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기업, 사회적 가치와 대중적 흥행 모두 실현해야

‘어둠속의대화’는 최근 20, 30대에게 가장 인기 있는 체험형 전시 중 하나다.  ‘어둠속의대화’는 암흑 속에서 100분간 진행된다. 5~6명의 참가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로드마스터’를 따라간다. 음료수를 마시고, 소리도 듣고, 대화도 하고, 공간을 만져본다. 사회적 기업 ‘엔비전스’ 송영희 대표는 고3 때 시력을 잃은 이후, ‘어둠속의대화’ 전시의 매력에 끌려 지난 2010년부터 전시를 직접 진행해왔다.

지난 2009년 네이버의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제도*로 설립된 엔비전스는 ‘어둠속의대화’ 전시뿐 아니라 정보접근성 컨설팅 사업까지 크게 두 가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엔비전스는 정보접근성 컨설팅 사업을 통해 국제적 지침인 WCAG**을 기업들이 준수할 수 있도록 개선 방안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에 치중하면 대중성을 잃기 쉽고, 대중성에 집중하면 그만큼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 멀어지기 쉽다. 사회적 기업 엔비전스는 ‘사회적 가치’와 ‘대중적 흥행’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았다. 엔비전스가 진행하고 있는 두 가지 사업과 경영 방향성을 송 대표에게 들었다. 

 

어둠 속에서 
느끼는 새로움

 

▶▶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에 위치한 '어둠속의대화'
▶▶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에 위치한 '어둠속의대화'

 

Q. ‘어둠속의대화’를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A. 지난 2007년 1월, ‘어둠속의대화’와 처음 만났어요. 전시를 체험한 건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장면들은 뇌리에 깊숙이 남았어요. 관람객일 뿐이었던 제가 전시의 파트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될 만큼요. 그래서 전시 관계자들에게 무작정 연락했어요. 오전에는 본업을, 오후에는 ‘어둠속의대화’ 일을 했죠. 그러다가 ‘어둠속의대화’에 올인하게 됐어요. 그만큼 가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후 1차, 2차, 그리고 마지막 신촌에서 3차 전시를 진행했고 상설 전시로 기획하면서 사업을 성장시켰어요. 지금까지 대략 65만 명의 관객이 전시를 체험했어요. 

초기에 ‘어둠속의대화’를 상설 전시하는 하나의 사업으로 진행하겠다 했을 때 다들 어려울 것이라 했어요. 사람들이 비싼 입장료를 주고 답답한 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할 것 같다고 했죠. 그래도 어둠 속에 들어간다는 콘텐츠 자체가 굉장히 특이하지 않나요(웃음).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생각해 고집스럽게 사업을 추진했죠.

 

Q. ‘어둠속의대화’ 인기가 정말 대단하던데요. 전시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A. ‘어둠속의대화’를 통해 나를 다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짙은 어둠 속에서 ‘내 존재’는 완전히 사라졌다가 누군가의 목소리, 손길, 주변 촉감을 통해 다시 선명해지기 시작해요. 

전시가 새로운 시각을 주기도 해요. 무언가를 안다는 건 행동과 철학의 기반이죠. 그러나 어둠 속에 들어가면 그 ‘앎’이 전부 무너져요. 그러면서 행동부터 철학까지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되죠. 저는 이 전시를 통해서 ‘내가 확실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확실하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불확실해지죠. ‘나’를 새롭게 이해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줘요.

 

Q. 저도 ‘어둠속의대화’ 전시가 정말 인상 깊었는데요, 특히 상설 전시가 되기 전 마지막 3차 전시는 신촌에서 진행됐다고 들었어요.

A. 신촌은 제게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하게 한 장소예요. 신촌에서 열린 3차 전시가 중도에 폐막했거든요.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다시 전시해 성공한 곳도 신촌이에요. 이때의 성공이 상설 전시로도 이어졌죠.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서 재개하게 된 곳이기에 신촌은 감회가 새로워요. ‘어둠속의대화’ 관람객 유입 경로를 조사해 보면 대부분 지인 추천인 경우가 많아요. 이러한 바이럴 마케팅이 ‘어둠속의대화’를 성장시켰는데, 성공의 첫 시작이 신촌이었다고 생각해요. 특히 ‘어둠속의대화’ 관람객의 80~90%는 20, 30대예요. 그래서 많은 연세대 학생들의 참여가 큰 도움이 됐죠.

 

‘사회적 기업’
엔비전스

 

엔비전스는 직원의 65%가량이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돼 있고, 주요 사업도 모두 시각장애인 직원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사업들이다. 내부 보고 절차나 업무 프로세스도 시각장애인에게 친화적인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 송영희 대표와 '어둠속의대화' 북촌 본점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 송영희 대표와 '어둠속의대화' 북촌 본점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엔비전스에서 주요하게 시행 중인 사업은 무엇인가요.

