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희 교수 (우리대학교 글로벌창의융합대학)
김창희 교수 (우리대학교 글로벌창의융합대학)

 

출산율 저하, 학령인구 감소, 지방소멸 등의 국가적 난제는 한국 사회를 전방위적으로 뒤흔드는 당면 문제이자 앞으로 수십 년후 우리의 숨통을 끊어 놓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현안이됐다. 유치원의 폐원 증가에서부터 대학생 정원 미충원 심화, 경고등 켜진 지역사회 소멸 위기, 가팔라지는 연금 기금소진 전망에 이르기까지 인구 감소 여파는 이미 우리 사회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밀려드는 해일을 목전에 두고 발만 동동거릴 뿐 그동안의 대처는 무효하고 수긍할 만한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학은 지난 1979년 서울 소재 9개 대학의 지방 분교 설치가 상징하듯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진 대학 정원 확대, 졸업정원제, 대학 정원 자율화 같은 일련의 양적 증가로 일관해 왔다. 현 대학 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당면한 인구 감소와 대학의 양적 팽창이 초래한 잉여 정원의 부실 채권화에서 비롯된다. 노무현 정부 이후 시도됐던 지역 균형발전 정책은 공공기관 지방 이전 및 지역 혁신도시 건설에도 불구하고, 서울 및 수도권 집중화가 더욱 심화하며 실패로 귀결했다. 양적 팽창 시기의 풍요로움이 수도권이 아닌 지방 소재 대학에 차별적 고통과 희생을 강요하는 청구서로 되돌아온 셈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 윤석열 정부는 지난 2018년도부터 재정지원을 빌미로 대학 정원감소를 유도했던 교육부 중심의 대학혁신지원 사업을 접고 지난 4월 ‘글로컬대학30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기업 투자 전략으로 흔하던 ‘선택과 집중’을 내걸고, 이른바 ‘담대한 혁신’으로 지역의 산업·사회 연계 특화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혁신 선도대학을 지역별로 선정해 투자한다는 것이 사업의 골자이다. 2023년부터 2026년까지 총 30개 대학을 선정해 1천억 원을 지원하는 글로컬대학 30은 2030년대 중반까지 현재 학령인구가 대략 1/3로 감소하는 것을 고려해 이 정도의 사업 규모를 설정했다는 루머성 이야기가 돌고 있다. 그만큼 이 사업은 지방 대학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면 학교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고조된 위기의식 속에서 무차별 진행됐던 과거의 대학기본역량진단 사업에서처럼, 이번 글로컬대학 30사업에서도 정부에서 내건 재정지원은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의 각 대학에 너무나 달콤하게 다가온다. 

약속된 달콤한 돈은 학령인구 감소의 파고 속에서 대학들이 스스로 역량을 제고하고 이를 토대로 자립할 수 있는 성찰적 진화보다는 등록금 동결과 정원축소라는 교육부의 정치적 논리에 부화뇌동하며 치킨 게임에 임할 수밖에 없게 된다. 교육기관으로서의 설립 이념과 비전, 교육철학과 학문역량, 지역에서 구축한 교육 생태계와는 별개로, 대학은 절대갑인 교육부의 정치적 심중을 파악하고 컨설팅 업체에 과외받아 찬란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며, 변덕스러운 시장 논리에 연동된 학생 수요를 핑계로 급조되는 몇 장의 구조개혁안에 맞춰 ‘담대한 혁신’을 타율적으로 수행해야만 한다. 고성장 시기 부족했던 교육자원을 정원 확대와 대학설립인가 완화 등 양적 팽창으로 손쉽게 해결했던 국가는 지금은 국가지원과 정원축소를 매개로 저성장·저출산 시대 교육의 잉여 자원을 손쉽게 손절하려 든다. 정부는 대학의 돈줄을 틀어막은 채 돈을 걸고 학교 간, 학과 간 통폐합을 하면 살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죽음뿐임을 암시한다. 이것이 한 국가가 백년지대계 대학 교육을 다루는 작금의 방식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수도권 1극체제 하에서 죽어가는 지역에 대한 근본적 처방을 외면하는 사이 케케묵은 글로컬이란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지방대는 자신의 비전이 아니라 교육부가 졸속으로 마련한 사업방안에 따라 ‘담대하게’ 제 살을 깎기 위한 수술대에 오른다.

우리대학교, 아니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또한 이러한 위기의식을 공유하며 글로컬대학 30을 준비하고 있음을 지난 22일에 소집된 임시 전체 교수회의에서 밝혔다. 대학본부의 표현처럼 미래캠의 미래 운명이 달린 이 사업 신청에 앞서 의견수렴을 목적으로 마련된 자리였다. 하지만 의아하게도 5쪽 내외의 예비지정 신청서 대부분은 기밀이란 이유로 비공개됐다. 대신 1장 내외에 불과한 학사구조 개편 방향성에 대한 발표와 질의응답으로 채워졌다. 타대학은 대학 간 통폐합을 ‘담대하게’ 논의한다는 마당에 기존 자율전공제와 유사한 모듈형 전공단위 개편과 학과 평가를 통한기존학과 통폐합 등이 제한적으로 제시됐다. 담대한 혁신을 요구한 질문지에 대한 이러한 초라한 답안지는 필자에게는 소심한 혁신에 불과해 보였고, 기밀이라며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은밀한 비전은 그 자리가 무엇을 위한 의견수렴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양적 팽창으로 분교가 생겼으면 양적 축소가 요구되는 현 상황에서 본분교 통합 정도는 돼야 출제자의 의중에 충실한 답안이 아니겠는가. 아니면 향후 4년간 연차적 선정 과정을 앞둔 글로컬대학 30에 재수, 삼수 정도는 각오하고 이번처럼 몇 주가 아니라 최소 1학기 이상 바닥에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이해를 구하며, 그들을 참여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어떠한가? 본부는 소통 부재에 대한 비판을 억울하게 여기기보다 현 위기를 발판 삼아 붕괴한 대학 공동체 의식의 회복을 위한 초석으로 삼아야 한다. 풍랑의 파고 속에서 한배 탄 교수, 교직원, 학생 모두가 공동체의 지혜를 모아 책임과 희생을 함께 공유하고 감내할 담대한 용기와 상호 신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지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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