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 없는 생태통로, 제 기능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동물과 함께 살아간다. 철학자 피터 싱어는 동물도 지각·감각 능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보호’받기 위한 ‘도덕적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동물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가. 동물의 도덕적 권리를 존중하고 있는가. 연세춘추 사회부 기획취재팀은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고자 했다. 2주에 걸쳐 동물이 직면한 위험을 살펴본다. <기자주>

 

도로 건설로 사람들이 편의를 누리는 동안, 야생동물은 신음하고 있다. 도로가 들어서며 야생동물 서식지가 훼손되거나 이들의 생태적 통로가 단절되기 때문이다. 파편화*된 서식지에서 이전처럼 먹이를 구하고 번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야생동물은 도로를 가로질러 이동하는데, 그 과정에서 로드킬**이 발생한다. ‘국립생태원’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국 로드킬 발생 건수는 지난 2020년 1만 5천107건, 2021년 3만 7천261건, 2022년 6만 3천989건으로 3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서울환경연합’ 조해민 활동가는 “이는 지자체에 접수된 신고만 집계한 것으로, 실제 발생한 로드킬은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로드킬을 예방하고 파편화된 서식지를 연결하기 위해 생태통로 설치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자연환경보전법」 제45조에 따르면 국가 또는 지자체는 개발사업을 시행할 때 야생동물의 이동 및 생태적 연속성이 단절되지 않도록 생태통로 설치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주민들의 산책로로 변한 생태통로

 

생태통로는 야생동물의 안전한 이동을 돕기 위해 설치하는 인공 구조물이다. ‘동물해방물결’ 장희지 활동가는 “생태통로는 서식지를 보전하고 로드킬을 방지해 야생동물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생태통로는 실제로 야생동물의 이동 통로로 보다는 시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었다.

지난 3일 경기도 의왕시 삼동에 위치한 아파트를 찾았다. 시민 두 명이 아파트 후문에서 덕성산으로 이어지는 흙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이 길은 ‘절토 육교’로, 과천봉담 도시 고속화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생태통로다. 생태통로를 따라 걷던 시민 양모(52)씨는 “이 길이 생태통로인 줄 몰랐다”며 “주말 오전이면 이 길을 통해 덕성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다”고 말했다. 오전에 내린 비로 축축해진 흙길 위엔 시민들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단국대 공간생태연구실이 진행한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절토 육교는 야생동물보다 사람이 더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지난 2023년 5월부터 8월까지 야생동물은 180회 이용했지만, 사람은 3천 회 넘게 오갔다.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이상돈 교수는 “야생동물은 사람의 흔적에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동선을 분리하는 것이 좋다”며 “그렇지 않으면 야생동물이 생태통로를 잘 이용하지 않게 된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위치한 ‘분천 생태통로’도 살펴봤다. 관리되지 않은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탓에 생태통로 입구가 막혀있었다. 야생동물이 이용하기는커녕 진입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자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제28조에 따르면, 생태통로 입구는 자연 바닥과 유사하게 흙이나 자갈을 덮어야 하고 동물의 이동에 지장이 없도록 관리해야 한다. 관할 기관인 수원국토관리사무소 시설안전관리과 김상희씨는 생태통로 관리 여부를 묻자 “현재 생태통로를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자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분천 생태통로’ 입구 모습. 풀과 나무로 생태통로 입구가 막혀있어, 야생동물이 진입하기 어렵다.
▶▶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분천 생태통로’ 입구 모습. 풀과 나무로 생태통로 입구가 막혀있어, 야생동물이 진입하기 어렵다.

 

사전 조사부터 제대로 이뤄져야

 

경기도에는 총 103개의 생태통로가 있다. 국립생태원이 이용 효율을 평가한 결과, ‘효율 높음’ 판정을 받은 생태통로는 이중 23개뿐이었다. 이용 효율은 야생동물 이용 빈도를 기준으로 생태통로의 실효성을 진단하는 지표다. 나머지 생태통로는 이용 효율이 높지 않았고 울타리나 소음 차단벽, 안내판 등을 갖추지 않고 있었다. 생태통로로 사실상 기능하지 못해 환경부가 생태통로 지정 해제를 검토 중인 곳도 10개나 있다. 단국대 환경원예조경학부 송원경 교수는 “생태통로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구조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생태통로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세심한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송 교수는 “생태통로 설치를 위해 출현하는 야생동물의 종과 이동 반경을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사전 조사가 미흡한 경우 생태통로가 동물의 이동 통로와는 동떨어진 곳에 설치되기도 한다. 장 활동가는 “적절하지 않은 위치에 설치된 생태통로는 효과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부실한 사전 조사는 생태통로 미설치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전 조사 결과 로드킬이 많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 생태통로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사전 조사 주체인 건설사가 이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생태통로 불필요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동물자유연대’ 심예구 활동가는 “최근 포천과 화도를 잇는 고속도로 공사의 경우 생태통로를 설치하지 않았다”며 “세심한 사전 조사 없이 생태통로가 불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눈앞의 개발을 위해 자연 보전이 뒷전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후 모니터링도 강화해야

 

경기도 생태통로 103개 중 사후 모니터링이 이뤄지지 않아 이용 효율 판정조차 할 수 없는 생태통로가 54개다. 생태통로는 설치 후 모니터링도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생태통로는 방치되고 기능을 잃기 때문이다. 송 교수는 “사후 모니터링을 해야 야생동물이 잘 이용하는지 확인할 수 있고,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에 따라 생태통로 설치 후 3년 동안은 관할 기관이 분기별 1회 이상 모니터링을 실시해야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연 1회로 모니터링 횟수가 준다. 조 활동가는 “모니터링 횟수가 줄다 보니 관리에 허점이 발생한다”며 “생태통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도 문제를 제때 발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생태통로는 3년을 기점으로 관리 주체가 달라진다. 설치 후 3년 동안은 건설사가 관할 기관으로 모니터링을 진행하다가 이후에는 지자체가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장 활동가는 “지자체 차원의 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사가 모니터링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영업정지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는 것과 달리 지자체의 경우 제재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국립생태원 송의근 전임 연구원은 “모니터링을 하지 않아도 지자체에 페널티가 없다”며 “담당 직원의 직무 유기 차원의 징계만 가능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지자체의 모니터링 의지는 관련 예산 편성에서 드러난다. 이 교수는 “지자체가 모니터링 관련 예산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2023년 경기도에 생태통로를 보유한 지자체 24곳 중 관련 예산을 편성한 곳은 7곳에 불과했다. 이렇다 보니 사후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중앙 전담 부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 활동가는 “전국에 모든 생태통로가 국가 차원에서 관리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태통로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참여도 중요하다. 국립생태원 환경영향평가팀 김중권 선임 연구원은 “도로 건설 과정에서 시민단체나 주민들의 요구로 생태통로를 추가로 설치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조 활동가도 “시민들이 야생동물의 이용 흔적을 발견했을 때 지자체에 연락하는 것으로 생태통로의 관리를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생태계 내 모든 구성 요소는 상호 연결돼있다. 로드킬과 서식지 파괴로 인한 야생동물 개체 수 감소는 생태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장 활동가는 “생태통로는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고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사회부 기획취재팀 
chunchusocio@naver.com

글·사진 최은지 기자
socio_king@yonsei.ac.kr 

글 오혜연 기자
socio_quokka@yonsei.ac.kr

 

* 파편화: 도로 건설 등으로 인해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분리된 것을 말한다.
** 로드킬: 동물이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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