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 교수·연구자 시국선언’ 천정환 교수를 만나다

굴욕외교를 규탄하며 전면적 국정쇄신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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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윤석열 취임 1주년과 방미를 앞두고 다시금 굴욕외교를 규탄하며 국정 전반의 쇄신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우리는 전국의 대학인들과 시민사회와 함께 정권을 종식시키는 투쟁에 나설 것이다.

-2023년 4월 24일 굴욕외교를 규탄하며 
전면적 국정쇄신을 요구하는 
성균관대학교 교·연구자 일동-

 

‘시국선언(時局宣言)’이란 당면한 시대 상황에서 문제가 있는 현안을 바로잡고자 우려를 표명하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행위다. 지난 3월 6일, 윤석열 정부가 ‘제3자 변제*’에 기반한 일본 강제 동원 배상안을 제시한 이후 전국 대학교수·연구자의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가톨릭대, 경북대, 경희대, 고려대, 동국대, 부산대, 서울대, 숙명여대, 아주대, 인하대, 전남대, 중앙대, 충남대, 한국외대, 한성대, 한양대 등 전국 수많은 대학교의 교수·연구자가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비판 성명을 냈다.

지난 4월 24일, 성균관대에서는 248명의 교수·연구자가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수도권 지역 대학 최대 규모다. 시국선언을 발표하는 현장에는 교수와 연구자들을 응원하는 학생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수·연구자는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를 규탄하고, 국정쇄신을 요구했다.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천정환 교수는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아래 민교협)’ 성균관대 분회장으로 시국선언을 조직하는데 앞장섰다. 천 교수를 만나 성균관대에서 열린 시국선언의 의미와 윤석열 정부의 외교에 대한 의견, 대학 구성원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들어봤다.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는 성균관대 교수·연구자들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는 성균관대 교수·연구자들

 

성균관대 정문에 모인
교수·연구자·학생

 

그날, 성균관대 정문에서는 백발의 원로 교수부터 앳된 학생까지 함께 플래카드를 들었다. 플래카드에는 ‘굴욕외교를 규탄하며 전면적 국정쇄신을 요구한다’고 적혔다. 많은 취재진 앞에서 성균관대 교수와 연구자들은 돌아가며 약 7분간 시국선언문을 읽었다.

 

Q. 먼저 무려 248명의 교수·연구자들이 모이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A. 현재 민교협 성균관대 분회장을 맡고 있다. 성균관대 인문·사회캠퍼스의 중견 교수님들이 시국선언 제안을 했고, 이에 이메일과 학교 게시판을 통해 뜻을 같이하는 교수와 연구자들을 모았다. 민교협 성균관대 분회와 한국 비정규직 교수노조의 성균관대 분회가 같이 기획하게 됐다. 시국선언문 초안을 만든 뒤, 각 분야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 수정  과정을 거친 후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Q. 시국선언에 동참한 248명은 누구인지 궁금하다.

A. 정말 다양한 성균관대 내 교수·연구자들이 모였다. 인문사회캠퍼스에서는 문과대학, 경제대학부터 동아시아학, 유학동양학까지, 자연과학캠퍼스에서는 자연과학대학, 의과대학, 약학대학, 정보통신대학, 소프트웨어 융합학부 등에 속한 교수·연구자들이 모였다. 또한 전·현직 단과대학장과 BK21** 보직 교수들도 서명했다. 정규직, 비정규직을 구분하지 않고자 여러 비정규직 교수와 연구진의 의견도 함께 모았고, 이름을 드러내기 어려운 사람과 비실명 참여자도 포함했다.

 

Q. 정말 다양한 전공의 인원이 모인 시국선언인 것 같다. 이러한 성균관대 시국선언의 의미와 의의는 무엇인가.

A. 무엇보다 현 국제 정세에서 꼭 필요하고 합리적인 담론을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윤석열 정부는 현재 ‘이념 편향적’이고 ‘아마추어’적이다. 취임 1주년을 맞은 만큼 교수로서 이에 대한 의견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성균관대가 학문과 교육에 대한 열정과 성과는 높지만, 한편으로 소통과 만남의 장이 좁은 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학교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측면도 있다. 그런데 이번 시국선언은 전공과 직급, 세대를 초월했다. 이렇게 함께 모인 것은 정말 뜻깊은 일이고, 다양한 교수·연구자들이 모인 만큼 시국선언 또한 시대에 필요한 가치를 담았다고 생각한다.

