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교수(우리대학교 과학기술융합대학)
김수환 교수(우리대학교 과학기술융합대학)

 

지난 2020년 1월, 한국에서 최초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 환자가 보고된 이래 많은 우리 국민은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생물학 전문가가 돼가고 있다. 이제까지 친숙하지 않았던 바이러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하게 됐고, 세포, 유전자, 유전체, mRNA 백신, PCR(중합효소연쇄반응), 항체치료제 등 많은 생물학적 용어를 일상적으로 듣고 이해하게 됐다. 생명은 세포로 이루어진 살아있는 유기체다. 유기체로 구성된 세포 안에서는 셀 수도 없이 다양하고 복잡한 물리, 화학적 활동이 이뤄지는데, 단백질은 이러한 과정을 매개하는 주요 고분자화합물이다. 인간세포의 유전체에는 단백질의 합성을 지시하는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의 DNA 핵산 서열정보로 이뤄진 유전자 정보가 있다. 그리고 핵산의 배열순서, 즉 서열은 서로 다른 단백질을 지시할 수 있는 하나의 정보가 돼 생명시스템을 정교하게 조절한다. 

바야흐로 유전체(게놈, genome) 활용의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유전체가 정보가 돼 산업적, 의학적 활용성이 높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된 것이다. 현 정부에서도 반도체, 양자컴퓨팅, 첨단 모빌리티, 인공지능 등의 분야와 함께 바이오 분야를 미래 기술시장 선점을 위한 12대 국가핵심전략기술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집중적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소재, 부품, 장비(소부장) 관련 첨단바이오 기술은 백신 제조용 핵심 소재 및 제조기술, 세포‧유전자치료제 제조용 기술, 바이오의약품 생산기술, 합성생물학 기술 등이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유전자치료제, 합성생물학을 포함한 대부분의 바이오 소부장 기술은 유전자의 편집과 활용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합성생물학은 유전자 편집을 통해 인공적으로 생명 시스템을 설계·제작·합성하는 분야를 말한다. 향후 생물산업은 인간게놈프로젝트(1990∼2003년)와 인간게놈합성프로젝트(2016∼2025) 추진으로 얻어진 생물 빅데이터 정보를 기반으로, AI 기반 유전체 편집과 기능설계와 함께 산업용 인공세포를 양산하려는 단계까지 나아갈 것이다. 다시 말해, 맞춤형 인공세포를 활용해 부가가치가 높은 의약품 또는 바이오산업 소재 등을 대량 생산하는 바이오 파운더리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은 수학, 통계학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아 생물 빅데이터를 통섭적으로 해석하려는 ICT 기반 생물 빅데이터 정보분석 분야다. 생물정보학과 유전자 정보 활용은 인간게놈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못된 유전자 서열정보는 비정상적인 단백질 생산을 지시해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유전체 해독을 통해 인간 유전자 서열정보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이를 바탕으로 각 유전자의 결함을 수정하고 기능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생명공학적 응용이 가능하리라는 희망으로 추진됐다. 예를 들어 질병 간 공통적인 유전자 변형에 대한 질병 관련 SNP(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단일염기서열변이) 데이터베이스는 개인의 질병을 진단, 예측하거나 적절한 치료 방법을 제시하는 환자 맞춤형 의학을 가능하게 한다. 지난 2022년 10월, 이탈리아 밀라노광장에는 ‘세계 유방암의 날’을 기념하고 유방암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해 유방절제술을 받은 안젤리나 졸리의 벽화가 전시돼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안젤리나 졸리는 본인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난소암과 유방암 확률을 매우 높이는 BRCA1 유전자 변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예방적 차원에서 유방절제술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유전자에 대한 정보가 예방의학이라는 틀 속에서 맞춤치료의 한 분야로 활용된 것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생물, 의료 빅데이터와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을 기반으로 하는 인공지능이 개발됐고, 효율적이고 개별화된 진료·진단·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기 및 디지털헬스케어 솔루션이 향후 미래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유전자 서열 내 특정 핵산 염기를 선택적으로 제거하거나 다른 염기서열로 대체, 편집할 수 있는 유전자가위 기술도 여러 형태의 유전병, 암 등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유전자 치료 옵션으로 발전하고 있다.

치료용 맞춤아기(designer baby)란 희귀질환을 앓는 자녀의 치료목적으로 탄생시킨 새로운 아기를 말한다. 지난 2018년 인도에서는 오빠의 만성적 빈혈 치료에 필요한 골수를 공여하기 위해 배아 단계에서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해 빈혈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제거한 동생이 태어났다. 하지만 치료용 목적이라는 명분 아래 인간 유전자를 편집하고, 편집된 유전자를 가진 인류를 만들어내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지에 대한 의구심이 과학계와 사회 전반에 새로운 생명윤리 논쟁을 일으켰다. 만일 유전자 편집기술이 의료용 치료에 국한되지 않고 더 우수한 형질을 갖춘 유전자 편집 아기를 양산하려는 우생학 분야에 악용된다면 인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경제적 격차가 향후 우생학적 관점의 맞춤아기 선호 경향과 함께 계층 갈등 심화의 새로운 도구가 된다면, 인간 평등과 존엄을 기반으로 하는 생명윤리는 어떻게 공정하게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철학과 윤리 그리고 사회적 합의와 규제시스템에 기반하지 않은, 단순한 과학자의 제어되지 않은 호기심이나 경제적 이익만으로 합리화되는, 그런 방식의 유전자 정보 활용과 유전자 편집은 인류에게 또 다른 판도라 상자 속 재앙과 혼란, 무질서를 가져다줄 것이다.

유전체 활용의 큰 세기적 흐름은 이제는 도도한 4차 산업 혁명의 중추가 돼가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복지와 사회정의는 생명윤리와 함께 무엇보다도 우선될 가치가 돼야 한다. 이제는 우리 사회, 정부, 전문가 모두가 생명공학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합의된 정교한 규범을 제시할 때다.

필자는 많은 공상을 한다. 여기 한 과학자가 있다. 과학자는 아기를 낳으려는 고객으로부터 여러 유전자 편집주문을 받아 인간 유전체 설계도에 다음 세대 아이의 얼굴 모양, 피부색, 키, 지능, 성격 등에 대한 정보를 지시하는 유전자 정보를 입력한다. 입력된 정보는 태어날 아기의 배아단계 유전체에 편집을 통해 구현되고 인간이 선택한 새로운 인류가 탄생한다. 공상과학영화에서 나올 법한 이러한 미래는 우리가 아직 준비하지도 못한 순간을 가로질러 폭풍처럼 다가올 수도 있다. 인류 진화가 Homo sapiens(생각하는 인간, 지혜로운 인간)를 거쳐 미래에는 Homo geneticus(유전체 편집 인간)로 진행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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