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은둔청년을 둘러싼 논의를 살펴보다

박현우(가명·38)씨는 17살 때 학업을 중단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등교하는 중에 전구의 필라멘트가 끊어지듯 무언가 탁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 길로 곧장 집에 돌아온 현우씨는 은둔을 시작했다. 중간중간 경제활동을 하러 밖에 나가기도 했으나 또다시 실패를 겪으면서 6개월, 1년 이상의 긴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그는 “다시 사회활동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비단 현우씨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1월, 서울특별시가 발표한 ‘고립·은둔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청년의 4.5%(고립 3.3%, 은둔 1.2%)가 고립·은둔상태에 놓여있다. 이를 서울시 청년 인구에 적용해 보면 약 12만 9천 명에 달한다. 정책연구에 참여한 서울연구원 변금선 연구위원은 “처음 발표된 자료라는 점을 고려해도 4.5%는 상당히 큰 규모”라고 말했다.

 

고립·은둔청년, 그들은 누구인가?

 

서울특별시는 고립청년을 ‘최소 6개월 이상 정서적 또는 물리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망이 단절됐거나 외로움을 느끼는 청년'으로, 은둔청년을 ‘현재 외출이 거의 없으며 본인의 방 또는 집안에서만 최소 6개월 이상 생활하는 청년’으로 정의한다. 고립·은둔청년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PIE나다운청년들’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김혜원 교수는 “고립·은둔청년은 사회적으로 ‘한계상황’에 다다른 사람들”이라며 “이들은 사회에 언제나 있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고립·은둔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변 연구위원은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 상황이 악화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안정적인 미래를 계획하기 어려운 청년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학교와 가정에서 적응하지 못했던 경험이 고립·은둔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변 연구위원은 “이들이 처음부터 고립·은둔청년인 것은 아니었다”며 “다수의 은둔청년은 은둔하게 된 계기가 아동, 청소년 시절부터의 경험이다”라고 말했다. 고립·은둔청년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씨즈’의 오오쿠사 미노루 고립청년지원팀장 또한 “갑자기 고립·은둔 상태에 빠지기보다는 학창 시절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거나, 부모님과의 갈등 등으로 가정에서 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고립·은둔청년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정책은 추진돼 왔지만···

 

고립·은둔청년에 대한 논의는 최근에 시작됐다. 광주광역시는 지난 2019년 전국 최초로 「은둔형외톨이 지원 조례」를 제정했고, 서울특별시 역시 2020년부터 고립·은둔청년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2020년에는 102명의 고립·은둔청년을 대상으로 심리정서 지원, 자기 계발 지원 등을 시행했고, 2021년에는 고립청년 228명, 은둔청년 70명에게 개별 심리정서 지원, 진로탐색 등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고립측정 척도를 개발하기도 했다. 2022년에는 고립청년 520명, 은둔청년 237명에게 맞춤형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사업 전후로 은둔성향을 조사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사업의 규모도 커지고, 대상자도 세분화됐지만 전문가들은 미비한 점이 많았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사업의 연속성이 떨어졌다. 고립·은둔청년 지원 정책을 추진하는 서울시 미래청년기획단 관계자 A씨는 “그동안의 정책은 체계가 부족하고 사업이 연속적이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다”며 “서울시만의 조례를 바탕으로 지원하다 보니 법적 근거가 다소 미흡하고, 중앙부처와의 협의가 부족했던 것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서울시는 매년 새로 관련 정책을 추진했지만 개별 사업 사이의 연계성은 높지 않았다. 사단법인 씨즈 고립청년지원팀 권솔희 선임매니저는 “6개월 혹은 1년 단위의 용역 사업만 계속 진행되다 보니 중간에 지원이 끊기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고립·은둔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는 청년들을 사전에 구제하지 못하기도 했다. 변 연구위원은 “이전 정책은 고립·은둔청년의 다양한 특성과 실태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고, 고립·은둔으로 인해 이미 문제가 발현돼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만 개입하는 사후적인 지원이었다”고 말했다. 초기 고립·은둔청년이나 고립·은둔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는 청년들을 선제적으로 지원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새로 추진된 정책,
의의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지난 4월 24일, 서울시는 과거 정책을 보완해 고립·은둔청년을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을 발표했다. 이른바 ‘원스톱 지원체계’로 불리는 이 정책은 ▲고립·은둔청년 발굴, 지원, 사회복귀, 사후관리까지 관리하는 시스템 구축 ▲기존 복지전달체계를 적극 활용한 고립·은둔청년 발굴 시스템 구축 ▲고립·은둔 극복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회적 관심 확산을 주요 골자로 한다. 15억 3천만 원 정도의 예산이 배정됐고(수행기관 보조금 15억 원, 홍보비 및 경상비 3천만 원) 사단법인 씨즈, 사단법인 푸른고래 리커버리 센터 등의 민간기관이 수행기관으로 선정됐다. 서울시가 고립·은둔청년을 발굴해 수행기관에 심리상담 등을 위탁하는 방식이다. 변 연구위원은 해당 정책에 대해 “실태조사를 통해 고립·은둔청년의 특성과 그들의 수요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선제적이고 장기적인 지원을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A씨 또한 “보건복지부의 ‘고립·고독사 예방 사업 등과 연계해 보다 많은 청년들을 발굴할 수 있도록 했고, 수행기관의 전문가들을 통해 전문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남아있는 과제도 있다. 변 연구위원은 “고립·은둔청년 지원 정책에서는 일관성있게 청년을 발굴하고, 지원하고, 정책을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기에 민간기관에 단기 위탁하는 현재의 방식은 서비스의 전문성, 책임성, 지속성이 다소 떨어질 우려가 있다”며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하고 공적인 책임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립·은둔청년에 대한 정의가 분명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실제로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에서 설정한 고립·은둔청년의 범위와 명칭은 제각각이다. 변 연구위원은 “고립·은둔청년을 제대로 지원하기 위해 복지정책 차원에서 고립·은둔청년을 명확히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책 대상으로 선정할 때는 그에 맞는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권 선임매니저 역시 “고립·은둔청년 정책이 국가 차원에서 제도화되기 위해선 각 지자체와 민간단체가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한 후 통일된 기준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 고립·은둔청년을 위한 '두더집'의 모습. 이곳에선 매주 ‘자조모임’과 ‘금요일 점심밥 모임’이 열린다.
▶▶ 고립·은둔청년을 위한 '두더집'의 모습. 이곳에선 매주 ‘자조모임’과 ‘금요일 점심밥 모임’이 열린다.