 

‘장기판의 말’이 된 한국
자주적 외교 어렵다

 

시국선언에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여러 교수·연구자들의 비판 의견이 담겼다. 이들은 이러한 한일 외교 기조가 지속된다면 자주적인 외교 정책을 펼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Q.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A. 외교정책이 ‘이념 편향적’이다. 우리나라에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을 고려해 매우 세밀한 외교정책이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미국에 대한 일방적인 외교는 위험하다. 윤석열 정부가 펼치는 ‘한미일 동맹’은 이념에 집중돼 있다. 미국에게 미일동맹은 한미동맹보다 더 무게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한국이 동맹의 맨 아래에 위치하는 ‘수직적 질서’에서는 외교의 자주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외교·안보의 전면 재고가 필요하다.

 

Q. 윤석열 정부의 이러한 외교 기조가 유지될 때, 어떠한 결과가 초래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A. 북한과 군사적 대립을 하고 있고, 주변 열강들에 둘러싸인 한반도에서 균형 잡히지 못한 외교는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의 대통령실 도청에 대해서도 제대로 항의하지 못하는 현 상황은 균형 잡혀있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이웃 국가와도 쓸모없는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Q. 최근 정부가 제시한 강제 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식’은 어떤 점에서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A.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제3자 변제 방식은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한미일 동맹의 확대에서 기인한다. 과거사에 대한 지난한 논의를 서둘러 끝맺음해야 했던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제3자 변제 방식을 발표하자 미국과 일본은 크게 환영했다. 피해 당사자의 의사는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 제3자 변제 방식을 발표하면서 한국은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에서 수동적인 ‘장기판의 말’이 돼버렸다.

제3자 변제 방식은 무엇보다 일본 기업의 책임을 분명히 한 지난 2018년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무시한 것이다. 또한 3.1운동을 담아낸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을 전면 부정했다. 역사가 미래의 걸림이 된다는 반역사적 인식이 담겨 있는 정책 제안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대학’
대학 구성원들의 역할은?

 

전국의 많은 대학에서 지금도 한일외교에 대한 규탄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성균관대에서 대규모 시국선언을 준비한 그에게 현 시국에서 대학의 방향성에 관해 물어봤다.

 

Q. 이러한 외교 상황에서 대학과 교수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한국 사회에서 대학을 바라보는 위상과 역할이 이전과는 달라졌다 해도, 시국을 바라보며 ‘정확한 말’을 할 수 있는 역할은 대학에 있다고 생각한다. 교수와 연구자들이 시국선언을 통해 시대 상황에 대해서 해야 할 말들을 해줘야 한다고 본다.

 

Q.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학생들의 역할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앞장서서 민주화 운동을 이끌던 시기와 지금은 상황이 분명 다르다. 다만, 학생을 정의하자면 공부를 하면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해야 할 도리들은 각자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대학을 넘어 시민들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개인적으로 모든 시민에는 두 가지의 역할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신의 본분을 다하며 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시민적 양심을 가지고,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올바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전국의 많은 대학가와 종교·문화계에서도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한일외교 기조는 미동도 없어 보인다. 한일 관계에 대해 기조변화를 요구하는 교수·연구자의 목소리는 대통령실에 닿지 못하는 듯하다. 정부는 왜 이러한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는지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글 유동기 기자
socio_princess@yonsei.ac.kr

<사진제공 천정환 교수>

 

* 제3자 변제: 일본기업이 강제 동원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배상 비용을 국내 재단이 대신 배상하게 하는 방안
** BK21: Brain Korea 21의 약어로, 교육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석·박사 인재 양성을 지원하는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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