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을 위한 재난 대처법’의 현주소를 알아보다

우리는 동물과 함께 살아간다. 철학자 피터 싱어는 동물도 지각·감각 능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보호’받기 위한 ‘도덕적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동물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가. 동물의 도덕적 권리를 존중하고 있는가. 연세춘추 사회부 기획취재팀은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고자 했다. 2주에 걸쳐 동물이 직면한 위험을 살펴본다. <기자주>

 

지난 2017년 포항 대지진, 2022년 울진 산불 등 자연재해 현장에서 많은 반려동물과 가축의 피해가 속출했다. 포항 대지진때는 36마리의 동물이 유실됐고, 울진 산불때는 가축 420마리가 죽거나 다쳤다. ‘동물자유연대’ 김윤민 활동가는 “보고된 피해는 빙산의 일각일 뿐, 더 많은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려’동물이란 사람과 함께 더불어 생을 살아가는 가족과 같은 존재를 의미한다. 2022년 기준 전체 인구의 25.4%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재난 상황에서 구호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가족 같은 반려동물,
재난 현장에선 남?

 

지난 5월 31일 오전 6시 32분, 김채원(21)씨는 갑작스러운 서울시의 경계경보로 잠에서 깼다. 인터넷 포털 메인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 속보를 본 김씨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같이 자고 있던 강아지 ‘초롱이’도 덩달아 일어났다. 김씨는 “대피해야 하는데 초롱이를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고 말했다. 초롱이를 데리고 대피시설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신윤철(24)씨는 강아지 ‘신사’와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취업을 앞둔 그는 답답할 때 신사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고민을 푼다. 신씨는 “신사가 알아들을 터가 없지만, 왠지 공감해 주는 듯해 기분이 풀린다”고 했다. 재난 상황 시 반려동물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 질문엔 “당연히 신사를 데리고 어디든 갈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초롱이도, 신사도 재난 상황에서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다. 「재해구호법」 제3조에는 ‘재해 상황에서 구호는 사람만 대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반려동물은 「재해구호법」을 통해 임시주거시설은 물론, 의료서비스와 같은 구호도 받을 수 없다. 장안대 바이오동물보호과 오희경 교수는 “「재해구호법」에서 동물을 제외하는 건 정부나 지자체가 반려동물의 구조, 보호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2년 기준 서울 내 재난대피시설은 3천222개이지만,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는 단 한 곳도 없다. 김 활동가는 “반려인*이 반려동물을 데리고 나와도 수용할 수 있는 대피 공간이 없다”고 말했다. 울진 산불 피해 현장에서 동물 구조 작업에 직접 참여했던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신인섭 대표는 “대피하지 못해 타죽은 개와 고양이들이 상당히 많았다”며 “화재가 진압된 후 주인을 찾지 못한 개들은 열흘 안에 보호소에서 안락사됐다”고 말했다.

 

부서마다 다른 가이드라인,
실효성도 의문이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아래 농식품부)와 행정안전부(아래 행안부)는 재난 상황에서 사용할 반려동물 대피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두 부처의 가이드라인 지침이 상충해 시민들이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먼저 지난 2022년 농식품부가 발행한 ‘반려동물과 가족을 위한 재난 대응 가이드라인’에는 재난 발생 시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시설로 이동하라고 한다. 그러나 행안부는 비상대처요령에서 반려동물은 대피시설로 데려갈 수 없다고 명시한다. 농식품부의 가이드라인과 행안부의 지침이 상충하는 것이다.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김성호 교수는 “같은 국가의 정부 부처가 아닌 것처럼 부처 간 말이 다르다”며 “가이드라인의 실효성이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이 상충할 뿐만 아니라, 현행법상 실현될 수도 없다. 재해구호법 제3조에서 ‘사람’만 구호 대상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이 대피소로 이동해야 한다는 농식품부의 가이드라인이 강제성이나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는 이유다.

