였으나 코로나19를 겪으며 2년 만에 9.2%p 상승했습니다. 이는 매년 2%p 내외로 증가하던 양상에 비해 가파른 추세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국가부채증가는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현상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같은 시기 ▲영국 18.94%p ▲미국 19.38%p ▲일본 26.21%p씩 부채비율이 상승했습니다.

OECD 평균 국가 부채비율은 120%를 넘습니다. 우리나라의 국가 부채비율은 50% 초반으로, 객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부채비율 증가 폭 역시 높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몇몇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가채무를 더욱 적극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높은 가계부채 비율 증가 폭 ▲비기축통화국***인 점을 고려하면 현재 부채비율은 위험성이 높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비율**은 GDP 대비 104.3%로 OECD 국가 중에서 최상위권에 속합니다. 이는 금융위기 상황에서 개인의 파산 위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미국, 유럽, 일본과 달리 화폐가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비기축통화국입니다. 기축통화를 사용하는 국가의 경우 채권과 현금에 대한 수요가 많아 국가 부도 가능성이 작다고 평가됩니다. 그러나 비기축통화국의 경우 해당국 채권과 통화 수요가 적습니다. 이러한 경우 국내의 외환 보유액이 줄어 환율이 불안해지고 부채 상환 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국가신용도가 떨어져 국가 부도 위험 역시 높아질 수 있습니다.

 

▶▶ 지난 9월 1일, 김진표 국회의장이 21대 마지막 정기국회 개회를 선언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회기에서 재정준칙 법제화 입법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것이라 밝혔다.
▶▶ 지난 9월 1일, 김진표 국회의장이 21대 마지막 정기국회 개회를 선언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회기에서 재정준칙 법제화 입법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것이라 밝혔다.

 

재정준칙 법제화는
줄어든 세수 때문?

 

지난 9월 1일 개시된 21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국민의힘은 재정준칙 법제화를 중점적으로 입법할 법안 사안으로 선정했습니다. 지난 8월부터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경제』, 『서울경제』 등 보수 성향의 주요 일간지와 경제전문지는 일제히 재정준칙 법제화 입법을 촉구하는 사설을 개시했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국가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는 지금, 재정준칙 법제화가 하루빨리 통과돼야 한다”며 힘을 더했습니다.

재정준칙 법제화가 강조되는 배경으론 정부 예상보다 세수가 덜 걷혔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2023년 1월부터 7월까지 국세 수입은 217조 6천억 원으로 지난 2022년 동기간 대비 48조 원 부족했습니다. 세수 감소의 주요 원인으론 윤석열 정부의 ‘대기업 세금 감면’이 꼽힙니다. 윤석열 정부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세금을 2023년에만 4조 4천억 원 감면했습니다. 지난 2022년보다 2조 2천억 원 더 감면한 것입니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취임 이후, ▲대기업 투자세액공제 증가 ▲대기업 법인세율 인하 등 대기업 감세를 적극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첨단전략산업 세액공제율을 7%p 높였지만, 설비투자는 오히려 11%p 감소해 실제 산업 육성 효과가 미미했습니다. 2022년 6월엔 법인세 최고세율을 14년 만에 3% 내리기도 했습니다. 8월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대기업에 과도한 세금감면 혜택을 줘 국가 재정을 망가뜨렸다”고 주장했습니다.

세수 감소로 정부에 들어오는 돈이 줄었으니, 나가는 돈도 줄여야 할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재정준칙 법제화 입법에는 나가는 돈을 정당하게 줄이려는 의도가 내포해있다고 해석합니다. 입법됐을 때, 가장 먼저 축소될 재정지출은 ‘복지 정책 예산’일 것이라 봅니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는 “윤석열 정부는 대기업 감세를 우선으로 시행하고, 재정적자를 해결할 대책으로 사회복지정책 지출 감소에 가장 먼저 눈독을 들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OECD가 제공한 ‘OECD 국가별 사회복지 정책 비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정책 지출 비중은 GDP 대비 14.8%이었습니다. 이는 OECD 38개국 중 뒤에서 5번째로 낮은 순위입니다. 이미 OECD 평균에 못 미치는 사회복지정책 지출이 더 줄어들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지난 5월 기획재정부는 “재정준칙이 법제화돼도 복지지출을 줄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셀프 면제’ 가능한 준칙,
가계를 살리기 위해선

 

준칙 기준을 정부가 스스로 정할 수 있어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법안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지점입니다. 「국가재정법 개정안」에는 경기침체, 대량실업, 재해가 발생하면 재정준칙 적용을 면제하기로 적시됐습니다. 그러나 경기침체와 대량실업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없습니다. 준칙을 면제할 수 있는 판단의 주체는 ‘재정당국’으로 정부가 언제든 ‘경제위기’를 선언하면 재정준칙을 면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재정준칙 법제화는 OECD 여러 국가가 이미 실시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이후 복지지출이 늘어 유명무실해지기도 했습니다. 지난 4월 국민의힘 송언석·류성걸 의원, 더불어민주당 신주영·신동근 의원은 재정준칙 법제화 선례를 살펴보기 위해 스페인으로 출장 갔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하원의원이 오히려 “한국의 재정 건전성을 배우고 싶다”며 우리나라 의원들에게 되물었습니다. 재정준칙을 법제화한 스페인에서 오히려 준칙이 지켜지지 않고 국가부채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상황에서는 재정지출의 축소가 아닌 확장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2023년 세수는 ▲윤석열 정부의 대기업 감세와 ▲경기 위축으로 인해 두드러지게 줄었습니다. 민간 분야에선 특히 양도소득세, 종합소득세 등 소득세가 7조 1천억 원 감소했고, 부가가치세는 5조 6천억 원 줄어들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가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부동산 시장과 상품 시장의 거래가 얼어붙어 경기가 위축됐고, 민간 분야에선 세수가 감소하게 됐다고 봅니다. 지난 8월 25일 ‘경기도추가경정예산안 발표’ 현장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금과 같은 경기침체기에는 적극적인 확장 재정 정책이 필요한 시기”라며 윤석열 정부의 재정정책을 비판했습니다.

 

1년째 국회에 계류 중인 재정준칙 법제화는 국민의힘의 적극적인 입법 의지와 함께 21대 마지막 국회에서 ‘핫토픽’으로 논의될 예정입니다. 국가부채에 대한 상이한 ‘인식’에서 시작한 이 법안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요? 

 

 

글 유동기 기자
socio_princess@yonsei.ac.kr

<사진제공 대한민국 국회>

 

* 국가 재정건전성: 국가부채를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며 채무 상환능력을 갖추고 있는 재정 상태를 의미한다.
** 가계부채 비율: 신용카드 대출, 주택담보 대출 등 각 가정의 부채비율
*** 비기축통화국: 기축통화국을 제외한 국가를 의미한다. 기축통화국은 국제외환시장에서 금융거래에 중심이 되는 통화를 사용하고 있는 국가다.
****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자산총액이 5조 원 이상인 기업에서 국내총생산액이 1천분의 5에 해당하는 금액 이상인 기업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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