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찬 교수(우리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김용찬 교수(우리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류된 ‘오염처리수’가 안전한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에 뛰어들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소통 방식을 살펴보고 있자면, 정부가 어떻게 위험 문제에 대해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 원칙들을 위험 소통 연구자로서 다시 성찰하게 된다. 아쉽게도 현재까지 한국 정부가 보여주는 모습은 실패한 소통의 교과서적 전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정부의 소통 방식을 통해 위험 소통의 원칙들 몇 개를 다시 곱씹어 보자. 

첫째는 위험 이슈에 대해 ‘걱정하지 말아라’고 하는 것만큼 왜곡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위험 관리의 주체가 전하는 메시지에서 반드시 피해야 하는 것이 ‘걱정하지 말아라’, ‘아무 일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아서 잘 대처하겠다’ 같은 말들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하는 듯한,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듯한, 정부가 전하는 이런 가부장적인 말들이 현대사회에서는 사람들의 불안을 오히려 더 증폭시킨다. ‘그대 걱정하지 말아요’라는 말은 이적이 만든 동일한 제목의 노래를 듣는 것으로 충분하다.

둘째로, 공감 없는 소통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이다. 효과적인 위험 소통을 하려면 정부 등 위험 관리 주체들이 시민들과 함께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위험 관리 주체 스스로가 인식하는 불확실성과 한계 등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런 솔직함이 오히려 소통의 효과를 높이는 경우가 많다. 위험 소통 전문가들은 위험이라는 것을 [위험 = 객관적 위험 + 주관적 경험]으로 설명한다. 위험 소통이 실패하는 주된 이유는 위험 관리 주체가 객관적 위험의 측면에만 집중할 뿐 사람들의 주관적 위험 경험은 비합리적이고, 불합리하고, 없애야 하는 것으로 무시하기 때문이다. ‘오염처리수’ 방류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보여주는 태도가 딱 그렇다. 걱정하는 사람들에 대해 공감하기는커녕 그들의 불안과 의심을 괴담과 가짜뉴스에 영향을 받은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인 반응, 혹은 정치적 의도를 가진 불순한 것으로만 몰고 있다. 

셋째는, 위험 관리 주체가 진실을 독점하고 있는 듯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등 위험 관리 주체가 그런 태도를 보이면서 모든 이견을 괴담과 가짜뉴스로 치부한다면 위험에 대한 사회적 소통은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오염처리수’ 문제에 대해 과학적 진실을 자신들이 갖고 있고, 다른 견해들(혹은 온갖 불안, 걱정의 감정들)은 모두 비과학적인 것이라 비판해 왔다. 그리고 ‘과학을 믿어주세요’라고 호소한다. 그런데 어떤 견해가 아무리 과학적 근거에 기대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절대화하는 것 자체가 비과학적이다. ‘과학을 믿어달라’는 말도 비과학적이다. 믿음에 근거해서 뭔가를 안다 주장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과학이니 말이다. 현재 내가 알고 있다 여기는 것에 부합하지 않는 다른 가설에도 문을 열어놓는 것이 오히려 과학이다. 과학적 정당성을 위험 관리 주체가 독점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다른 모든 사람을 비과학적 존재들로 만들어 버리기에, 위험에 대한 사회적 소통을 불가능하게 한다. 정부는 위험 문제 해결을 위한 행정력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독점하는 것이지, 진실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다. 

넷째, 위험 관리 주체는 자신들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솔직한 소통을 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신들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구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특정 위험 이슈가 불거져 나올 때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가장 주요한 이유는 특정 사안이 불확실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불확실한지조차 모호한 상황에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 파악해서 관리하고 있고 그래서 걱정하지 말라는 막연한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기보다는, 정부는 자신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구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현시점에서 모르는 것으로 구분되는 것들 중에서도 앞으로도 계속 모를 것과, 어느 시점부터는 알 수도 있는 것을 구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식의 정교한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가 아직 모르는 것들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의 ‘오염처리수’ 관련 소통에서 이런 솔직함을 아직 보지 못했다. 자신들이 무엇을 아는지에 대한 이야기만 있을 뿐,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다섯째, 효과적인 위험 소통을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면서도 전문성을 지닌 커뮤니케이터가 필요하다. 정부 내의 누군가가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있고, 필요하면 외부 전문가에 의존할 수도 있다. 중립성과 전문성을 지닌 커뮤니케이터가 필수적인 이유는 위험 이슈가 정치와 얽히게 되면 모든 소통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오염처리수’ 방류 이슈에서 한국 정부가 갖고 있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 이슈에 대한 현 정부의 소통 과정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의 입장이 정치/외교적 동기와 얼마나 선명하게 분리되어 있는지에 대해 정부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적 동기와 분리해서 중립적 메시지를 전하는 커뮤니케이터가 눈에 띄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의 주요 인사들이 불과 몇 년 전에는 일본의 ‘오염처리수’ 방류에 대해 강력한 반대 메시지를 전했었는데 지금은 옹호하는 방향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도 정부 위험 소통의 효과를 낮추는 요인이 되고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누구든 위험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변화가 단순히 새로운 정보의 유입 때문인지, 정치적 이해관계가 바뀌었기 때문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효과적 위험 소통을 기대할 수 없다. 

위험의 현실은 저기 외부에 객관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 있는 소통의 과정에서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다에 방류된 방사능 ‘오염처리수’ 자체가 실제로 위험한지 아닌지 여부와 관계없이, 위험 관리 주체의 소통 실패 그 자체가 위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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