 

고립·은둔청년이 다시 사회로 나오려면

 

고립·은둔청년을 제대로 지원하기 위해선 정책 이전에 이들을 향한 사회적 인식이 먼저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우씨는 “고립·은둔청년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은둔청년이었던 사람들이 저지른 범죄가 언론에 꾸준히 노출되면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생겼고, 고립·은둔청년은 게으르거나 더럽다는 인식도 팽배하다”며 “이런 인식을 바꾸는 게 최우선”이라고 덧붙였다. ‘복지 대상으로서의 청년’ 자체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다. 권 선임매니저는 “이전에 비해 사회적 인식이 많이 좋아졌으나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고립·은둔청년을 지원하기 위해 네트워크 기관이나 공공기관을 방문해 문의하면 ‘청년을 왜 지원해야 하냐?’는 말을 들을 때가 많다”며 “청년 세대에게도 복지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부족하다 보니 지원하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고립·은둔 당사자에게도 변화가 필요하다. 권 선임매니저는 “스스로가 고립·은둔상태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청년, 인지하더라도 스스로에게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청년들이 여전히 많다”며 “정책 홍보가 이뤄진 후에서야 스스로가 고립·은둔청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지원을 받기 시작한 청년이 많다”고 말했다. 더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는 이유다.

이들을 위한 공간을 확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우씨는 “일반 청년들은 갈 곳이 많지만 고립·은둔청년을 위한 공간은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다”며 “고립·은둔청년이 머물 곳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적”이라고 말했다. 사단법인 씨즈 역시 이에 공감해 지난 8월부터 고립·은둔청년들을 위한 공간인 ‘두더집’을 열었다. 두더집에선 고립·은둔청년들이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교류할 수 있는 ‘자조모임’, 매주 금요일에 다 같이 점심을 만들어 먹는 ‘금요일 점심밥 모임’ 등의 활동이 진행된다. 오오쿠사 팀장은 “고립·은둔청년이 언제든 방문해 대화하고, 휴식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라며 “이들은 누군가와 대화할 기회 자체가 부족했기에 편하게 방문해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공간은 부족한 실정이다. 오오쿠사 팀장은 “두더집같은 민간 기관만으론 많은 고립·은둔청년을 지원하기엔 부족한 상황”이라며 “공적 영역에서도 두더집과 같은 ‘아지트’를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청년 개개인에 맞는 장기적 맞춤형 지원정책도 필요하다. 변 연구위원은 “아동, 청소년기부터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사람이 없도록 아동, 청소년 대상 복지지원이 청년기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도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동네, 지역사회 단위에서 기존 복지지원 주체들과의 실질적인 협력과 연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권 선임매니저 역시 “대부분의 고립·은둔청년들은 2가지 이상의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획일적인 지원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개인 맞춤형 상담 프로그램이나 사례 관리 프로그램 등이 장기적으로 지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 선임매니저는 “누구나 고립·은둔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고립·은둔청년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이제 막 시작된 수준이지만, 이들이 그동안 겪어온  어려움은 그렇지 않다. 사회적 차원에서 고립·은둔청년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 적절한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청년몽땅정보통 (seou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 김병훈 기자
socio_bab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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