반려동물은 주로 집과 같은 실내 공간이나 마당과 같은 외부 공간에서 목줄에 묶인 채 살아간다. 누군가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으면 재난 상황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 즉, 반려동물의 안전한 대피를 위해서는 ‘반려인’의 빠른 대처가 필수적이다. ‘동물권연구단체’ 이혜윤 변호사는 “반려인에게 재난 상황에 대한 대처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반려동물의 구조가 어렵다”고 말했다. 정보 부족에 따른 어려움은 현장에서 반려동물의 구조를 도맡는 동물보호 단체도 겪고 있다. 김 활동가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다 보니 활동에 한계가 있다”라며 “재난 상황에서 동물의 피해에 대한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 구조를 하는 전문 인력이 편성돼 있지 않은 것도 문제다. 김 활동가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단체 내에서 자율적으로 동물 구조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방 당국에서도 재난 발생 시 인명구조만을 명시할 뿐, 동물 구조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

 

▶▶ 재난 상황에서 강아지들은 대피소에 들어가지 못한다.
▶▶ 재난 상황에서 강아지들은 대피소에 들어가지 못한다.

 

동물은 물건이 아닌, 
함께 하는 가족

 

반려동물의 안전은 반려인의 안전과도 관련이 있다. 재난 상황에서 반려동물과 멀어지면 반려인은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동물해방물결’ 장희지 활동가는 “반려동물을 구조하기 위해 본인이 대피를 포기하거나, 반려동물을 구조하다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사람과 동물 모두를 위해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의 정립과 법률의 제정이 필요하다.

정부 부처의 가이드라인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 마련이 필수적이다. 김 활동가는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를 마련하고 반려동물용 구호 물품과 재난 피해를 지원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지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를 계기로 반려동물 출입이 가능한 대피소를 대폭 늘린 바 있다. 일본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반려동물과 동반할 수 있는 시설을 지정하고 케이지와 같은 구호용품을 보관해 재난이 생겼을 때 바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 교수는 “앞으로도 자연 재난은 더 많이 일어날 것이다”라며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 해외 사례와 같이 동물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 마련이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정책 개선뿐만 아니라 반려인에게 실효성 있는 재난 대피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반려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적인 대피 교육이 없다. 대구한의대 반려동물보건학과 박호일 교수는 “재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보호자들의 교육이 중요하다”며 “반려인이 응급처치 방법이나 켄넬** 이용 교육 등을 통해 재난이 일어났을 때 대피 방법을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동물에 대한 인식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민법」 제98조는 동물을 기차, 자동차 등과 같이 움직이는 ‘물건’으로 정의한다. 그렇기에 상위법 우선 원칙***에 따라 동물은 결국 모든 법률에서 권리 주체로 여겨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발한 동물·인권단체 활동가들이 개정을 요구해 지난 2021년 10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개정법률안이 정부 발의됐으나 여전히 국회에 계류돼 있다. 이 변호사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동물보호를 위한 규정이나, 지침을 체계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고 했다.

 

동물도 사람과 같은 권리 주체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극한의 상황이 다가왔을 때 사람의 민낯을 볼 수 있듯이, 재난 상황 속 우리 사회의 대처 능력에서 동물에 대한 인식이 드러난다. 김 교수는 “현행 반려동물 재난 가이드라인은 ‘배가 침몰하면 알아서 파도를 보고 헤엄을 쳐라’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초롱이와 신사도 재난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사회가 올 수 있을까.

 

 

사회부 기획취재팀
chunchusocio@naver.com

글 유동기 기자
socio_princess@yonsei.ac.kr
오혜연 기자
socio_quokka@yonsei.ac.kr

 

* 반려인: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이다.
** 켄넬: 반려동물 이동장을 이르는 명칭이다.
*** 상위법 우선 원칙: 법 적용에 있어 상위법과 하위법이 충돌할 경우 상위법이 우선된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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