A. ‘어둠속의대화’뿐만 아니라 정보접근성 컨설팅 사업이 대표적이에요. 저는 컴퓨터에 WINDOW 운영체제가 시작되면서 어려움을 겪었어요. 타자만 사용하면 됐던 이전 DOS***와 다르게 마우스를 사용하게 되면서 시각장애인들은 컴퓨터를 사용하기 어렵게 됐죠. 아득한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어요. 

이후에 정보접근성과 관련된 국제 웹 표준 가이드라인인 WCAG가 생기고 한국에도 이를 반영한 KWCAG**** 지침이 만들어지며, 기업에 이를 컨설팅할 기회가 생겼어요. 아무래도 제가 당사자이기에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어요. 지금 저희 회사는 모기업인 네이버뿐만 아니라, 지마켓, 토스, 이베이 등 다양한 회사들의 정보접근성을 컨설팅하고, 기업이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할 때마다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Q. 이전에 말씀해 주신 것처럼, 엔비전스는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제도의 일환으로 시작했는데요, 앞으로 장애인 고용 정책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우리나라에는 현재 장애인의무고용제도가 존재해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은 장애인 의무 고용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해요. 법적 의무죠. 그러나 직접 고용이 어려운 기업 직무도 존재해요. 간접 고용 형태인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제도가 등장한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다만 문제는 간접 고용 형태가 파생되고 다양해진다는 점이에요. 간접 고용 형태가 많아지는 방향이 맞을지 의문이 들어요. 장기적으로 장애인의 직무역량 강화, 적합한 직무 개발을 통해 직접고용 형태가 늘어나길 바라요.

 

가치와 대중성
모두 잡으려면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대에 들어 사회적 기업 도입 논의가 본격화됐다. 이후 2007년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으로 사회적 기업 육성이 국가의 정책 목표가 되며 사회적 기업 성장은 본격화됐다. 그러나 시장경쟁 체제 아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가 쉽지 않아, 많은 사회적 기업이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나라 장애인의무고용률은 민간 기업 3.1%, 공공기업 3.6%로 나아지고 있지만, 장애인의무고용률을 5~6%로 규정하는 독일이나 프랑스에는 못 미친다. ‘2022년 장애인 고용의무 불이행 기관· 기업 명단공표’에 따르면 300인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기업에서 장애인을 한 명도 고용하지 않는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 송 대표에게 엔비전스가 나아갈 방향과 장애인 지원정책의 미래에 관해 물어봤다.

 

Q. 사회적 기업의 어려운 현실을 보면 ‘사회적 가치’와 ‘대중적 흥행’의 균형을 맞추기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적 기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제가 서대문구 사회적 기업 협의회 회장을 맡으며 여러 사회적 기업들을 만났어요. 그 자리에서 답을 내기 어려운 질문에 대해 토론하고 고민을 나눴죠. 핵심은 사회적 기업이 ‘사회적’과 ‘기업’ 중 무엇에 방점을 둬야 하는가였어요. 사회적 기업이 너무 일반 기업과 같아지면 의미가 퇴색될 수 있어요. 반대로 기업의 구조와 지속성을 갖추지 않은 채 사회적 명분만 남으면 그냥 사회복지일 뿐이죠. 이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어요. 답이 정해지지 않는 문제죠. 

그러나 저는 무엇보다 ‘기업이 굴러가야’ 한다고 봐요. 기업으로서 지속 가능해야 사회적인 영향력도 발휘하죠. 그러려면 기업으로서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아이템’이 있어야 하고, 최소한의 기업구조나 역량이 필요해요. 기업으로 살아남아야 사회적인 가치를 이룰 수 있어요. 저의 경우 ‘어둠속의대화’가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아이템이라 생각했고 지금까지도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아 사회적 가치를 전달하고 있죠.

 

Q. 앞으로 엔비전스의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A. 주변 사회적 기업들을 보면 어렵고 힘들어하는 회사가 너무 많아요.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가 너무 어렵죠. 그래서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흘러가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해도, 그 자리만 유지하려는 것만으로도 물 밑에서 발을 엄청나게 움직여야 하니까요(웃음).

 

 

글 유동기 기자
socio_princess@yonsei.ac.kr
사진 반고은 기자
bahn0828@yonsei.ac.kr

 

*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제도: 모기업이 장애인고용을 목적으로 한 자회사를 설립했을 때 해당 자회사에 고용된 장애인을 모기업이 고용했다고 인정해 주는 제도이다. 2008년 1월부터 시행됐다.
** WCAG: ‘Web Content Accessibility Guidelines’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웹 콘텐츠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하는 국제적인 규칙이다.
*** DOS: Window 이전에 시행되던 컴퓨터 운영체제 중 하나로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개발했다.
**** KWCAG: 한국의 WC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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